'친애하는 지도자'의 인민 수탈
김정일 정권과 체제방어라는 대가를 가져다 줄지는 몰라도 머지않아 "수령, 당, 대중의 운명공동체"에서 대중을 완전히 이탈시킬 것임.
요즘 북한 인민들에게는 때 없이 또 하나의 날벼락이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번에는 지하에서의 핵 지진도 하늘에서의 미사일 파편도 아니다. 사람 잡는 '돈벼락'이다.
지난달 30일부터 귀신도 모르게 준비해 강행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화폐교환은 그야말로 인민들에게는 날벼락이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식민지통치의 청산을 위한 신권 발행 한 차례, 1959년 또 한 차례, 1979년과 1992년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이다. 과거에도 물론 과잉통화의 환수, 경제발전 추동이라는 목표를 추구했지만 이번만은 사정이 정말 다르다. '친애하는 지도자'와 체제에 의한 대대적인 인민 수탈이 공공연히, 합법적으로 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폐개혁과 닮은 과거의 사례는 두 번 있었다. 1992년의 원화 교환과 1995년에 있은 '외화와 바꾼 돈표' 교환이다. 그때도 시한과 한도를 정했지만 지금처럼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지는 않았다. 1992년 당시 못 쓰게 된 돈자루가 압록강을 떠다닌다는 소문이 항간에 자자하게 돌았다. "돈을 무게로 달아 장사한대" "뉘기 집에서는 돈이 김장독으로 몇 개 나왔대"라는 말이 입에 입을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많은 사람들은 구화폐가 압록강에 떠다닌다는 소문을 듣고도 그렇게 불쾌해하지 않았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자루째로 갖고 있으랴" "돈을 세지 않고 저울로 떠서 장사하다니" "중국 쪽으로 새나간 원화가 그렇게 많아?" 이것이 다수의 생각이고 심정이었다. 결국 인민은 아직도 국가의 편이었다.
1995년 단행된 외화와 바꾼 돈표 교환도 사정은 비슷했다. "좀 바꾸지 못할 정도의 돈표를 가지고 있음 원이 없겠다" "딸라를 구경이라도 했음 좋겠다" 이것이 다수의 생각이었다. '딸라' 맛을 본 신흥 엘리트들은 발에 불을 달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뛰어다녔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 사돈의 사돈의 팔촌까지 총동원하여 무역은행과의 교환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그 소수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아수라장은 그때와는 근본이 다르다. 소수의 부자가 아니라 다수의 인민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신흥 '딸라' 부자들은 북한 원화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온갖 '빽'을 이용하여 교환도 한다. 정보를 포착하여 사전대응도 가능하다. 그러나 '딸라'도, '빽'도, 정보도 없는 인민들은 무엇으로 감당하랴. 손 놓고 수탈당하는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대량 아사와 기아, 경제의 파괴는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를 몰고 왔다. 지금은 다수의 주민들이 국가배급과 직장이 아니라 장마당을 통한 상거래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온몸이 해지도록 농사지어 마련한 돈, 온 식구가 몇 해를 두고 마련한 결혼식 비용, 끼니를 에우면서 키워 판 돼지·닭·계란 대금이 하루아침에 100분의 1로 줄어들고 자칫하면 신권과 바꾸지도 못하게 됐다.
국가 금고가 거덜이 나 강행한 화폐개혁, 인플레와 시장을 때려잡기 위한 이번 조치는 잠시나마 김정일 정권과 지배세력에 돈과 체제방어라는 대가를 가져다 줄지는 몰라도 머지않아 이러한 인민 수탈과 다수의 생존권 박탈은 그들이 늘 부르짖고 있는 "수령, 당, 대중의 운명공동체"에서 대중을 완전히 이탈시킬 것이며,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상실한 수령과 당은 그 운명을 고할 것이다. 벌써부터 북한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북한의 인민들은 언제까지나 김정일에게 "참 좋은 인민"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http://www.chosun.com/
김광진(미국 북한인권위원회방문연구원)
* 필자는 북한 대외보험총국 출신. 싱가포르에서 북한 지도부의 자금 등을 관리하다 2004년 망명 후 현재 미국 거주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