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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오 이동녕선생 70주기 추모식

을사조약 늑약되자 결사대 조직, 조약무효와 파기 주장하며 구국운동 전개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3-12 오후 3: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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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국무총리·주석 등을 역임하며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석오 이동녕선생 70주기 추모식이 오늘 오전 11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사)석오이동녕 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현희)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추모식은 김 양 국가보훈처장, 남만우 광복회 부회장을 비롯한 광복회원,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기도, 약사보고, 헌화․분향, 유족대표의 예사 순으로 진행됐다.

 이동녕 선생(1869.2.1~1940.3.13)은 충남 천원(현 천안시 목천읍 동리)에서 출생 후 1885년 17세에 일가가 상경했으며, 1896년 28세 때 독립협회에 가담해 개화민권운동에 투신했다.

 1904년 한일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덕기, 양기탁, 신채호, 조성환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청년회를 조직했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늑약되자 결사대를 조직해 조약의 무효와 파기를 주장하는 등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에는 만주 북간도 용정촌으로 망명해 이상설․여준 등과 최초의 해외사립학교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했으며,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고, 공립협회와 대한매일신보의 조직과 발행 지원, 대성학교와 오산학교 설립을 지원하는 등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1910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뒤에는 만주로 망명해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이시영 형제, 이상룡 등과 함께 한국인 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설립․운영하여 서간도 이주민들의 신분보장과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으며, 훗날 광복군의 초석이 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해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1919년 2월1일에는 길림성에서 대종교 김교헌 외에 조소앙, 조완구, 김좌진, 여준 등 국내외 민족지도자 39인과 대한독립선언서를 내외에 선포함으로써 3․1독립만세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던 1919년부터 임시의정원 초대의장, 내무총장, 군무총장, 국무총리, 국무령, 주석 등으로 임시정부를 이끌며 반평생을 해외에서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일제에 투쟁했으며, 1940년 3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사천성 기강 임시정부 청사에서 영면했다.

 임시정부에서는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1948년 9월 22일 김구선생의 주선으로 유해를 봉환, 사회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했고,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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