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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院이 한 단어도 인정치 않은 나의 상고이유서

나는 이렇게 罪人이 되었다

Written by. 김성욱   입력 : 2010-01-23 오전 11: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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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2008년 6월 한 강연에서 「민노총이 자살한 조합원에 대해 보상(補償)해주는 규정이 있다」는 말을 했다가 민노총-민노당 측으로부터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당했고, 지난 해 12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했다.
 
 모든 재판의 기준은 2009년 1월30일 민사소송 1심이었는데, 당시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 홍기태(洪起台) 판사였다.
 
 아래는 지난 해 10월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로서 1년6개월의 소송 기간 중 기자가 제시한 항변(抗辯) 요지이다.
 
 법원은 기자의 항변(抗辯)을 단 한 줄, 아니 한 단어도 인정치 않았고, 민형사 모두 同種 사건 대비 최고액수 벌금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법리(法理)와 상식(常識)을 초월해 PD수첩, 강기갑 같은 거짓-폭력세력을 옹호하지만, 민노총-민노당을 건드린 기자에겐 한없이 잔인했다. 법원의 태도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아래의 항변은 단 한 줄, 한 단어의 정당성도 없는 것인가?
 
 상고이유서
 
 (1) 「명예훼손법」의 취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1심 재판부는(2심은 항소 기각) 『(피고의) 이 사건 강연 내용(기초사실)이 (피고가)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고, 명예훼손에 대한 배상을 판결하였습니다.
 
 피고측에서 『고의성이 없었고, (이 사건 강연 내용이) 진실이라고 여길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거꾸로 가는 민주노총」(을가 제1호증)의 내용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의 공제회 보상규정 「자살의 경우 사망시 지급하는 공제회의 보상급여를 지급한다」는 내용』에 대해 『위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의 분신자살하였던 전례가 없는 점』과 『기자로서 활동하는 피고로서는 이 사건 강연 내용과 같은 의심이 들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조사를 거쳐 충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점』 등을 들어 위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억압이라고 보여집니다.
 
 원고들은 그 동안 분신 등의 방식을 통한 소속 노동자들의 자살 행위에 대해 방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고, 열사라는 칭호 아래 모금 활동, 기념사업 활동 등으로 죽음을 미화하려는 노력을 공개적으로 보여 온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여 분신한 민주노동당원 허세욱씨의 경우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정신계승사업회」의 주관 아래 기념관도 세워져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차원에서 모금운동 등을 펼친 것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모금된 돈의 유족 전달 문제로 물의를 빚은 것도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에 민주노총 부산·울산·경남본부와 부산경남울산열사정신계승사업회는 '솥발산 열사묘역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업 추진을 위해 모금운동에 들어갔고, 이곳에는 이른바 「열사」 25인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2005년 분신자살한 화물연대 김동윤씨의 경우, 화물연대의 요구로 부산시가 김씨 유족들을 돕기 위해 모자보건법상 모자가정 지정, 임대주택 입주 지원, 성금 모금 등을 합의했습니다.
 
 2003년 이후 2007년 불과 4년 사이에 민주노총 소속으로 자살한 사람은 허세욱·배달호·이해남·이용석·박일수·조경식·강용길·김동윤·이승대·전응재(以上 焚身), 박동준·김광석(以上 投身), 김주익·김춘봉·김남식·김관덕·임대삼·김형준(기타 自殺) 등 19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에 진실의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1980년대 치열한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금에 있어 이러한 방식의 죽음이 추앙되고 미화되며 기념되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영역에서 방관·방치하고 있는 야만적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택시운전수로 일하다 온 몸에 화상을 입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허세욱씨의 경우만 해도 박수를 쳐줄 일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원고들이 나서서 방지책을 모색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이, 생명에 대한 건전한 의식을 가진 이들로서는 당연한 판단일 것입니다. 원고들이 그렇게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원고들이 주장하는 대로 피고의 언술과는 달리 「구체적 보상 규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러한 죽음의 행렬이 제어되고 반성되지 않는 상황만은 확인이 더 필요치 않았으며, 원고에게 죽음에 대한 「방조」의 정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인 바, 원심 재판부가 판단한 대로 피고가 『허위를 알면서도 고의로 잘못된 사실을 유포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피고의 강연 내용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범위에서 허용될 수 있다고 보고, 원심 재판의 입장을 정정해 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거대한 조직, 거대한 정당에 대해서 한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피고의 비판적 언술은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는 말해야 옳은 소수자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명예훼손법의 취지가 이런 표현의 자유를 막는 데 있지 않고, 더구나 거대 조직이 그 막강한 힘으로써 공익 기관인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막는 데 사용하는 것은 명예훼손법의 취지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헌법정신과 정의의 원리에 반하는 일이라고 사료됩니다.
 
 (2) 1심 재판부의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되는 바 공정한 재판은 원천적으로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피고의 이 사건 강연 내용은 기본적으로 2008년 5~6월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국가적 사태의 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이 2009년 8월 30일 펴낸 '미(美)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 시위사건 수사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촛불시위는 106일간(5월 2일~8월 15일) 2398회 열렸으며 연인원 93만2000명이 참가했고, 이 중 불법·폭력시위 혐의로 1476명이 입건됐으며, 이 중 43명은 구속, 165명은 불구속, 1050명은 약식기소되었습니다. 진압에 동원된 경찰은 연인원 68만4540명(7606개 중대)에 달했으며,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경찰관 100명이 중상, 401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민간인은 88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백서에 인용된 한국경제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촛불시위로 인해 입은 직접적인 경제 피해액은 1조574억원(민주노총 총파업 손실·경찰 관리비용·제3자 손실 등)에 달했다고 합니다.
 
 새 정권이 등장한 지 채 100일이 되지 않아서 일어났던 이 일련의 사태를 정치적 시각 없이 읽어낼 수는 없을 것이고, 그 인적 물적 금전적 손실만으로도 국가적 비상사태였음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태를 둘러싼 입장과 감정, 태도 등으로 인하여 사법부에 초유의 파동이 초래되었고, 신영철 박시환 대법관 사태뿐 아니라 박재영 판사의 촛불 재판으로 인한 사회적 갑론을박도 사법부에 큰 부담을 주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본 사건 강연 내용 역시 당시의 이른바 광우병 사태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던 것인 바, 이 사태에 대한 재판부의 정치적 입장이 본 사건을 판결하는 데 「편견」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원심을 맡은 홍기태 재판장은,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개인적으로 법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시위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을 때 이를 비판하는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2008.8.14) 제하의 조선일보 사설에 대해 직접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는 『법복을 벗어라?』(로시컴 칼럼, lawsee.com)를 게재하기도 하여 박 판사를 편들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한 홍 재판장의 정치적 입장은 이같이 장외에서 이미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국민참여 수석을 지낸 홍재판장의 부인 박주현 변호사(시민경제연구소장)는 당시 쇠고기 고시 반대성명을 발표한 시민사회 인사 159인의 명단에 포함되는 등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더욱 명명백백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피고의 발언은, 광우병 사태가 과장과 허위 뿐 아니라 모종의 세력에 의해 조장되는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리는 강의의 한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피고의 의견이 촛불시위와 광우병 사태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피고와 원고의 상황이 명백한 정치적 견해의 상충인 바, 공개적으로 피고측의 정치적 입장과 견해를 달리하는 것을 밝힌 재판부가 이 사건을 다룬 것은, 피고측 입장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공정한 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공권력조차도 무력함을 드러냈던 2008년 5월 6월의 상황에서 광우병 사태의 문제점을 강한 어조로 갈파한 피고의 입장에 대해 동조하거나 동의하는 입장을 가진 판사들이 원심 재판부를 구성했을 경우, 피고에게 「사실 확인의 의무」를 요구하며 명예훼손 배상을 판결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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