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도층은 아주 좋은 투쟁 대상이다
부패척결-. 이것은 권력의 영원한 과제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그렇다. 모든 정권이 집권 초기에 부패추방을 부르짖지만 대체로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5·16 쿠데타의 동기를 부패와 가난의 추방, 이 두 가지로 집약했다.(‘국가와 혁명과 나’) 그러나 그의 권력의 그늘에서 자란 정치군인들은 그후 엄청난 부패로 말미암아 포승줄에 묶이는 수모를 격어야 했다.
사실 돈과 정치권력과의 유착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정부패를 그렇게도 싫어하던 박대통령 시대에 비롯되었다. 집권기간 중 대통령 자신은 청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 밑에서 호가호위한 권력실세들은 권력을 배경으로 수십·수백억 단위의 부정한 돈을 챙겼다. 1965년 한일회담이 타결되고 청구권자금이 국내에 유입되자 정치권에서는 엄청난 리베이트가 기업들로부터 흘러 들어갔다.
박대통령의 뒤를 이은 대통령들은 김영삼 전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결같이 재임중에, 또는 퇴임후에 사저를 아방궁같이 호화판으로 꾸미거나 새로 짓고 살았다. 뿐만아니라 미국을 반대하고 미워하던 대통령일수록 그 아들·딸들에게 미국에 호화주택을 사주곤 했다. 이들에게 있어 국민의 눈쯤은 두렵지도 겁나지도 않은 것이다.
또한 박대통령 이후의 정권들은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씩의 거금을 챙겨 사복을 채웠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서는 아예 수조원대의 기업 자체를 통째로 빼앗는 강도적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정치자금을 바치지 않았거나 이념·사상적으로 적대적인 기업에 ‘부실’딱지를 붙여 빼앗아 갖고는 말 잘 듣는 진짜 부실기업에 헐값으로 팔아 넘기는 수법으로 대기업을 거들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본지 2월호(한국논단 104-105p)에 ‘김대중은 정치자금 안줬더니 14조원짜리 대한생명을 강탈했다’ 제하의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김대중이 대통령 선거에 네 번째로 입후보 한 1997년 여름 측근인 K씨가 대한생명 회장(당시 최순영 회장)실을 여러번 찾아왔다. 최회장은 한국 기업인 답지않게 매우 순진하고 세상물정을 잘 몰랐다. 그래서인지 K씨에게 내민 정치자금이 고작 3천만원이었다. K씨는 “누굴 거지로 아느냐?”면서 3천만원짜리 보증수표가 든 봉투를 내팽개치고 나갔다.
그 5개월 후 김대중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듬해 2월 취임하자마자 갬대중의 보복은 시작됐다. 잘 나가는 대한생명을 ‘부실기업’으로 낙인찍고 검찰이 오너(최순영 회장)를 전격 구속한 다음 여러 경로를 거쳐 대통령 부인의 수양 아들로 소문난 H기업으로 넘겨졌다.
김대중에게 밉보여 찍힌 기업은 대생 외에도 대신증권, 신동아 그룹, 한진 등 여럿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주) 한국논단의 주주들이었다. 그중 대신과 신동아는 재빨리 손(?)을 써서 위기를 모면했다. 미처 손을 쓰지 못한 한진그룹은 추징금 550억을 물리고 조양호 회장을 탈세혐의로 구속까지 했었다.
김대중은 보수우파 언론매체에도 손을 댔다. 동아일보의 김병관 회장과 조선일보의 방상훈 회장을 구속하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국세청 직원 수백명을 풀어 1백여일 동안 전례없는 엄격한 세무조사를 펼쳤다. 심지어 매일 지급되는 야근비 누적액이 수억원에 이르자 ‘횡령’혐의로 자회사 사장이 입건되기도 했다. 1인당 1만원도 안되는 야식비를 일일이 영수증 처리를 못해 사장이 횡령한 것으로 낙인찍은 것이었다.
그러나 좌파 정치권력에게 예쁘게 보인 기업들은 수조원대의 횡재를 했다. D기업의 오너는 저 높은 곳의 안주인이 보석 수집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궐 안방마님’께서 제일 탐내고 있는 물건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12캐럿의 청자색 다이아몬드였다고 한다. 이 명품이 홍콩의 모 점포에 있다는 사실을 D기업 오너는 알아냈다. 그는 지체없이 홍콩지사에 긴급연락, 이 명품을 구해 오도록 했다.
명품은 곧 북한산 밑 기와집 ‘안방마마’에게로 진상되었다. 시가 50억원짜리 명품 다이아였다. 그 대가는 엄청났다. 단돈(?) 50억원을 쓰고 자산가치 5조원, 상대가치 6조원, 현금보유 5천억원의 거대한 정부투자기업을 일금 3,057억원에 사 들였으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기업은 분식결산을 통해 자그마치 1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형제끼리 나눠 먹다가 ‘형제의 난’까지 일으켰다고 한다. 대기업 오너들의 비자금과 정치권력과의 관계는 불가분리의 관계인 것 같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이 4천6백억원, 노태우 전대통령이 4천4백억원(6천7백억원설도)이었다고 한다.
50여년간 권력을 추구하며 굶주려왔던 김대중은 얼마나 될까? 아무도 모를만큼 그의 수법은 교묘했다.「김대중과 돈」에 관해 공개된 몇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2002년 4월 9일자 조선일보. “국정조사 요구서에서 한나라당은, 현정권의 부패상을 상징하는 3대 게이트가 각각 별도의 비리사건이 아니라, 모든 게이트의 종착역이 결국 하나의 몸통인 김대중평화재단과 (김대중의 차남인) 김흥업씨라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수동 전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이용호씨로부터 받은 돈을 김흥업 부이사장에게 전달했는지 여부, 김흥업씨의 친구인 김성환씨 차명계좌의 실소유자가 김흥업씨인지, 아니면 윗선인지, 또한 사용처가 어디인지 진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이상 이도형저 김대중의혹 28p)」
또한 같은해 4월 29일자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성환씨의 40여개 차명계좌에서 입출금된 2백억원중 20억원 가량의 출처와 사용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김흥업씨는 이 차명계좌에 입·출금된 90억원중 아태재단 신축자금과 직원들의 퇴직금조로 6억원을 쓴 사실이 차정일 특검 수사 당시 밝혀진바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김대중은 19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강삼재 사무총장(당시)이 폭로한 비자금 6백억원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시작하려 하자, “나를 수사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을 협박했다. 선거를 앞두고 호남민심을 두려워한 여당 총재 김영삼대통령, 안기부장, 권영해씨 등은 검찰총장 김태정에게 수사중단을 지시했다.
수사를 중단한 검찰총장 김태정은 김대중 집권 직후 법무장관으로 승진했고, 김영산 정부의 안기부장으로 김대중의 북한 커넥숀을 추정했던 권영해는 즉각 구속되어 이후 10년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김대중은 또 그의 엄청난 비자금이 숨겨져 잇을 것으로 세상이 짐작한 동화은행을 ‘부실’딱지를 붙여 없애버렸다.
이렇듯 김대중의 축재와 은닉하는 재간은 천하가 당하지 못한 채 하늘은 그를 저세상으로 불러가고 말았다. 이것이 한국을 지도하겠다고 나선 대통령들의 대표적인 작태다. 우리가 ‘쪽바리’라고 업수이 여기는 일본의 지도자들은 매우 대조적이다.
전후 최대의 정계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다나까 가꾸에이 전수상은 단돈(?) 5억엔을 미국 록히드 항공사로부터 리베이트로 받은 죄로 체포되어 징역 4년형을 언도받았다. 액수로만 보면 한국의 김대중은 징역 4백년 형을 받아도 모자랄 것이다.
더구난 김대중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인들이 사복을 채우기만 한데 반해 일본의 다나까 가꾸에이 등은 꼬봉(부하)들에게 나누어줄 뿐, 내 가족에게 나누어 주거나 자식들에게 해외에서 호화주택을 사주는 등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은 전혀 없다. 돈을 거두어도 축재가 아닌 순 정치자금으로만 쓰는 것이 일본 정치인들의 금권형태다.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일본에서 근무하던 1970년 후방 두 사람의 기막힌 사례를 보고 겪었다.
도오꼬 도시오. 그는 80이 넘은 나이에 일본 경제단체 총연합회(게이단렌) 회장직에 있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전차로 약 40분거리인 요꼬하마에 살고 있었다. 그가 기사있는 자가용을 안타고 전차간에 서서 출·퇴근한다는 기사를 보고 수소문 끝에 그의 집을 방문했다. 굉장히 큰 저택일 것으로 알았던 필자는 40여평 남짓한 2층 목조건물을 보고 실망했다.
더구나 집 앞에 20〜30평쯤 있는 공터에 텃밭이 있었다. 그는 필자에게 한달에 5만엔(당시 원화가치로 50만원쯤 되었을 것)이면 산다고 말했다. ‘이찌지루 잇사이’(국 한 그릇에 반찬 한 가지)면 밥을 먹으며, 반찬은 텃밭에서 가꾸어 먹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가 기사딸린 자동차를 마다하고 전차 통근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첫째, 정체의 염려가 없다. 둘째 비나 눈이 와도 우산이 필요없다.(그의 집에서 정거장은 가까웠으며 게이단렌 사무실 빌딩은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다), 셋째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80 노령에 40분을 서서 가는데...했더니 “서는 것이 앉는 것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었다. 그 후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당시 83세)도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가 현직 게이단렌 회장일때 휴양지 하꼬네에 있는 그의 별장에 찾아간 적이 있다. 호화별장을 상상했던 필자는 이번에도 적이 실망했다. 차에서 내려서도 오솔길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집 주변엔 차고나 주차장도 없다. 이냐야마라는 문패를 보고 미닫이문을 여는데 삐걱거리며 잘 열리지 않았다 낡은 목조건물이기 때문이다. 여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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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탁월한 명문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치자금 먹은거 다합해도 김대중의 먹은거의 한줌도 안된다는게 정설이죠 광주 땅만해도 수조는 될것같고..기념관도 있던데 정말 한국만큼 정치하기 편한데가 없는것같아요 너무 순진해서 촛불들고 나가질 안나 어이가 없어서</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
2010-02-05 오전 3:53: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