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이승만과 벤구리온

한국·이스라엘 국부(國父)의 생애와 사상 통해 두 나라의 건국 이해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4-19 오후 5:54:06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정확한 역사는 정확한 전기(傳記)의 집적(集積)이다”.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와 우남이승만연구회가 주관한 ‘이승만연구 제 54차 콜로퀴엄’에서 서울대 최종고 교수는 “1948년에 건국한 한국과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국부로 알려진 벤구리온과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의 생애와 사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일 오후 3시, 종로구 정동교회 아펜젤러 홀에서 열린 강연에서 최 교수는 “이승만과 벤구리온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의 정치권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건설에 매진하느라 서로 만나거나 문통을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무관계성의 관계성’이 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며 두 달 반의 차이를 두고 동시에 건국한 사실만으로도 한국과 이스라엘은 서로 비교 검토해 볼 사실이 많다고 강연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이었지만 건국기에 벤구리온의 역할과 이미지가 더 두드러지기에, 이스라엘의 대통령이 아닌 벤구리온을 이승만 대통령과 비교하는 이유를 밝혔다.

 ▲ 서울대 최종고 교수가 이스라엘의 국부 벤구리온과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onas.net

 그러나 이스라엘과 한국은 건국 과정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는데, “이스라엘의 건국은 선민의식과 세계의 냉전체제의 부산물을 잘 이용한 성공작”이라고 최 교수는 평가했다.

 즉, 미국은 팔레스타인에서 자유의 보루를 확보하려 했기 때문에, 1948년 5월15일, 18년간 위임통치를 해 오던 영국이 철수하던 당일 벤구리온이 이스라엘국 건국을 선하자 미국은 이를 즉시 승인하고, 이후 아랍 국가들과의 분쟁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지지했으며, 유대계 미국인들은 막대한 무기와 자원을 지원했던 것이다.

 때문에 65만 명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사는 74만 명의 아랍인을 축출한 것은 고대 로마인 정복자들 보다 잔인한 폭거였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2천년간 나라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유대인의 심정에 대한 동정, 서방 세계가 유대인에게 지은 죄악에 대한 참회, 각계에 서 활동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압력 내지 전략에 의해 (이스라엘의 독립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 교수는 “일본이 서양세력에 승리한 최초의 전쟁이자 이를 계기로 한국을 병합하는데 까지 성공한 러일전쟁은 유대인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또 다른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러일전쟁의 발발이 알려지자 미국과 유럽으로 탈출한 유대인들은 ‘포그롬(Pogrom, 방화·약탈·살인에 의한 박해)을 가한 ‘악의 화신’ 러시아 제국이 멸망할 때가 왔다고 환호하며 일본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던 것이다.

 ▲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참석해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konas.net

 또한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계기로 한국인과 유대인은 이를 독립의 기회로 삼으려 했으나, 미국의 반응은 양국에게 다르게 나타났다.

 미국은 유대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반면, 열강의 세력 균형을 위해 한국의 독립은 지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으로 무장독립운동이 가능했던 반면에, 한국은 미국의 외면속에 무장 독립운동보다 더 험난한 외교적 독립운동을 해야만 했다.

 때문에 이승만은 윌슨대통령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 당하고 하와이로 돌아와 한인기독교회를 세우면서 “건축에서부터 광화문을 연상시키는 전통양식을 추구하면서 예배와 교육, 독립운동의 3박자를 실현하려 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시나고그(Synagogue , 유대교 교회당)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최 교수는 주장했다.    

 한편 최교수는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외교관계가 1960년 9월에 이르러서야 논의되기 시작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 이유는 “한국전쟁때 이스라엘이 직접 파병은 못했지만 약 10만 달러에 이르는 원조를 해 주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우리 정부와 이스라엘은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왜곡된 현대 국제정치사로 인해 이스라엘에서는 일본이 은인국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한국 학자들이 이스라엘과 한국의 관계를 연구해 국제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 위대한 인물의 혁혁한 생애와 사상이 국가를 건국시켰다”며 “벤구리온의 정신적 지주가 유대주의라면, 이승만의 정신적 기초는 기독교를 받아 들여 기독교 국가를 지향했지만 유교·불교의 전통을 어떻게 소화했는지, 단군신앙을 포함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어떠했는지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벤구리온의 유산이 벤구리온공항, 벤구리온대학 등으로 남아 있는데 반해 이승만의 유산으로는 남산의 동상마저 철거되었다”며, 건국대통령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무심함을 지적하고, “대한민국을 건국시킨 인물을 세계를 향해 발전시키고 선양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와 책임”임을 거듭 강조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