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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US House(코러스 하우스)를 아시나요?

지난해 11월 11일 미국 Veterans Day를 맞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공헌과 희생을 기리기 위한 에세이·동영상을 공모했다.

Written by. 이정호   입력 : 2010-01-12 오후 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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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덕수(앞줄 왼쪽 다섯째) 주미 한국대사와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모전 수상자들이 지난해 12월 23일 미국 워싱턴 DC 코러스 하우스가 연 시상식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KORUS House(코러스 하우스)를 아시나요?

KORUS는 KOREA와 USA의 합성어다. 영어로 합창을 의미하는 Chorus와 음이 같다.
한미관계가 조화롭고 미래 지향적인 동맹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데 대한 바람이 담겼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2006년 `코러스 하우스'를 열었다.
문을 연 KORUS는 한미동맹 관계를 보다 협력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 간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는 대화의 장,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KORUS가 마련하는 세미나, 강연, 각종 학술행사에는 한미 양국 정부의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 토론하면서 우의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KORUS가 지난해 11월 11일 미국 Veterans Day를 맞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공헌과 희생을 기리기 위한 에세이·동영상을 공모했다.

 지난해 12월 23일에는 워싱턴 DC 코러스 하우스에서 시상식을 거행했다.  많은 미국 학생들이 응모한 이번 공모전 에세이 부분에서는 레베카 나 양이 1등, 사라로랜드 양이 2등, 서예나 양이 3등을 차지했다. 동영상 부문에서는 박초롱 양이 1등, 월리암 김군이 2등, 조수아 양이 3등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시상식에는 한덕수 주미 대사를 비롯해 데니스 핼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전문위원 등 많은 외빈들이 참석했다.

한 대사는 축사에서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에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나 보지도 못했던 국민들을 위해 목숨 바쳤던 우리의 아들딸들을 명예롭게 기린다는 글이 적혀 있다”면서 “그들의 희생과 공헌을 잊지 않기 위해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고 기록을 남긴 여러분들의 수고와 노력을 높이 산다”라고 말했다.

이날 동영상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박초롱 양은 상금으로 받은 1500달러 중 500달러를 향군장학금으로 기탁해 왔다. 서울 상명대 재학 중 미국 타우슨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박초롱 양은 동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여러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했다.

박양은 그 과정에서 “한국전쟁을 보다 잘 알게 됐고, 그분들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알게 됐다”면서 “그분들의 후손들에게 조금이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장학금을 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전용사들이 대부분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은 분들이 많아 매우 안타까웠다는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공모전을 주관한 남진수 KORUS 홍보원장은 “이번 행사 홍보과정을 통해 많은 미국인이 과거 미국이 참전한 전쟁에 대해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면서 “올해 한국전 60주년을 맞아 한국 정부가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 중이라는 내용도 미국인들에게 소개했다”고 전해 왔다.

아래 에세이 분야 1등에 입상한 레베카 양의 작품 전문이다. (konas)

이정호(재향군인회 공보관 jungho5118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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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 예우받아야”  
 
 
 
<에세이 1등 레베카 나 양.>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로 그분들의 희생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미 한국대사관 KORUS HOUSE(코러스 하우스)가 연 한국전쟁 참전용사 공모전 에세이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한 레베카 나(18살) 양. 로빈손 세컨더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레베카 나 양은 처음에는 상금도 있고 재미있을 것 같아 공모전에 참가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참전용사들을 직접 면담하면서 한국과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한국전쟁에 대해 알게 돼 무척 보람됐다”면서 “수많은 참전용사의 슬픈 전사 이야기를 들을 때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면서 “다시는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1등을 차지한 레베카나 양 에세이 전문을 번역해 싣는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기습적으로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한반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됐고, 한국은 남한의 민주국가와 북한의 공산국가로 분단됐다.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고 미국의 도움이 컸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은 굳건한 우방국이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한국은 번영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다.

기술 분야에서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둘째로 발전한 나라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사람들은 전쟁기간 중 용감하게 싸운 참전용사들이다.

나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참전용사와 인터뷰하는 특권을 가졌다.

그는 조 네이단 (Joe Nathan)이다. 그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은 이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전쟁은 기억돼야 한다. 더욱이 참전용사들은 잊혀져서는 안 된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자유를 원하는 나라를 위해 참전한 용사들의 용맹으로 기억돼야 한다.

네이단은 등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를 꿈꾸고 있던 청년이었다. 그는 21세의 나이로 한국을 위해 참전할 것을 명받았다. 그는 젊은이로서, 조국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입대해서 받은 헬멧에는 99번이라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한국전쟁을 향해 출발한 네이단이 도착한 곳은 오키나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번부터 100번까지는 오키나와에 배치되고 100번 이후는 한국전에 투입됐다고 한다.

헬멧번호 99번, 그는 하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에서 전사한 동료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네이단 씨는 오키나와 제20항공기지에 배치됐다. 대공포대의 외곽초소 경계병으로서 2년 동안 텐트생활만 했다.기지 내에서 2년 간 보낸 텐트생활은 한마디로 노숙자의 생활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가족이 그리웠다. 따뜻한 침대, 편안한 욕실, 맛있는 음식들이 그리웠다. 그는 매일 적의 항공기 공격으로부터 대공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10명의 전우들과 함께 B-29 폭격기의 날개와 활주로 사이에 있는 텐트에서 2년 동안 같이 잠을 잤다.

네이단 씨는 비행기 엔진의 냄새가 정말 싫었다고 한다. 마치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직접 들이마시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고 한다. 항상 흙먼지와 더러운 것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병사들은 밖에다 화장실을 만들고 욕실도 만들었다. 어쩌다 한번씩 닭고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음식은 정말 먹을 수 없는 정도였다고 한다.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정말 기뻤다.

조국에 돌아와 제대를 했다. 21세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나이로 전쟁에 참전한 네이단 씨는 어느새 만고풍상을 다 겪은 성숙한 인간이 돼 있었다.한국전쟁 덕분에 자신은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국에 돌아와 보니 참전용사들은 전쟁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네이단 씨는 힘주어 말했다.
맹목적인 반전주의자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모른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에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전쟁은 ‘반전’이란 구호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란 걸 모른다.

나도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몰랐다. 전쟁의 실체를 몰랐고, 참전용사들의 고통을 몰랐고, 전사한 가족들의 슬픔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각했다.
네이단 씨와 같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은 존경받아야 한다.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예우받아야 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함께 싸운 미국과 한국은 영원한 친구가 돼야 한다고.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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