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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장, 일본에 안중근 의사 유해 침묵 반성 요구

안 의사 특별경계·사형집행명령기록 공개, 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정황보고 및 잡보’ 확보, 미발굴 독립운동가 89명도 최초 확인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3-22 오후 4: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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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권을 회복하거든 고국에 뼈를 묻어 달라’는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조차 받들지 못하고 있다.”

 김 양 국가보훈처장은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무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에 관해 침묵하고 있는 일본에 반성의 자세를 요구함과 아울러, “안 의사 유해에 대한 뒷마무리를 안하는 것은 (일본의) 부담이다"라고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뤼순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일제가 감옥과 그 일대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던 내용을 담은 일본 문서가 발견됐다.

 국가보훈처(처장 김양)는 22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를 확보했다고 밝히고 이 날 공개했다.

 ▲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발굴한 안중근 의사 및 독립투사들의 기록이 담긴 문서를 22일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공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konas.net

 이 자료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있던 것으로, 보훈처와 전문가들이 지난달 찾아내 복사해 국내로 가져온 것이다.

 여기에는 1906년부터 1922년까지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으며, 안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과 사형전 안 의사를 매우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 ‘특별경계 했던 상황’등이 기록돼 있다.

 관동도독이 본국 외무대신에게 보고한 것으로 1909년 10~12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제4 권'에는 "하얼빈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입감한 한국인 9명은 엄정 격리할 필요가 있어 모두 독거구금했다"며 "피고사건의 중대함으로 인해 계호자의 선정 및 사건의 성질상 감방 내외를 엄중히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보고서에는 "감옥서 내에 임시법정을 설치했으므로 그들을 수용할 구치감의 사무 및 계호간수와 임시법정에 따라붙일 계호자도 선정해 단속 처우의 적실 및 심문사항의 비밀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또 "이들의 일거일동에 주의해 특히 야간에는 수시로 간수로 하여금 그 행동을 비밀 정탐케 하는 등 야간경계는 종래의 감독자 외 간수 6명을 배치하던 것을 8명으로 증가하여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는 데 힘썼다"고 되어 있다.

 1910년 1~3월의 정황을 담은 `정황보고 및 잡보 제5 권'은 "구금중인 살인 피고인 안중근 외 수명은 피고사건의 중대함에 따라 제반 관계상 엄중한 단속이 필요하였다. 특히 2월 7일부터 동 14일까지 연일 법원에 출정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우려해 압송마차를 설비함으로써 연도의 왕복을 경계했으며, 법정내에서 경호상의 단속도 실로 고심을 극하였다"고 보고했다.

 또한 "사형 확정 후에는 더욱 경계를 엄히 할 필요가 있었으며, 야근간수를 증가시켜 감옥 안팎과 부속 관사 부근 일원을 날이 샐 때까지 순찰경비를 시켰다"며 "야간에는 가능한 한 간수의 외출을 제한해 비상시에 대비하게 하고 특히 일반 간수를 독려해 주야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했다"고 보고했다.

 이와 더불어 안 의사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기록 원본도 발견됐다. 이 기록은 일제가 1910년 2월 14일 안 의사에 대한 사형을 선고한 지 한 달 열흘 만인, 3월 24일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한 것으로 명령 이틀 만에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  김양 국가보훈처장이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을 관할하던 일제 행정기관인 관동도독부의 `정황보고 및 잡보' 복사본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konas.net

 이 명령기록에는 안 의사의 주소를 `한국 평안도 진남포'라고 쓰고 있으며, 직업(무직)과 이름(안응칠 안중근), 나이(33세), 죄명(살인범), 형명(사형), 판결언도(1910년 2월 14일) 등이 명시돼 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다.

 보훈처는 안 의사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같은 자료를 포함한 `관동도독부 정황보고 및 잡보' 1~15권(1천884매)와 안 의사 수감시 증거품 목록 자료도 확보했다.

 아울러 이 자료에는 3·운동 이후 치열했던 독립운동 양상과 당시 일본 측에서 탐지한 독립운동가의 활동사항, 첩보 등 기밀정보가 포함돼 있다.

 특히 이 자료에는 안 의사를 포함해 228명의 독립운동가가 적시되어 있었고, 보훈처는 이 중 최초로 확인된 89명의 독립운동가들을 독립유공자 포상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 의사 수감시 증거품 목록에는 당시 러시아 측에서 발간했던 한자신문인 `원동보' 한 부와 이토 암살을 암시한 `동청철도 기차 발착시간표', 손가방 등이 적혀 있다.

 사형 직후 안 의사의 동생들이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한 내용이 담긴 `두 동생의 유해 인도 요구에 대한 처리 경위 보고' 원문도 확보됐다.

 

 ▲ 이날 국가보훈처가 공개한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있던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들.ⓒkonas.net

 또 동생 안정근이 안 의사의 사진을 넣어 5종의 엽서를 만들어 미국 하와이에 300매, 샌프란시스코에 500매를 보냈다는 기록도 사진과 함께 발견됐다.

 특히 안 의사의 사진 아래에 이토 히로부미의 사진을 붙여 만든 엽서도 있었다.

 일본감옥협회가 1910년 1월20일 발행한 감옥협회잡지에 안 의사를 `보통의 형사피고인이지만 국사범과 동격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내용도 나왔다.

 이와 함께 1906~1916년 기간에 뤼순감옥의 조선인 입감인원이 수록된 `일본감옥교회사' 자료도 확보했다.

 아울러 보훈처는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위해 전문가가 포함된 발굴팀을 운영하는 한편 지난 1월 주한러시아 대사에게 독립운동관련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안 의사의 의거현장이었던 하얼빈이 당시 러시아 위수지역이었고, 러시아측에 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konas)

코나스 최경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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