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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내 사조직 '우리법연구회' 탐구

<기획특집>'우리법연구회'의 활동과 실태

Written by. 최진학   입력 : 2010-01-19 오후 5: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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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기갑 의원의 국회내 폭력이 사법부에 의해 무죄판결이 선언되자 사법부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 중 상당수는 '08년 여름 발생한 불법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검찰의 구형과는 달리 솜방망이 판결을 내리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특히 공개 세미나에 참석한 일부 판사들은 '반공'을 적대시하는 발언을 하고 노조의 파업을 두둔하는 등 선명한 좌파 이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법연구회 측은 자신들을 '연구단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이들의 주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군 '하나회'에 비유되어지고 있는 사법부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의 활동 경과 및 현재 쟁점들을 최진학 자유주의진보연합 공동대표가 정리한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Ι. 우리법연구회 활동 경과 및 실태

1. 활동경과

- 1988년 6월 10일: 4명의 소장 판사 김종훈(당시 인천지법), 유남석 이광범 한기택(당시 서울민사지법), 사법연수원 18기 2년차 심규철 시보가 서울의 한 맥주집에서 모임. 이들은 6.29 선언 직후 사법부 수뇌부의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내기로 뜻을 모음.

- 1988년: 당시 법학도서 읽기 모임을 갖고 있던 강금실 판사 등이 모임을 전문화하고 확대할 필요성을 느낌. 

- 1989년: 우리법연구회 정식 출범. 창립회원은 당시 판사로 있던 김종훈, 강금실, 강신섭, 오진황, 유남석, 박윤창, 이광범 등 판사 7인과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한 박종술, 이태화 ,이양원 등 3명의 변호사. 

- 1989년: 심규철 변호사와 박시환 판사가 새로운 회원으로 가입. 창립 이후 매월 한차례 월례 세미나를 가짐. 국가보안법, 북한헌법, 사상(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근로기준법 등을 주제로 토론. 우리법연구회 회칙은 강금실 판사가 작성. 

- 1993년 4월: 당시 총무였던 김종훈 판사가 ‘법률신문’에 기고한 ‘개혁시대에 사법의 과제’가 게재를 거부당하자 이에 대한 대처방안 논의. 이글은 이른바 ‘3차 사법 파동’을 촉발하는 단초가 됨. 

- 1993년: ‘우리법연구회 5주년 기념자료집’ 발간. 자료집의 ‘우리법연구회 5년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글에서 당시 강금실 판사는 ’1998년 법관 서명 파동 후 올해에 와서 법원이 개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 움직임과 지원, 수원지법을 비롯한 각급 법원간의 긴밀한 교감 내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측면이 있다’고 자평. 

- 1996년 3월: 회원 가입을 희망하는 소장 판사들에 한해 모임을 부분 개방. 

- 1998년 : 회원수가 980여명으로 늘어남. 그러나 1995년 이전에 가입한 5인을 제외하고 변호사를 신규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음. 판사모임으로 자리 잡음. 

- 2003년 1월: 문형배 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대법관 인사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올림. 문 판사는 당시 ‘사법개혁 논의에 즈음하여’라는 글에서 “변화와 개혁이 시대의 당면한 요구로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고 법조인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사법 개혁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제도화를 통해 사법부의 발전을 도모할 때”, “그동안 대법관 인사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지역․기수․지역별 안배가 이루어져 왔으나 이제는 성향별 안배도 필요한 시점이 왔다.”,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이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과 함께 최고 법원을 구성해 사회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모색할 시점이 됐다”,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것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으나 사법권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문제를 법관이 제기하지 않으면 그 해결책이 마련되기 힘든 만큼 사법개혁에 관한 법관의 토론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주장. 

- 2003년: 참여정부, 강금실 판사를 법무부장관에 임명 

- 2005년: 참여정부, 박시환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 

- 2008년: 촛불집회 배당에 대해 우리법연구회 이정렬 서울동부지법 판사와 송승용 울산지법 판사가 문제 제기. 

- 2009년 5월: 신영철 대법관 파동을 두고 우리법연구회 초대회장을 지낸 박시환 대법관이 “5차 사법파동으로 볼 수 있다”며 “판사들에게 절차와 규정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는데 4.19와 6월 항쟁도 절차와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고 발언. 또 이 사건으로 릴레이 판사회의가 열릴 당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내부통신망에 판사회의를 촉구하는 글을 올림. 서울동부지법의 단독판사 회의 의장을 맡았던 이정렬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소속.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도 내부 통신망에 “법원 내부자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용인한다면 외부의 침해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주장. 

2. 실태 

- 우리법연구회는 현 회원과 함께 판사 퇴임 등으로 자동 탈퇴되는 전 회원을 포함해 182명의 전.현직 회원 보유. 

- 전 회원중에는 박시환 현 대법관을 주축으로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 유력 법조계 인사 53명(이중 3명 사망) 포진 

- 현 회원은 연수원 17~37기에 걸쳐 김홍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 부장판사급 이상 25명 내외 및 고법.지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등 현직 판사 129명 포진. 

II. 주요 쟁점 

1. ‘촛불 재판’ 둘러싼 여론몰이 

- 2008년 촛불난동 사태 이후 기소된 불법-폭력시위자들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우리법연구회’의 인지도가 높아짐. 

- 경찰을 폭행하고 공공시설을 파손한 불법시위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 중 상당수가 검찰의 구형과는 달리 솜방망이 판결에 그침. 대부분의 혐의자들이 300만원 이하의 낮은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남. 

- 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이 재판 일정을 비정상적으로 연기하며 빈축을 삼. 

- 이에 당시 신영철 대법관이 내부 이메일을 통해 판사들에게 신속한 재판을 촉구했고, 우리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들이 이를 외부에 폭로하면서 사실상의 ‘사법파동’을 일으킴. 

- 신 대법관의 재판개입 문제는 사건 당시는 물론이고 신 대법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으나, 법원 정기 인사가 끝난후 뒤늦게 외부언론에 유출됐고, 이를 언론에 유출한 인물도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임. 

- 박시환 대법관이 2009년 5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5차 사법파동’으로 규정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짐. 

2. 보수층의 반격 

- 중도우파 성향 변호사 단체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시변)이 2009년 5월 20일 박시환 대법관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고 대법원 윤리위 회부를 촉구. 

- 시변은 성명서에서 “박시환 대법관이 현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판사들에게 절차와 규정을 무시하도록 선동한 발언을 한 데 대하여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적법절차를 수호하여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최고 법관인 대법관이 일선 판사들을 향해 절차와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한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선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고 지적.

- 또 “이 시점에서 우리법 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박시환 대법관이 일선 판사들을 선동한 것은 특정 정치이념을 가진 법원 내 사조직이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신 대법관 문제를 빌미로 삼아 사법파동으로 몰아가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 

- ‘국민행동본부’(대표 서정갑)도 21일 “좌익폭도들을 동정하는 당신들이 죽창폭동 세력의 후견인이 아닌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우리는, 촛불 난동자들에게 동정적인 판사들이 광우병 난동 사태 가담세력과 연계하여 인민재판식 집단행동으로 신영철 대법관을 몰아내려는 불법적 책동을 제2의 촛불사태로 규정한다”고 선언. 

- 이어 “비열한 익명 폭로로써 외부-좌경세력을 동원한 당신들이 인민재판식 집단행동으로 신영철 대법관을 몰아내려는 것은 촛불난동 세력 같은 反헌법적-反국가적 세력을 계속 비호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라고 반문한 후 “경찰관 폭행범과 촛불난동범과 좌익사범들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영장기각, 보석, 실형 면제의 혜택을 주면서 애국운동가들에 대하여는 가혹한 형량을 선고해온 당신들이 폭도들이 일으킨 죽창사태의 배후세력 아닌가? 당신들을 믿고 깽판세력과 좌익폭도들이 군인과 경찰관을 패는 게 아닌가?”라고 성토. 

-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스스로 물러날 사람은 신영철 대법관이 아니라 뒤에 앉아서 부채질하고 있는 박시환 대법관”이라고 정면 비판. 

3. ‘명단 공개’ 논란 

- 2009년 7월 시민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이 우리법연구회 명단 공개 요청 성명 발표. 

- 이후 8월 15일 언론을 통해 현직 회원인 판사 129명, 전 회원 53명 등을 포함한 우리법연구회 명단 공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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