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의 전쟁도발을 막아야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 2010년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50년 6월 25일 평화로운 일요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은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 불법 기습남침을 감행했습니다.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은 우리 국군은 전쟁 초기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주고 40여일 만에 남쪽의 낙동강까지 밀려나게 됨으로써 국토의 대부분이 북한 공산군의 치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조국의 운명이 실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졌을 때 우리 국군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의 지원과 함께 조국수호의 사명감과 필승의 정신력으로 북한군의 침략을 저지하고 조국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지켜 냈습니다. 그러나 조국통일의 염원 달성에 불타는 국군 장병과 우리 국민의 격렬한 휴전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회담이 미국·소련·중국에 의해 주도되어 갔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제159차 본회의장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헤리슨 미 육군중장과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은 전문 5조 63항의 정전협정 문서에 서명하였고 3년 1개월 2일 동안 계속 되었던 6·25전쟁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반도는 전쟁의 중단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불완전한 평화를 맞이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제2의 38선인 휴전선과 함께 국토와 민족분단의 비운을 다시 한번 맞게 되었고 남북한 간의 분단상태는 더욱 고척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조국을 위해 산화해 가신 분들과 수많은 참전자들의 불굴의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확고하고도 철통같은 안보 대세를 유지함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오늘에도 북한의 대남정책 목표인 소위 '무력적화통일' 전략과 군사적 위협의 실체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북한은 현재 극도의 경제난 속에서도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군사력을 체제유지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아 강성대국의 건설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살펴본다면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북한의 제2의 6·25전쟁 도발을 막아야 합니다.
이 땅에 6·25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 민족은 공멸의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휴전선을 가운데 두고 200만에 가까운 중무장 병력이 하루 24시간 총성 없는 대치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을 잠시도 잊지 말고 선진강군을 육성하여 대북 절대우위의 억제전력을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확고부동한 보훈정책으로 구국의 용사들을 보살펴줌으로써 현역장병의 사기를 드높여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생존 6·25전쟁 참전유공자는 21만여 명입니다. 평균 연령은 79세(금년 1월 기준)이며 매년 세상을 하직하시는 분들이 줄잡아 2만여 명이고 이 숫자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작년 10월부터 6·25전쟁 참전유공자의 호칭이 국가유공자로 격상되었습니다. 당연히 국가유공자로서의 예우를 받아야 하지만 예우문제는 또 다른 관련법률인 '참전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기존의 국가 유공자들이 받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이나 지원을 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호칭만이라도 '국가유공자'로 격상함으로써 6·25전쟁 참전유공자들에게 정신적 차원의 보훈(명예 회복)을 한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물질적 차원의 보훈(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조국수호에 앞장섰던 6·25전쟁 참전유공자들이 발전된 조국에서도 하루하루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현재 6·25전쟁 참전유공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이분들에 대한 의료지원 혜택을 시급하게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절박한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군의 중요성이 부각되지만 일단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고 나면 한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용사들의 공적은 쉽게 잊혀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군을 떠난 역전의 용사들을 존경하고 환대하는 훌륭한 전통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위패를 모시는 장소에 13만 명의 위패가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보훈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6·25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6·25전쟁은 잊혀버린 전쟁이 되고 있습니다. 6·25 노래는 노래방 목록에도 없고 학교 음악시간에도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은 입혀진 전쟁이 아니며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전쟁입니다. 우리 모두 "6·25를 잊으면 또다시 6·25가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6·25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휴전상태에서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 전후세대는 대부분 6·25전쟁 당시의 북한의 만행과 죄악상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6·25전쟁이 '북한 공산집단에 의한 불법 남침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북침전쟁'으로 믿고 있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규정하면서 당시에 미군만 없었더라면 조국통일이 달성되었을 것이라는 식의 '정신적 착란 상태'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들이 6·25전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인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한국갤럽의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10·20대의 60%는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학생들에게 한국 현대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국가가 역사교육을 소홀히 하면서 어찌 우리의 2세들에게 6·25전쟁에 대해 잘 알고 있으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과의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천우신조로 21개국 우방의 지원과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튼튼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한미동맹은 우리의 안보태세 강화와 경제발전의 핵심축이며 '친북반미'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지난 3월 26일 발생했던 천안함 사태는 우리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던 6·25전쟁을 되살려 냈고 아직도 이 땅이 끝나지 않은 전장터임을 인식시켜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의 허울좋은 평화통일 공세에 결코 말려들지 말고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의 다짐이 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월간 자유 6월호)
박희모(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
조국을 지키겠다는 투철한 정신이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무기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있다 해도 전쟁에서 승리할수없습니다. 헌 운동화를 신은 월맹군이 고성능 무기를 보유한 월남을무너뜨렸습니다.우리는 월남패망의 교훈을명심하고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단합해야합니다.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
2010-06-06 오후 11:38: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