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빨갱이를 양성하고 있다"
反자본주의 정서 부르는 '가진자들'의 추한 행태
2007년 8월 105세로 타계한 미국 뉴욕의 자선가 부르크 아스토 여사는 돈의 효용가치에 대해 매우 중요한 말을 남겼다. "돈은 비료와 같은 것이어서 뿌려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종이조각일 뿐이다."
전재산 뉴욕시에 바치고 빈민굴에 가서 산 아스토
아스토는 19세기 초반 毛皮商으로 시작해 미국 최초의 최고 갑부로 성공한 존 제이콥 아스토의 손자 비센트 아스토의 부인이다. 그녀는 당시 6000만 달러에 달하는 남편의 유산과 그의 이름을 딴 6000만달러 상당의 '빈센트 아스토 재단'을 인수하여 자선사업에 여생을 바쳤다.
놀랍게도 아스토는 말년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자신은 뉴욕의 이스트 할렘 빈민굴 누더기 거처에서 생활하다 숨졌다. 뉴욕타임스는 그녀가 타계하자 빛나는 자선사업 업적을 기려 무려 4단 크기의 지면을 할애해 추모하였다.
아스토는 빈민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생활 기반을 조성해주었고 가난한 노인과 교회를 지원하였으며 불우 소년·소녀들을 아낌없이 도왔다. 뉴욕의 도서관들과 박물관들에도 기금을 대주었다.
그녀가 전 재산을 뉴욕에 바친 동기는 명백하였다. 자신의 돈은 남편이 "뉴욕에서 번 것이므로 모두 뉴욕에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앞서 인용한 바와 가이 '돈은 비료와 같은 것이어서 뿌려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종이조각일 뿐'이라며 전재산을 사회에 뿌리고 할렘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아스토가 뉴욕에 "비료로 뿌린" 돈은 1억 9800만달에 달한다. 물론 이 자선액은 그 보다 앞선 세계적 재벌 헨리 포드, 존 D 록펠러, 안드류 카네기 등에 비하면 많지는 않다.
록펠러는 미국의 최초 최대 재벌로 석유왕이었다. 그는 120여년 전인 1897년 은퇴할 때 10억달러의 재산을 모았다. 그는 이 천문학적인 재산 중 절반이 넘는 5억5500만달러를 자선사업으로 기부하였다. 그는 '록펠러 재단'을 비롯해 수많은 자선 기구들을 설립해 빈민과 사회사업 지원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미국 재벌들 자식들에게 안주고 사회에 환원
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도 마찬가지로 재산을 자선사업에 털어넣었다. 그는 1908년 승용차 '모델 T'를 디자인하여 차 값을 혁명적으로 낮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하였다. 포드도 '포드 재단' 등 자선 단체들을 설립하여 그 많은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였다.
강철 왕 안드류 카네기도 전 재산을 자선사업에 맡겼다. 그는 미국 최초의 '카네기 강철 회사'를 창설하였다. '카네기 강철 회사'는 1900년 미국 전체 강철의 25%를 생산하였고 철광, 코크스(骸炭), 용광로, 광석 운반선, 철도 등을 지배하였다. 그는 1901년 '카네기 강철 회사'를 '유에스 스틸 회사'에 4억5000달러에 넘겨주었다. 그는 그후 이 돈을 자선사업에 던졌다. 카네기는 "행복의 비결은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며 모든 재산을 자선사업을 위해 "포기"하였다.
카네기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선 사업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카네기 법인'을 설립해 지금까지 계속되도록 하였다. 그가 기부한 재산도 빈민층을 위한 구제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전국에 걸쳐 도서관과 공공건물을 짓는데 쓰였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 중 '카네기'의 이름을 딴 건물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 필자가 학위를 마친 대학에도 웅장한 '카네기 홀'이 우뚝 서 있다.
록펠러, 포드, 카네기 등은 미국이 19세기 중엽 농업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발전하면서 대재벌이 형성되어가던 때 우뚝 치솟은 재벌 1세대들이다. 그들은 재산을 구차하게 법을 어겨가면서 자식들에게 편법증여하지 않고 사회에 모두 바쳤다. 아리스토 여사의 말대로 모두 사회에 되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전재산 기부하고도 자신의 이름 안남긴 워렌 버핏
미국 산업화 1세대가 남긴 빛나는 '재산의 사회환원' 덕목은 후대로 이어졌다. 21세기 세계 최고의 부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도 선배들의 길을 따르고 있다. 그는 50대초반의 젊은 나이지만 경영 일선에서 은퇴해 820억달러(한화980조)에 달하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하였다.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으로 전 세계 돈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기부하기에 바쁘다.
투자의 달인으로 불리는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도 평생 번 재산을 자선사업에 투자하기로 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게이츠에 이어 두 번째로 돈이 많은 사람이다. 70대 후반인 버핏 회장은 2006년 자기 재산의 85%에 해당하는 374억달러를 게이츠 회장의 '빌 앤드 멜린다 게의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하였다.
그는 자기 이름을 딴 재단 설립을 거부하고 게이츠 재단에 넘기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게이츠 재단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선 활동을 벌링ㄴ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천문학적인 기부금에 자기 이름을 남겨 후세에 기억되기 보다는 그 기금이 효율적으로 분배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왼손이 행한 선행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진정한 기부문화 정신이다.
버핏 회장은 자신에게는 무척 인색하다. 그가 살고있는 집은 1958년에 3만1500달러를 주고 산 허름한 집이다.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시에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CEO)이면서도 버크셔 헤서웨이에서 받는 연봉은 10만달러 밖에 안된다.
"사회자원이 특혜가 되어 대물림돼서는 안된다"
그는 "사회자원이 일종의 특혜가 되어 대물림돼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대물림 거부 신념대로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고 후계자를 공개적으로 물색하고 있다. 그의 후계자 조건은 독립적인 사고방식, 위기를 인식하고 피할 수 있는 능력, 감정적으로 안정된 성격, 인간과 기관에 대한 예민한 통찰력 등 이다.
토크 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도 자선사업에 열성이다. 흑인 빈민가 출신으로 그가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 쇼'는 미국에서만 4900만명이 시청하고 전 세계 121개국에서 방영된다. 그녀는 미국 부자 서열 235 등이지만 기부 순위는 32등에 속한다. 장학기금, 자원봉사단, 빈민 청소년 지원 등 활발하다.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인 조지 소로스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푸는데는 인색하지 않다. 그는 2009년 8월 뉴욕의 빈곤층 아이들을 위해 3천5백만달러를 선뜻 내놓았다. 그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선언을 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산업 1세대로부터 시작된 헌신적인 자선문화는 전 미국 시민에게도 확산되었다. 고소득자나 저소득자나 가릴 것 없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 전 세계를 통해 국민 1인당 국민소득에서 미국 만큼 기부를 많이 하는 나라는 없다.
게이츠는 2008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자선사업의 활성활ㄹ 역설하였다. 그는 전 세계 기업들이 각국 정부 및 비영리단체들과 협력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펼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강의 제목은 '21세게형 자본주의를 향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자본주의체제가 건강해지려면 기업인들이 가난한 계층을 적극 지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명제였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자유시장경제체제 사회이다. 가난한 사람은 병이나도 병원에 가지못하고 한 겨울에 전기나 가스도 없는 어름장 같은 방에 누워지낸다. 대 도시 길거리엔 천막이나 침낭을 펴고 덜덜떨며 지내는 실직자들이 자주 눈에 뛴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는 사회주의 혁명을 외쳐대는 폭력혁명 분자들은 없다. 가진자들에 대한 증오심도 없다. 못가진자들은 자신의 빈곤을 가진자들에 의한 박탈이나 착취로 원망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이 무능했거나 불운한 탓으로 자책한다.
'가진자'들에 대한 증오심없는 미국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 번째로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미국의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이다. 미국에는 식민지 시절부터 서부에 텅 비어있는 주인없는 땅이 많았다. 독립 당시 전체 국토 면적의 3배 이상이나 되었다.
미국 동부의 비좁고 복잡한 지역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들은 기득권층에게 맞서 피흘려 싸워 남의 기득권을 뺏으려 목숨 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서부의 주인없는 프런티어(변방의 땅)로 나가 개척해 기득권층 부럽지 않게 풍요롭고 자유로운 새 삶을 향유할 수 있었다.
1893년 미국 위스콘신 주립 대학 교수인 프레더릭 잭슨 터너는 미국 역사학회에서 "미국 역사에서 프런티어가 차지하는 중요성" 제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역사적인 논문에서 미국 서부의 "주인없는 자유의 땅, 이 땅의 계속적인 점유, 미국 개척자들의 서부로의 전진이 미국의 발전을 설명한다"고 밝혔다.
터너 교수는 미국엔 유럽과 같은 계급갈등이나 피비린내 나는 폭력혁명이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주인없는 자유의 땅인 서부 프런티어가 존재한 덕이라고 하였다. 광활하고 기름진 프런티어는 불만에 찬 미국인들에게 출구를 마련해 줌으로써 기득권층 것을 탈취하려는 유혈투쟁을 피할 수 있게 했다고 하였다. 프런티어의 존재는 계급 투쟁의식 대신 선의의 경쟁의식을 불어넣었고 계급없는 사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