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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 장군 특별유물전 성황

52일간 진중 기록 '병인일기'는 '난중일기'에 필적... 이 달 말까지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0-01-27 오후 3: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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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3년인 1866년 9월 프랑스는 흥선대원군의 병인박해를 구실로 함대를 보내 강화도를 침범했다. 이른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고자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丙寅洋擾)다.

 ▲ 지난해 11월16일부터 전쟁기념관 2층 특별전시관실에서 열리고 있는 양헌수 장군 기증유물 특별전. ⓒkonas.net

 이에 조선은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10월1일 밤 강화해협을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가 잠복, 이틀 후인 3일 정족산성을 공격해 오는 프랑스군을 물리치기에 이른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대의 정족산성 승리는 프랑스군을 물러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군을 맞아 정족산성 전투에서 휘하 병력을 지휘해 전투를 승리를 이끈 장군이 양헌수 장군이다. 그 양헌수 장군을 기리고 후손들이 기증한 양헌수 장군 기증 유물 특별 전시회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16일부터 이 달 말까지 전쟁기념관 2층 특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양헌수 장군 기증유물 특별전 - 양헌수 장군이 들려주는 병인양요 이야기』전시회가 바로 그것이다.

 ▲ 양헌수 장군 초상화. ⓒkonas.net

 전쟁기념관에서 양헌수 장군의 기증 유물에 대한 특별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은 전쟁기념관이 지난 2008년 10월 양헌수 장군을 '이 달의 호국인물'로 선정하고 현양 행사를 거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와 관련해 전쟁기념관 정삼영(당시 유물팀장) 입장관리팀장은 양헌수 장군의 유물을 후손으로부터 기증 받게 된 내용을 설명하면서 "평일에는 평균 2천5백 여명에서 4천명 정도가 관람하고, 주말에는 6천여 명에서 8천명이 찾아 유물전을 관람하고 있다"고 말했다.

 ▲ 40년간 관직생활을 하면서 양헌수 장군이 남긴 책, 서, 시, 보 등 저술서. 맨 우측 '하거집'은 양 장군의 호를 따서 만든 문집. ⓒkonas.net

 전쟁기념관 측에 의하면 이번 기증유물 특별전시회에는 병인일기를 비롯하여 서책 16점, 어사화, 군복, 양헌수 장군의 무과 급제에 이르는 임금의 교지(敎旨) 등 102점의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포함되어 있다.

 ▲ 왕이 내린 교지. 총 65점으로 초기부터 마지막 관직에 이르기까지 한 개인에게 내려진 임금의 교지가 일괄 남은 경우는 흔치 않다고 주최측이 전했다. ⓒkonas.net

 특히 이 중에서도 1866년 10월11일에서 12월2일에 걸쳐 진중에서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필적할 정도로 귀중한 사료적 가치로 여기는 '병인일기'나 오늘의 공무원 임명장 격에 해당하는 총 65점에 달하는 '교지'는 무과시험 합격부터 퇴임까지 전 관력(官歷)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 군복과 어사화 등. 양헌수 장군이 평시 입었던 무관복. 과거급제를 상징하는 머리 장식용 꽃인 어사화. 손상부위 없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맨 우측은 당시 관직에 있던 문무관이 사용하던 오늘날의 명함. 중앙에 호패와 도포끈도 보인다. ⓒkonas.net

 한편 26일에도 양헌수 장군 유물기증 특별전에는 초등학교 학생을 비롯한 관람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관심을 갖고 유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 학생들이 인솔교사의 설명을 귀담아 듣고 있다. ⓒkonas.net

양헌수 (梁憲洙, 1816<순조16>∼1888<고종25>. 조선 말기의 무신) 장군

1848년(헌종 14)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도총부경력·훈련원첨정을 거쳐 1854년(철종 5) 희천군수가 되었다. 그뒤 어영초관·갑산부사·어영청좌부천총을 거쳐, 1864년(고종 1) 제주목사 겸 방어사로 부임했다.

1866년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대원군의 프랑스 신부 처형을 빌미로 조선을 침략해오자 서울 방비를 위해 주교도청(舟橋都廳)·훈련도감좌별장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순무영천총으로 선봉이 되어 강화도로 출정했다. 10월 1일 적군 몰래 강화도로 건너가 정족산성에 입성하여 진을 쳤다.

10월 3일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프랑스 분견대 160명이 정족산성을 공격해오자 매복작전으로 적 6명을 사살하고 수십 명에게 부상을 입혀 적을 격퇴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했다. 이에 프랑스군은 강화성을 약탈, 방화한 뒤 철수했다.

이 공으로 한성좌윤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1868년 어영중군, 1869년 황해도병마절도사, 1873년 어영대장을 지냈다. 1874년에는 좌포도대장이 되었으며 이듬해 형조판서·금위대장 등을 지냈다. 그 뒤 1879년 도총부도총관, 1882년 지삼군부사, 1884년 공조판서, 1887년 춘천부유수 겸 독련사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하거집〉이 있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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