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官의 길, 수도자의 길
사법부 스스로 세속화, 정치화, 집단주의화, 대중영합주의, 주관주의화가 발붙이지 못하게 자계의 징표 보여야
미국에서도 판사들의 정치화 문제가 논란된 적이 있다. 공화당 지지 판사들은 노-사 분규 때 기업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고 조사된 바 있지만, 2009년에는 위스콘신주 지방법원 판사 바바라 크랩(Barbara Crabb)의 판결이 만만찮은 풍파를 일으켰다.
그녀는 판사들의 정치화를 금지하는 기존 법규가 오히려 음성적인 정치관여를 촉진할 수 있다며, 그것을 아예 양성화 하자는 견해를 판결을 통해 밝혔다. 양성화란, 판사들의 특정 정당 지지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판사선거 출마를 위한 모금활동을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녀의 판결은 즉각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당장 실시되는 판결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반대자들은 그녀의 판결이 “더러운(nasty), 특정이익에 좌우되는(special interest group-fuelled), 그리고 초당파성을 형해화(nonpartisanship-in-name-only) 시키는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 여론은 그녀의 판결이 판사 선거에 대한 정당들의 관여를 더 촉진시킬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그런 정치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대목-“대부분의 판사들은 정치화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관찰자들(observers)의 전망이다. 왜 그런 낙관적인 전망이 나왔을까? 아마도 판사들 절대다수의 개인적인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신뢰했기 때문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판사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속으로 특정한 정치 경향에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지만, 법정의 심판자로서는 초당파성의 직업윤리를 투철하게 견지할 것이라는 국민적 믿음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독한 결단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법관이 법정에서 정치적 신념에 좌우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것도 물론 대단히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법관들 스스로 피나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법관의 길은 시류(時流), 집단행동, 계율(戒律)로부터의 이탈에 휩쓸리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고독한 수도자적 삶이어야 한다는 당위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세속화 돼 버리고 있는 오늘의 대중사회에선 너무 과도한 주문일까? 아니라고 보고 싶다. 법관은 성직자 못지않게, 세속적인 감정이입(感情移入)에서 벗어나 있어야만 저 높은 곳에서 ‘학(鶴)의 일성(一聲)’ 고고하게 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을 100% 존중하려 한다. 그러기에 더 절실하게 염원하는 것은 누가 밖에서 뭐라고 떠들기 전에 사법부 스스로 사법부의 세속화, 정치화, 집단주의화, 대중영합주의, 주관주의화가 발붙이지 못하게 할 일대 자계(自戒)의 징표를 보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회의적이던 여론도 “다수 판사들은 정치화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깊은 신뢰와 존경을 재확인할 것이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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