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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전우회 소개

파월<前 미 국무장관> “내가 지휘해 본 가장 훌륭한 군인”

Written by. 이정호   입력 : 2010-03-23 오전 10: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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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초 경기 덕정 인근에 배치된 호주군 대대에 배속된
카투콤(KATCOM)과 호주군(위). 카투콤은 6·25전쟁 중
영연방에 배속된 한국군을 의미한다. 1950년 9월 23일 경기
 지역에서 미 24사단 21연대 L중대 카투사인 분대장 안낙천
(오른쪽)과 조병제 상병은 전투 중 수류탄으로 인민군 전차
T-34를 폭파했다.> 

 KATUSA, 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the United States Army의 약칭이다. 미군부대에 배속돼 근무하는 한국군 병사를 말한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카투사는 미군부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유엔(UN)군에 배속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캐나다·호주·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그리스 모두 9개국에 배속돼 맹활약했다.

 6·25전쟁에 파병된 유엔군의 공통된 애로사항은 언어소통과 익숙지 못한 한반도 지형이었다. 소위 병가(兵家)에서 말하는 ‘전쟁의 필수요소’에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유엔군의 어려움에 해결사가 나타났으니 그게 바로 카투사다.

 한반도 지리와 기후에 익숙지 못한 그들에게 카투사는 유능한 가이드였다. 적의 방어진지를 찾아내고 적군과 아군을 식별하는 일, 포로를 심문하는 일은 카투사가 도맡았다. 동시에 적과의 전투에서 두려움 없이 앞장서서 싸우는 용감한 전사였다.

 전쟁터에서 궂은 일은 대부분 카투사에게 맡겨졌다. 수색·안전 정찰 등 위험한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박격포·무반동총·탄약 등의 무거운 병기류 운반도 떠안았다. 일부 부대에서는 자국군을 가운데 두고 카투사로 주변을 감싸는 전투 진용을 운용하기도 했다.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쌓아 올린 혁혁한 전공. 그 전공 속에는 한국인 4만3000여 명의 카투사들이 흘린 피와 땀,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아니 우리의 카투사가 유엔군 일원으로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카투사 탄생은 1950년 6·25전쟁과 함께한다. 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이양하는 서한을 보냈는데 여기에 포함됐다.

 첫 카투사제도에 단초를 준 인물은 무초 주한 미 대사였다.

 무초 대사는 대전 이북지역에서 전투경찰이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한국 경찰을 전투부대로 편성하자”고 워커 장군에게 건의했다. 이렇게 해서 국립경찰 3개 대대가 미 7사단에 배치된 것이 카투사의 전신이다.

 군인으로 이뤄진 첫 카투사는 50년 8월 16일 일본 요코하마 항에 도착한 313명이었다. 이들에게는 K로 시작하는 군번이 주어졌다. 예를 들면 K1101970식이다. 당시 카투사 징집 기준은 그야말로 고무줄이었다. 소총을 어깨에 메고 땅에 닿지 않으면 합격이었다. 그래서 책가방을 든 소년병, 부인의 약을 사러 갔다가 그대로 끌려 온 병사도 있었다.

 미군은 카투사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버디 시스템(Buddy System)을 운용했다. 미군과 1 대 1로 짝짓는 시스템이었다.

 “카투사들은 내가 지휘해 본 가장 훌륭한 군인이었다. 그들은 절대 술에 취한 채 나타나지 않았다. 지칠 줄 모르며 군기가 서 있었고 지식 습득 능력이 우수했다.”

 6·25전쟁 이후 미 2사단에서 대대장을 지낸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도 그의 저서에서 카투사를 극찬할 정도였다.

 2007년 11월 16일 카투사전우회가 만들어졌다. 현재 회원은 5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달 심상돈(스타키코리아 대표) 씨가 회장으로 새로 취임했다. 이들은 태안 기름유출 현장으로 뛰어갔고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하고 있다. 해마다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했던 이화장에서 창설기념행사를 연다. 국방부에서 카투사 창설기념일을 8월 15일로 공식화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사이에서 카투사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카투사를 빛낸 인물을 해마다 명예의 전당에 헌당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영예를 안았다. 경기 주한미군 2사단 캠프를 찾아 한미 우정의 체육행사도 열고 있다. 군사외교관으로서 한미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미2사단과 제1기병사단 전우회가 함께 싸운 카투사 전우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한국군 카투사들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카투사는 약 3000명. 이들은 주한미군 50여 개 지원대에 배치돼 있다. 보병· 포병·기갑·공병·통신·보급·행정·헌병 등 다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카투사는 현재 미8군에 편제돼 미군 지휘관 아래 교육, 훈련, 통제, 군수지원을 미군으로부터 받고 있다. 하지만 인사행정과 권익보호는 한국군지원단이 한다. 이들 대우 역시 동등기회(Equal Opportunity) 정신에 따라 미군과 동일한 수준이다.

 현재 카투사는 토익 780점에 준하는 영어 성적 이상 자가 지원하면 추첨으로 뽑는다. 해마다 경쟁률은 5 대 1까지 치열하다. 육군훈련소에서 5주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카투사 신병교육대에서 3주간 미군 기준 병기본훈련, 군사영어, 리더십 교육을 받는다. 주한미군 부대에 배치돼 한미 군사동맹의 최일선에서 실질적인 손과 발·입이 되고 있다.(국방일보)

이정호(재향군인회 공보관 jungho51184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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