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 기념관을 왜 쓰레기 매립장 곁에 짓는가?
그가 환경부 장관이나 서울시 청소국장 출신인가?
어제 오후 '朴正熙 기념-도서관' 건설 부지에 가 보았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서쪽으로 뻗은 大路는 왕복 8차선이다. 왼쪽으로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人工 野山 난지도(하늘, 노을공원)가 나타난다. 열병합 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날은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기상에 따라 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박정희 기념-도서관' 부지는, 앞으로는 난지도와 열병합 발전소, 왼쪽으로는 고층 아파트, 뒤로는 야산으로 막힌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터파기를 하다가 중단된 모습이다. 여기에 朴正熙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약1600평의 건물을 짓기로 확정한 상태이다.
나는 현장에 서서 "이곳에 지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기념관이 들어설 곳은 앞뒤로 꽉 막힌 곳이다. 물론 漢江이 보이지 않는다. 偉人들의 기념관은 공통적으로 전시 및 보존, 연구 및 교육, 문화 예술적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을 발휘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포구 상암동 쓰레기 매립장 옆의 한 건물을 구경하기 위하여 全國에서 사람들이 올 것인가? 어제 한 시간 동안 기념관 부지에 서 있으면서 걸어다니는 통행자를 세어 보았더니 열 명도 되지 않았다. 앞으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변두리라는 조건을 바꿀 순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세계 10大 경제대국으로 만든 분의 기념관을, 사람들을 피해서 왜 이런 변두리에 지어야 하는가? 朴 대통령이 환경부장관이나 서울시 청소국장을 지낸 분이 아닌데 왜 쓰레기 매립장 터 옆에 모시는가?
2. 기념관은 상징성이 있는 곳이라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朴 대통령은 민족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힌다. 적어도 인기도에선 세종대왕과 李舜臣을 능가한다. 朴正熙는 세계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성공시킨 '한국식 개발 모델'은 중국, 월남 등 後發國으로 수출되었다. 朴 대통령은 경제개발과 自主국방으로써 민주화와 복지국가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도 듣는다. 그는 근대화 혁명가일 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건설자였다. 朴正熙라는 이름은 세계적 브랜드이다. 이런 인물을 가졌다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박정희를 왜 굳이 이렇게 찾아오기 힘든 곳에, 후미진 곳에, 꽉 막힌 곳에 지어야 하는가? 왜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 하는가? 박정희가 罪人인가? 쓰레기장과 박정희는 무슨 연고가 있는가?
3. 접근성과 상징성을 고려할 때 朴正熙라는 大人物의 기념관이 서야 할 곳은 한정되어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 남산, 미군기지가 떠난 후의 龍山, 그리고 연고가 깊은 어린이대공원 옆 어린이회관(육영재단 소유) 부지나 漢江 고수 부지일 것이다. 한강 고수 부지에 지을 경우는 '한강의 기적'이란 상징성을 살리고 확 트인 공간을 이용하여 문화 예술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4. 기념관은 무엇보다도 건물 자체가 기념비적인 가치가 있어야 한다. 문화 예술 공간이 있어 찾아온 사람들이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5. 쓰레기 매립장 옆 기념관을 짓는 것은 最惡의 선택이다. 더 좋은 자리에 더 좋은 기념관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빼앗는 일이기도 하다. 最善의 선택은 서울 광화문 일대, 남산, 미군기지가 떠난 후의 龍山, 그리고 연고가 깊은 어린이대공원 옆 어린이회관(육영재단 소유) 부지나 한강 고수 부지 중 하나에서 짓는 것이다. 次善은 국민과 정부가 제대로 짓자고 조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기념관 부지가 결정된 것은 극소수 반대세력과 좌파정권의 '사실상 방해'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나서서 기념관을 짓자고 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서둘러 굴욕적으로 지어야 할 이유가 없다. 次惡은 기념관 건립을 포기하는 것이다.
6. 朴 대통령 기념관을 지을 때 비교 대상을 외국에서 찾아볼 필요도 있다. 중국 남경이 있는 孫文의 中山陵, 터키 앙카라에 있는 케말 파샤의 기념관, 프랑스에 있는 드골의 기념관, 보스턴에 있는 케네디 도서관,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등등. 李承晩, 朴正熙 같은 大人物을 기려서 세계에 알려야 할 한국인들이 초라한 기념관을 마지 못해 지어놓으면 세계 사람들은 한국인을 욕하든지 그 인물을 잊을 것이다. 조국이 버린 인물을 어느 외국인이 기리겠는가? 그 국민들이 어떤 수준의 사람들이냐를 알려면 그들이 어떤 인물을 기리는가를 보면 된다고 한다. 박정희를 이런 식으로 푸대접하는 국민들이 존경 받는 一流국가를 만들 수 있나?
7. 朴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全國을 시찰하고 난 뒤엔 "꼭 내가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자체가 그의 기념관인 셈이다. 그렇다면 너무 서둘러 졸속으로 기념관을 짓고는, 두고 두고 욕을 먹을 필요가 없다. 기념관의 成敗는 장소가 90% 이상을 결정한다. 사람을 모으는 기념관이 아니면 실패한다. 상암동 기념관은 사람을 멀리하는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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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의 초라한 기념관은 朴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
"상암동을 포기하고, 광화문, 용산, 남산, 육영재단 소유 어린이회관 부지 중 한 곳에 세워야 한다"는 異見이 일어나고 있다. 恩人과 위인을 구박하는 국가와 국민?
趙甲濟
최근 週刊朝鮮 趙成寬 기자는 朴正熙 대통령 기념관 건립 현장을 답사, 이런 글을 올렸다.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열병합발전소 앞 택지개발지구. 인적이 드문 외진 이곳에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입구와 월드컵경기장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 왼쪽에 높이 3m도 훨씬 더 되어 보이는 철제 가림막이 모서리 양옆으로 길게 세워져 있다. 한눈에 보아도 무슨 공사현장 같았지만 어디에도 이곳에 대한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다. 철제 가림막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휘어져 있어 볼썽사납다. 가림막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야트막한 산자락의 빈터. 터파기 공사를 하다 중도에 그만둔 흔적이 어지럽게 내버려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경작 금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지만 빈터 이곳저곳에는 옥수수, 고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마침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고추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여기가 박정희 기념관 부지 맞나요?”
이 남자가 대답했다.
“예, 맞는데요.”
이곳을 처음 와본 사람은 그 장소에 놀랄 것이다. 위치도 후미진 데다 공간도 협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박정희기념관’ 부지라는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한 공식명칭은 ‘박정희기념·도서관’>
1999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된 朴正熙 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은 10년간 수모를 당하였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은 김대중씨가 大選공약으로 내건 뒤 1999년 정부 지원을 약속해 추진되었다. 총사업비 709억원 가운데 기부금 500억원을 제외한 200억원은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사업추진이 부진하거나 기념회가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보조금 지원 결정을 전부 또는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고, 이후 4년 동안 기념사업회측의 모금액이 100억원 수준에 그치자 노무현 정권의 행자부는 2005년 3월 보조금 지원결정을 취소했다. 이에 기념사업회는 정부를 상대로 '국고보조금취소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서울고법은 행정법원(1심) 판결에 이어 "기념관 건립 사업의 진행 경과가 정치적 상황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 기부금 모집이 목표액에 미달했다는 단순히 형식적인 기준으로 보조금 지원 결정을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원고(기념사업회) 승소 판결했다.
大選이 끝난 뒤인 지난 해 1월 행자부 관계자는 "박정희 기념관 사업은 정부가 아닌 민간사업인 만큼 취지에 맞게 민간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추진돼야 하며 따라서 정부의 지원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면서 "민간 기부금보다 정부의 지원금이 더 많게 되면 사업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말하더니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올해 패소판결을 받았다. 서울 상암동 월드 컵 경기장 부근 부지에서 기초공사를 하던 중 중단된 상태에서 이제는 공사 再開가 가능해졌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회장 金正濂 전 대통령 비서실장)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의하여 정부지원금 200억원을 쓸 수 있게 되었으나 이번엔 장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이들의 異見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이런 주장들이다.
“변두리에 초라한 기념관을 짓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지도자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 도심부에 기념비적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굴욕적으로 지을 이유가 없다. 현 기념관 건립 계획을 포기하고, 국민과 국가가 좋은 장소를 제시하면서 지어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자.”
“적어도 광화문 일대, 용산 일대, 아니면 연고가 있는 어린이 대공원 지역에 지어야 한다.”
김대중씨는 선거용으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으나 방해하고 나선 것도 김대중 정권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2000년12월과 이듬해 12월에 도합 200억원의 국가예산을 기념사업회에 지불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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