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들
싱가포르, 군대 안 갔다 오면 공무원 될 수 없다!
18세에 입대, 2년 근무 후 예비군 편입, 매년 40일간 소집근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군대 가야.
최근에 한 외교관 출신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싱가포르의 兵役(병역) 실태를 소개해주었다. 인구가 약 350만 명인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이스라엘을 닮은 국방제도를 유지한다. 국민총생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로서 한국의 두 배이고, 이스라엘의 반이다. 현역은, 직업군인이 3만2700명, 징병된 병력이 3만9800명, 합쳐서 7만이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한국은 100만(지금은 70만) 兵力을 유지해야 싱가포르와 같아진다는 계산이다.
싱가포르는 국민皆兵制(개병제)이다. 18세가 되면 군대에 징집되는데, 연기가 되지 않는다. 重病者(중병자)가 아니면 모두 입대한다. 兵役특혜는 없다. 심지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도 군대에 가야 한다. 훈련기간은 3개월이다.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훈련기간의 단축이다. 뚱보들에겐 훈련기간을 길게 한다. 제대한 이후에도 예비군에 편입되어 나이 50세(장교)나 40세(사병)가 되기까지 매년 40일간 소집된다. 30만 명이 넘는 예비군이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군대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공무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군대는 1960년대 후반 이스라엘 장교들이 지도하여 만들었다. 이스라엘 고문단은 멕시코 사람으로 위장하여 建軍(건군) 작업을 도왔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가상 敵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이다. 싱가포르의 국민 구성은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으로 복잡하다. 국민개병제는 다양한 출신성분을 초월하여 싱가포르 시민들을 하나의 국민집단으로 용해시키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 싱가포르는 한국보다도 더 평화스러운 안보환경에 있다. 그럼에도 自主국방정신은 한국보다 더 강하다. 싱가포르는 물론 운동선수에게 兵役면제의 특혜를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석사장교 제도가 생겨 특혜 논란을 불렀다. 석사 소지자 중 우수한 자를 시험으로 선발하여 6개월간 군사훈련과 전방 체험을 거친 후 소위로 임관함과 동시에 轉役시켜주는 제도였다. 당시 군 복무기간이 3년에 육박한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그 뒤 兵役면제 특혜가 남발되었다. 스포츠, 예술, 과학계의 人材를 2, 3년간 군대에 보내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주장이 일견 설득력이 있는 듯하나 이는 短見이다. 군대 복무중에도 특기를 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특혜는 한번 주어지면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군 복무를 충직하게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미국에서도 징집제 시절 병역특혜를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테드 윌리엄즈와 같은 대타자도 2차대전과 한국전쟁 두 차례 징집, 戰線에 배치되어 4년간 복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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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號와 운명을 같이 한 8명의 樂士
-紳士道 실천으로 남자의 20%만 살아남았다.
1912년 4월14일 밤 세계최대의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처녀항해중 대서양에서 氷山과 충돌, 15일 이른 새벽에 침몰하였을 때 2223명이 타고 있었다. 31.8%인 706명만이 살아남고 1178명이 사망하였다. 여자승객의 74%, 어린이의 52%가 살아남았는 데 반하여 남자승객의 20%만이 구조되었다.
'여자와 어린이 우선(Women and children first)' 원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알려진 것은 1852년 영국 군함 빌켄헤드호가 침몰할 때 水兵들이 모범을 보인 이후이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 이 원칙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한 선원들이 救命보트에 빈 자리가 있음에도 남자를 태우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타이타닉에 준비된 구명보트는 1178명을 태울 수 있었는데, 706명만이 구조된 것은, 다 태우지 않고 출발한 보트가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일부 승객들은 큰 배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1등석에 있던 일곱 어린이들중 여섯 명, 2등석의 어린이들 전부가 구조되었으나 3등석의 어린이들중 34%만이 구조되었다.
영국 남자 승객들의 사망률이 미국남자들보다 훨신 높은 것은 '紳士道'를 실천한다고 救命보트에 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월래스 하트레이가 지휘하던 8명의 樂團은 전원 사망하였다. 이들은 기울어가는 갑판에서 계속 연주를 하였다. 공황상태에 빠진 승객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배가 거의 수직으로 기울어 침몰을 시작할 때까지 연주를 했다고 하여 타이타닉호를 다루는 영화에마다 등장하는 장면이 되었다.
이 樂團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목에 대하여는 이견이 많으나 찬송가 '내 주를 가까기 하게 함은'이라는 게 定說이다. 하트레이는 평소에도 "만약 내가 탄 배가 침몰하면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을'을 연주하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에서 살아남은 남자들은 '비겁자'라는 욕을 먹을까 봐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고 한다. 뉴욕항을 목표로 처녀항해를 시작한 이 배에는 영국과 미국의 상류층이 많이 타고 있었다. 이들이 生死의 갈림길에서 보여준 紳士道는 두 나라의 엘리트가 가졌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의 한 예일 것이다.
타이타닉호에 救命보트가 적었던 이유는 승객수가 아니라 톤수에 따라 구명보트의 의무적 보유척수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영하 2도의 바닷물에 노출된 후유증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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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엘리트 연구: 1000명이 3억 인도를 다스린 비결
-청렴, 공평, 滋善이 행동기준
영국이 꽃을 피운 자유민주주의는 누가 만들어서 준 것이 아니라 귀족들과 자본가들이 王權과 싸워 쟁취한 것이다. 그들은 富에 따른 명예와 의무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영국의 신사는 힘 센 사람이 아니라 '신사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자본가였다. 체제를 만든 사람들이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독재자와 선동가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자유민주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자본가와 기업인들은 애국운동단체를 거의 돕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敵들을 돕고 있다. 그들은 독립투사들과 군인들과 혁명가들과 엘리트 관료들이 만들어준 체제의 혜택만 볼 뿐 체제를 싸워서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린 비겁한 富者들이다. 그러니 좌파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邊境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주요 언어만 해도 스무 가지가 넘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가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제국의 魂'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선반 하나 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 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사회적 慣行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殉葬(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지역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피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을
India Administrative Service로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公職규범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행정관료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慈善, 公平, 淸廉은 어느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필요한 국가엘리트의 행동규범이다
영국의 인도통치의 예에서 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다
자선, 공평, 청렴의 행동규범을 뒷받침한 것은 애국심과 자부심이었다
국가, 전통,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무장한 국가엘리트가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은 언제 만들어질 것이며,
이런 엘리트 집단을 양성할 국가적 교육기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
李承晩 대통령은 독립투사 엘리트의 대표였고,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는 군 장교단의 대표였다.
이들은 국가를 찾겠다고 싸우고, 국가를 지키려고 고민하고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國益을 중심에 놓고 思考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 뒤에 등장한 소위 민주투사 출신들은 당파, 지역, 계급의 이익을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시키면서
국가 엘리트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민주투사 출신들은
역대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였다
그들은 정권에 대한 유감이 국가에 대한 유감으로 변질됨으로써
애국심의 근저를 이루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정권을 잡고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란 의식보다는 손님의식,
또는 백성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적 교양을 바탕으로 하여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국가 엘리트층의 再建이
바로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再建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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