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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48년만에 부활하다.

해군, 부하 목숨 구하고 순직한 故이영우 중위ㆍ故김태원 중사 흉상제막식 가져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1-22 오후 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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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년 전인 1962년 1월, 두 명의 군 간부가 차가운 얼음바다에 몸을 던져 동료 전우를 구하고 순직했다. 이에 22일 11시 진해 해군 교육사령부 전투병과학교에서는 이들 故 이영우 중위와 故 김태원 중사를 기리는 흉상제막식 및 훈장수여증 전달식을 열었다.

 故 이영우 중위의 흉상은 장교생활관에, 故 김태원 중사의 흉상은 갑판부사관이 교육을 받는 제승관에 세워 후배 장병들에게 고인들의 희생정신과 전우애를 본받도록 했다.

 ▲ 1962년 1월1일 익수위기에 빠진 병사를 구해내고 순직한 故이영우 중위와 故김태원 중사. 해군은 1월 22일 해군 간부양성의 산실인 진해 교육사 전투병과학교에 이들의 흉상을 세워 살신성인의 정신을 기렸다.(해군본부 사진제공)ⓒkonas.net

 낙동함(PF-65) 승조원이었던 故 이영우 중위(학군4기, 당시계급 소위, 25세)와 故 김태원 중사(해군신병 68기, 당시계급 하사, 20세)는 1962년 1월 1일 인천 외항에서 순직했다.

 당시 함미에 묶여있던 단정(소형보트)이 거센 풍랑에 줄이 끊기며 낙동함에서 이격되자 갑판병 서종록 수병이 줄을 잡기 위해 급한 마음에 바다로 뛰어들었고, 높은 파도와 낮은 수온으로 위기에 처하자 김태원 중사가 서 수병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김태원 중사마저 익사 위기에 처하자 전기실장 이영우 중위도 이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 들었다. 10여 분 간의 사투끝에 서종록 수병은 구했으나 힘이 빠진 이중위와 김중사는 점차 배로부터 멀어져 실종됐다. 

 ▲ 해군 장병들이 故 이영우 중위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며 흉상에 묵념하고 있다.(해군본부 사진제공) ⓒkonas.net

 일주일만에 시신을 찾아 1월 11일 현 작전사령부의 전신인 한국함대사령부 연병장에서 이성호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장례식을 거행했다.

 정부는 故 이영우 중위와 故 김태원 중사에게 금성화랑무공훈장과 은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고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는 유가족이 없었다. 6.25 전쟁시 월남한 김태원 중사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김귀연(생존시 67세)씨는 순직 당시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故 이영우 중위의 혈육인 형은 고령으로 몸이 불편해 참석치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48년전 이들의 장례식을 집도하고, 흉상제작을 건의한 윤종원 목사(79세, 예비역 해군중령)가 감사인사와 함께 훈장수여증명서를 수령했다. 

 ▲ 故 김태원 중사의 흉상을 쓰다듬는 윤종원 목사. 윤 목사는 48년전 이들의 장례식을 집도하고 금번 흉상 건립을 건의했다.(해군본부 사진제공)ⓒkonas.netⓒkonas.net

 윤 목사는 고인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훌륭한 행적을 남긴 선배들이 있음을 후배 장병들에게 알리고자 해군본부에 흉상건립을 건의했고, 해군은 역사속의 영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후배 장병들에게 희생정신과 전우애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날 행사를 추진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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