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 이동휘선생 75주기 추모식 열려
민족주의 교육과 구국 계몽운동 주도, 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 독립군 양성에 기여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1-29 오후 2:17:59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겸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성재 이동휘 선생 75주기 추모식이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회장 조향록) 주관으로 열렸다.
이 날 추모식은 이희범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기념사업회원, 하빈이씨 종친회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동휘 선생(1873.6.20~1935. 1.31)은 함남 단천에서 출생, 1899년 한성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2년부터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활동하다가 1906년 군직을 사임하고 계몽운동에 투신해 강화도에 보창학교를 설립했으며, 대한자강회 결성에도 참여하는 등 민족주의 교육과 구국 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08년에는 서북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안창호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일제가 한국 기독교 세력을 뿌리 뽑기위해 조작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 피의자로 체포된 700여 명 중에서 122명이 정식 선고를 받았고 이 가운데 105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으로 피체돼 황해도 무의도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었고, 1912년 유배지를 탈출, 북간도로 망명해 김립․계봉우 등과 광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주의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거점을 옮겨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權業會)에 가담해 이상설, 이갑,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민족해방투쟁에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1914년에는 중국 왕청현(汪淸縣) 라자우거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3․1운동 직후 블라디보스톡에서 문창범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했고, ‘대한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서 동녕현에 독립군을 지휘할 임시군집부(臨時軍執部)를 설치해 독립군 양성에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1919년 8월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및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할 독립군 양성에 헌신했다.
그리고 1921년 국무총리직 사임 후 국민대표회 집행위원과 국민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전력했으며, 1935년 1월 31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62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이 날 추모식은 이희범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기념사업회원, 하빈이씨 종친회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동휘 선생(1873.6.20~1935. 1.31)은 함남 단천에서 출생, 1899년 한성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02년부터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활동하다가 1906년 군직을 사임하고 계몽운동에 투신해 강화도에 보창학교를 설립했으며, 대한자강회 결성에도 참여하는 등 민족주의 교육과 구국 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08년에는 서북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안창호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일제가 한국 기독교 세력을 뿌리 뽑기위해 조작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 피의자로 체포된 700여 명 중에서 122명이 정식 선고를 받았고 이 가운데 105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으로 피체돼 황해도 무의도에 유배되는 고초를 겪었고, 1912년 유배지를 탈출, 북간도로 망명해 김립․계봉우 등과 광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주의 교육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1913년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거점을 옮겨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權業會)에 가담해 이상설, 이갑, 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민족해방투쟁에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1914년에는 중국 왕청현(汪淸縣) 라자우거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3․1운동 직후 블라디보스톡에서 문창범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했고, ‘대한임시정부’ 군무총장으로서 동녕현에 독립군을 지휘할 임시군집부(臨時軍執部)를 설치해 독립군 양성에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1919년 8월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및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할 독립군 양성에 헌신했다.
그리고 1921년 국무총리직 사임 후 국민대표회 집행위원과 국민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전력했으며, 1935년 1월 31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62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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