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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군·국가위한 군인정신 평생간다”

<인터뷰>천안함 수색작전 심현표 UDT 동지회장

Written by. 김종원   입력 : 2010-04-20 오전 11: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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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은 없다’. 해군작전사령부 예하 특수전여단(UDT/SEAL)을 상징하는 구호다.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 병기’라고도 부른다. 단 몇 초의 판단력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3~4초 안에 결정짓지 못하면 하늘과 땅, 바다에서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머리는 언제나 얼음장처럼 냉철하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가 우리 군이 부르면 언제나 목숨까지 내던질 각오와 준비가 돼 있다. 아니 그들은 지옥훈련 단계부터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한없이 따뜻한 생명존중의 교육에 길들었다.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는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 때도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백령도 현장에 투입됐다. 군문을 나선 예비역들도 전국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수색 구조작전에 몸을 던졌다. ‘UDT의 영원한 전설’이 된 고 한주호 준위와 함께 실종 장병들을 찾기 위해 생명까지 걸고 거친 바닷속을 뛰어들었다. 500여 명의 ‘최정예 전우’들을 이끌고 있는 심현표(56·21기) UDT 동지회장을 19일 오후 인천 서구 경서동 동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번 천안함 수색 구조작전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인천에서 태어난 심 회장은 해양과학고를 나와 74~77년 특수전여단에서 근무했다. 지난 1월 선출직으로는 처음으로 3년 임기의 7대 회장에 올랐다.

-어떤 계기로 천안함 수색 구조작전에 참여하게 됐나요?

“제가 오랜 지병인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늦은 밤 텔레비전을 통해 천안함 칠몰사건을 접하게 됐습니다. 사람 일에는 기적이 많으니까 혹여라도 격실로 된 군함이기 때문에 하늘이 도와 살아 있는 승조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차영출(52·25기) 총무에게 연락해 전국에 있는 회원들에게 알려 지원자를 모았습니다. 그러던 중 실종자 가족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닷속이 50미터라 프로들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UDT 동지회에서 와서 도와 줄 수 있겠느냐”는 급박한 전화였습니다. 그래서 망설일 것도 없이 회의에 부치지도 않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하고 각 지회에 연락했습니다. 50미터 이상급 프로들은 모두 인천 연안 부두로 집결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29일 새벽 6시까지 부산ㆍ포항ㆍ거제ㆍ원주 등 전국 각지에서 프로들이 다 모였습니다.”

-회원 각자마다 자신의 생업도 있고, 즉각 모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우리 회원들은 생리상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3~4초 만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실종자 가족 대표 요청이 오자 바로 즉각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UDT 대원들은 교육대에 들어갈 때도 훈련 중 죽어도 일절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각서를 씁니다. 이번 수색 구조작전에서도 `본인은 천안함 실종자 구조를 위해 자원봉사자로 참가했으며 만일의 경우 피해를 입을 시 타인의 고의적인 과실이 없는 한 누구에게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라고 서약서를 썼습니다. 나보다 우리 군, 우리 국가를 위한 그 군인정신이 평생을 가는 것입니다. 차디찬 저 바다 밑에 있는 아이들은 바로 내 자식이고 내 조카이고 내 동생이고 내 오빠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건이 나쁘고 좋고 위험이 있고 없고를 따지겠습니까? 누구 하나 앞뒤 가리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목숨을 건 임무인데 그러한 정신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솔직히 저는 UDT가 자랑스러운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사실 백령도는 물결이 13~15노트 그 이상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50미터급 깊은 바다라고 하면 목숨을 내놓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지원을 받았을 때 구조대원 그 누구도 거기 왜 갑니까? 이유 한마디 없이 회장님이 부르시면 가야죠 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밤새도록 달려 온 것입니다. 일단 백령도에 숙소를 정했을 때 전국에서 심해 잠수 유경험자 70~80명이 속속 지원해 대기했습니다. 우리는 목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우리 국가와 군, 그리고 옳은 일을 하러 들어간다는 자긍심으로 간 것입니다. 지원자도 거의 다 스리랑카ㆍ이란ㆍ이라크ㆍ일본ㆍ아프리카 등지에서 50미터 이상에서 선체 인양과 공사를 한 베테랑급 경험자들이었습니다.”

-백령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우리 군과 어떤 임무를 했나요?

“이번 현장 구조 수색작전에 3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29일 오전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서 해군 헬기로 저와 이헌규ㆍ장승원ㆍ김진오ㆍ유호창ㆍ김양훈ㆍ이태희 회원이 백령도 사곶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1진 뒤를 이어 3진까지 백령도에 다 들어오고 6진까지는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회원들은 해군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답사까지 마친 후 본격적인 임무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한 고 한주호 준위와 함께 교대로 심해에서 함수부분 수색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다 안타깝게 한 준위가 순직하고 금양호 사고까지 겹쳐 실종자 가족 대표와 군에서 구조작업 포기를 통보해 왔습니다. 그래서 5일 완전 철수했습니다.”

-백령도 현장에서 한 준위와 함께 회원들이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압니다. 그때 한 준위와 어떤 말을 주고받았습니까?

“29일 갔을 때 막 보트로 성인봉함에 귀환한 한 준위를 만났습니다. 잠수복 차림인데 워낙 맞바람이 세차고 추워서 입술이 새파랬습니다. 참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실종자 가족 요청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60살이 다 돼 가는데 물에 들어가느냐고 물었습니다(심 회장은 한 준위보다 UDT 바로 한 기수 선배다). 그랬더니 한 준위가 `심 선배, 들어가 보니까 시야가 전혀 없습니다. 끊어진 함수 부분은 발견해 부이를 띄웠습니다. 해치문도 하나 찾았습니다. 그런데 절단된 부분이 날카롭고 상황이 안 좋아 경험이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면 제2의 사고가 날 수 있어 천상 내가 들어가야 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한 준위가 동기생인 이헌규 회원과 반갑게 악수를 건넸습니다. 한 준위는 추워 떨면서도 씨익 웃으면서 `전국의 프로들이 다 모였으니까 이젠 수색 구조작전 속도가 빨라질 것입니다. 이젠 심 선배와 회원들이 와줘서 좀 안심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물 때가 바뀌는 바람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래서 내일 보자며 한 준위가 제공해 준 조디악 보트를 타고 철수했습니다.”

-‘UDT의 전설’이자 최정예 베테랑인 한 준위가 순직한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죠?

“일부 언론에서 한 준위 순직과 관련된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보도를 해 법적으로 대응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 준위는 분명히 저희들과 함께 수색 구조작업을 하다 순직했습니다. 결정적인 순직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2~3가지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밝힐 수가 없습니다. 그가 워낙 프로이기 때문에 순직 원인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혹시 체력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나이는 절대로 아닙니다. UDT 출신들은 60살을 먹어도 유경험자는 100미터도 들어갑니다. 상승 시간과 맞게 감압을 하기 때문입니다. 63살 이상이 되면 그때는 체력이 달립니다. 그때가 되면 아 내가 물 떠날 때가 됐구나 자기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체력이 나이와 관계없습니다. 특히 한 준위는 군더더기 살 하나 없이 워낙 운동을 좋아해 아주 강하게 단련된 체력입니다. 체력 소진으로 순직할 그럴 후배가 아닙니다. 결국은 (백령도 현장 상황이) 악조건이었습니다.”

-한 준위를 떠나 보낼 때 그 상심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 준위는 평소 어떤 후배였습니까?

“한 준위는 꼭 그 자리에 있어야 될 사람이었습니다.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이제 정년이 2년 남았습니다. 어지간한 사명감을 갖고는 그 깊은 바다에 도저히 못 들어갑니다. 하지만 워낙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거의 시야가 제로인 상태에서도 손과 발이 눈 역할을 하면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 친구는 정말로 말수가 없는 과묵한 후배였습니다. 저와 함께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 당시 한 준위는 선배들에게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후배들을 따뜻하게 대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면 말없이 씨익 소 웃음을 짓습니다. 그래서 제가 별명을 소 웃음이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훈련을 잘하면서도 시끄럽지 않은 친구였습니다. 한 준위가 교육대에서 20년 간 교육만 시켰습니다. 정말로 제대로 된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원래 가슴이 따듯한 사람이었습니다. 영결식장에서 선후배들이 한 준위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면서 계획에도 없던 눈물의 군가를 제창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한 준위를 떠나 보내는 선후배들의 심정이었습니다.”

-천안함 수색 구조작전에 참가한 예비역으로서 우리 후배 장병과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천안함 사건으로 순직자가 됐든 전사자가 됐든 사나이로서 국방의 의무든 직업 군인이든 간에 영광된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군이 너무 의기소침하거나 기 죽지 말고 현재 하고 있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했으면 합니다. 그럴 때 국민들이 우리 군을 더욱 믿고 든든해할 것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예비역으로서 바라고 싶은 말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국민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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