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北정치범수용소’는 있다"
김태진, 정광진, 김영순 3인 탈북자 '북 정치범수용소'실태에 관해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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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운동본부(대표 김태진)와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공동대표 도희윤)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피해실상을 알리기 위해 수용소에 수감됐던 탈북자 3명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하는 기자회견을 26일 프레스센터(서울 중구) 외신기자클럽에서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김태진 대표와 정광진 사무국장, 북한민주화위원회 김영순 여성회장이 외신기자들에 질문에 답변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왜? 언제 어느수용소에 갖혔으며 한국에 어떻게 들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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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 북한 정치범 수용소는 짐승도 얼굴을 붉힐 정도이다. 3시 반에 일어나 4시 반에 출근해 중노동을 한다. 생명을 잃은 부모와 자식을 거적에 땅 파고 묻는다. 비타민 결핍증으로 태양이 비취면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다. 9년동안 기약 없는 길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고달팠다. 아직도 내 남편의 생사여부를 모른다. 내 자식은 요덕 수용소에서 총살됐다. 날아다니는 것, 기어다니는 것, 돋아나는 풀 다 뜯어먹는 그런 곳이다. 심지어 소 똥에 있는 옥수수를 주서 먹는 수용소다.
1970년 8월 보위부 수용소 거쳐 요덕 수용소에 가게됐다. 가기 전까지 죄명도 모르고 갔다. 탈북한 이유는 요덕 수용소에 갔기 때문에 배신감으로 한국에 왔다. 성혜림과 친구고 김정일의 사생활을 잘 알았다는게 죄목이었다.
김태진 : 1985년도에 북한 사회의 모순을 깨달았다. 중국의 개방으로 알았다. 85년 12월 탈북해 89년 중국에서 체포돼 강제 북송당했다. 8개월 조사 후 88년에 15호 요덕수용소로 갔다. 4년을 생활하고 92년도 나왔다. 중국에 가고 싶은 생각을 가졌지만 감시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97년도 식량기근으로 감시가 와해돼 중국으로 탈출했다. 2001년에 한국 선교단체에서 정보를 듣고 연변에서 몽골을 거쳐 2001년 6월에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정광진 : 99년 7월에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중국에서 정상적인 무역행위를 하고 있었는데 측근이 한국 안기부와 거래한다고 신고해 체포됐다. 9개월 조사 후 2000년 4월 요덕 수용소에 수감됐다. 요덕에서 3년간 있었고 2003년 4월에 석방됐다. 나온지 12일 만에 중국으로 탈북했다. 다시는 북에 가기싫어 한국에 들어왔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2004년 4월에 입국했다.
정치범수용소는 일반적으로 못 나오는 곳으로 알고 있다. 나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리고 구체적으로 죄명이 무엇이었는지
김영순 : 죄명 모르고 수용소에 들어갔다. 여고에서 대졸 동기동창이 성혜림이다. 김정일 사생활을 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죄목이 우습다. 민주주의 나라에선 죄도 아니다. “김일성 목에 혹이 있다”, “김일성 초상화를 오손했다”, 김일성 석고상을 깨뜨려서 온 사람, 남한 비디오와 방송을 봐서 온 사람 등. (나는) 성혜림과 친구라 김정일 사생활을 잘 안다. 김정남을 난 사실을 말해서 온 사람, 일제시대 일본영화에 출연했다고 온 사람 등 이런 것이 죄명이다.
김태진 : 북 정치범 수용소는 북에서는 관리소 등으로 부른다. 공식적인 이름으로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경비대 15호’라고 나올 때 보니 그렇게 써 있더라. 15호 수용소, 22호, 25호 교화소 등으로 부른다. 부락형으로 되어 있고 22호만 감방형으로 되어 있다. 15호에는 혁명화 구역이라고 자그만 곳이 있다. 이 15호 혁명화 구역에는 엘리트 계층이 많이 있다. 한 사람을 처벌하면 8촌까지 (북 정권의) 적이 되는데, 들여보내 나오지 못하는 인접 수용소의 실태를 보면서 김정일이 새 삶의 기회를 준 것이라는 목적에서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저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라는.
재판이 없어 형기 받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풀어주는 주체는 보위부다.
김영순 : 죄인들이 석방되고 나와 내 죄가 8년인가, 9년인가 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요덕 수용소에 수감된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형태로 알려졌는가? 공포의 대상인지 잘 모르는지
정광일 : 90년대 말 북한 사회에서는 정치범을 매우 꺼려하는 분위기다. 당시에 말 잘못해 끌려온 사람이 많았다. 한 마디로 상상 못한다. 주민들 사이에선 공포의 대상이다. 정치범 수용소가 있기 때문에 북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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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발언에서 김태진(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는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어제 오늘 현재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했고 한다. 안타까운 부분은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15호 수용소에서 아직도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직도 그 고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15호 수용소에서 수감됐던 수많은 탈북자들이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북에 있을 때 서약하고 나와 그렇다. 북은 연좌제가 있다. 그런 부분들이 있어 활동하는 사람들만 활동한다. 최근 탈북자가 이야기하면 식상하지 않지는 안겠느냐?”고 되물으면서 최근 탈북자들에 의한 실상을 밝히지 못하는 부분을 안타까워 했다.
김 대표는 “이 시간에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위해 일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에서 북한인권 이야기하면 이렇게 많은 기자들 모이지 않는다. ‘정치범수용소 해체 운동본부’라는 이름 넣고 북한인권에 대해 알릴 수 있는데 이름조차 쓰지 못하게 했다. 사실 이번 정치범수용소 조사를 한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우리는 아웃됐다. 누구 탓 필요없이 하나하나 알려나가겠다. 그래도 국제사회 여러분들 관심과 아직도 아우슈비츠로 가슴 아파하고 범법자 처벌하는데, 현재도 ‘정치범수용소’는 있다”며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탈북자 실상조사에서 이들 북한인권단체가 배제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한편, ‘북한인권’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을 호소했다.
도희윤(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공동대표는 ICC(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일 제소 문제에 관해, “ICC는 자료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결론을 짓기보다는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엔인권대사 몬타폰에 자료를 전달했고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 일본 정부와 협력해 북에 납치된 사람들에 대한 문제 갖고 한·일 공동으로 ICC에 제소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진척된 사항을 밝혔다.
김영순 여성회장은 “성혜림은 월북작가 이기영의 맏며느리다. 성격은 온화하고 귀엽게 생겼고 김정일보다 6년 연상이다. 이기영 아들 중 하나가 김정일과 동창이고 그 사람과 김정일이 서로 친해 김정일이 친구 집 자주 드나들었다. 성혜림은 김정남을 72년에 낳았다”고 김정일 가계도에 관해 밝혔다. 김정남은 71년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72년도가 정확하다고 김영순 회장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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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진 사무국장은 “배고픔과 고된 노동이 요덕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다. 한국에 온지 5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다시 끌려가 노동에 시달리는 꿈을 꾼다. 술 많이 마시고 잔다. 술을 안 마시면 잠을 못 이룬다. 정신적 치료 받고 있다”며 끔찍한 기억에 대한 고통을 술회했다. 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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