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쟁이들의 ‘말질’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집을 두 동강 낸 살인범이 “너네 집에 가서 검열을 할 터이니 군소리 말고 영접해라”에 유연성을 가지라고?
어떤 방송이었는지 챙기지는 않았지만, 채늘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언뜻 보자니 몇 몇 유식한 듯한 사람들이 나와서 ‘천안함’을 논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북한군 김영춘의 ‘검열단’ 운운을 거론하며, "검열이란 상부기관이 하부기관한테나 하는 것인데 그건 잘못 됐다“고 말했다. 저 사람 말 한 번 썩 잘하는구나 싶었는데, 그 다음 사람이 이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운운.
한 마디로, 예컨대 그것을 일축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입장은 그렇다면 유연성이 없다 이 말인가?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집을 두 동강 낸 살인범이 “우리가 그랬다고? 너네 집에 가서 검열을 할 터이니 군소리 말고 영접해라” 하는 적반하장에 대해 “저런 뻔뻔스러운 놈 보았나? 감히 무슨 낯짝으로?” 하는 게 유연성 없는 것인가? 국어를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정말 우리가 유연성 없이 논다고 확신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하나만 물어보자. 천안함 46 용사 영결식장에서 한 어머니가 “이북 놈들이 죽였어!, 왜 퍼줘요?” 하고 울부짖은 것도 유연성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그렇게 묻는 것은 딱히 맞지 않는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험을 통해 검증해 보자. 그 어머니 앞에 가서 “북한군의 검열단 제의에 대해 유연성을 가져 봅시다”라고 말해 보면? 그 분이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나 공부 좀 했디”라고 자부하는 일부의 ‘말질’은 많은 경우 이처럼,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한 어머니의 직정적(直情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발뒷굼치도 못 따라간다. 겉똑똑이 공부쟁이들의 ‘맞춤형’ 교언영색(巧言令色) 때문에 지극히 자명한 사실과 진실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는 게 우리네 담론계(談論界)의 고질이다. 동인(東人) 서인(西人) 남인(南人) 북인(北人) 대북(大北) 소북(小北) 노론(老論) 소론(小論)...거 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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