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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6.25> 논산 '두계지구 전투' 영웅 이전구씨

"결국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일 뿐".."참혹한 전쟁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Written by. konas   입력 : 2010-06-04 오후 4: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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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6.25> 논산 '두계지구 전투' 영웅 이전구씨
경찰신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인민군 30여명을 사살하고 대둔산 빨치산 궤멸작전에 투입됐던 이전구(85)씨. 이씨는 고향인 충남 논산 두마면(현 계룡시 두마면)을 지키려고 향토방위대를 조직하고 5시간여에 걸친 전투 끝에 인민군 1개 대대를 초토화한 '두계지구 전투'의 영웅이다. 사진은 이씨(왼쪽)가 국가유공자증과 경찰공무원기록증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정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돼. 지금도 전투를 치르는 꿈만 꾸면 깜짝 놀라 잠에서 깨고,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통증을 느껴…."
경찰신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인민군 30여명을 사살하고 대둔산 빨치산 궤멸작전에 투입됐던 이전구(85)씨.

   이씨는 고향인 충남 논산 두마면(현 계룡시 두마면)을 지키려고 향토방위대를 조직하고 5시간여에 걸친 전투 끝에 인민군 1개 대대를 초토화한 '두계지구 전투'의 영웅이다.

   이씨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적들도 많이 사살했지만, 결국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일 뿐이었다."라면서 "전쟁의 참상과 헐벗고 굶주린 과거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조금 더 애국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목포 함락..죽을 고비를 두 번 넘기다 = 1948년 경찰에 투신한 이씨는 목포철도경찰대에 근무하던 중 한국전쟁을 맞았다.

   그러나 개전 한 달여만인 7월24일께. 목포는 인민군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이씨가 근무하던 목포철도경찰대는 적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해체되는 운명을 맞이하면서 이씨의 파란만장한 한국전쟁이 전개된다.

   이씨는 "당시 우리가 맡은 임무는 미곡창고에 보관된 쌀 300가마를 바지선에 싣고 부산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라며 "쌀을 가득 실은 뒤 목포역 선창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전 7시께 인민군 2명이 배로 접근하기에, 배 안으로 유인해 사살하고서 바지선은 놔둔 채 배만 타고 도망쳐 나왔다."라고 회상했다.

   이씨는 목포 인근 안좌도라는 외딴 섬에서 피난생활을 했으나 빨치산 부대가 이 섬을 점령하면서 두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빨치산 대원들이 인민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하더라고. 이젠 죽었다 싶었지. 그런데 평소 목포에 근무하면서 도움을 줬던 '말라깽이'라는 애칭의 지체장애인이 '이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진짜 살려줘야 한다'라고 울고불고 탄원해서 다행히 살아났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이씨는 빨치산부대에 의해 전남 해남으로 끌려갔으나 이곳에서도 총살 위기에 처한다.

   이씨는 "포로들을 줄로 묶어 세워놓고 한 사람씩 총살을 집행했다."라며 "'이제 죽었구나'하는데 바로 내 앞에서 총성이 멈췄다."라고 회고했다.

   사령관이 이씨를 살려준 것. 사령관은 목포지리를 잘 아는 이씨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씨는 해남에서 목포까지 이동하던 중 탈출을 감행해 고향인 논산 두계면으로 향하게 된다.
  
◇고향서 치른 '두계전투'..인민군 30여명 사살 =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도착한 이씨. 그는 그해 10월6일 경찰로 복직하고 10월14일 논산 연산전투사령부 산하 두계지구 전투경찰소대 부관으로 발령을 받는다.

   당시는 국군과 연합군이 서울을 수복하는 등 전세를 뒤집고 38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하는 상황이었지다. 하지만, 태백산과 지리산, 덕유산, 대둔산 등지에는 패잔병들과 빨치산들이 유격전을 펼치며 국군에 대항하고 있었다.

   부임 당일 이씨는 국도변에서 검문 근무 중 미군 장교를 만나게 된다.

   당시 서울지역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엘리트에 속했던 이씨는 유창하지는 않지만, 미군 장교와 대화를 통해 무기지원을 요청했고, 이 장교는 이씨에게 수류탄 50발들이 2상자를 내주고 떠난다.

   이씨는 "14일 배치받고 이틀 동안 마을을 돌며 주민들을 설득해 100여명으로 구성된 향토방위대를 조직했고, 적의 침투가 예상되는 곳곳에 방어진지 50여개를 구축했다."라며 "이들에게 소총조작법과 수류탄 사용법 등을 교육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운명의 10월16일 오전 1시16분. 지역을 방어하는 향토방위대와 북상하던 인민군, 빨치산 사이에 5시간여 동안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이씨는 동료경찰 35명과 학도병 등 100여명의 향토방위대를 이끌고 인민군과 대둔산에서 활동 중인 빨치산 1개 대대병력과 맞붙어 적 30여명을 사살하고 50여명을 다치게 하는 혁혁한 전공을 올린다. 이날 전투는 훗날 '두계지구 전투'로 불리게 된다.

   "미국제 기관총을 쏘는데 기관총이 얼마나 몸살을 앓았던지 총구가 벌겋게 달아오르더라고. 총구를 식힐 물을 뜨러 갈 시간도 없고. 대원들에게 기관총 케이스에 소변을 보라고 하고는 그 소변으로 총구를 식혔지. 소변 속에 총구를 대니 '쉬익' 소리를 내며 지글지글 끓더라고."
이씨는 기관총 위에 달아놓은 손전등으로 적들을 비추면서 기관총을 쏘아댔고, 미군 장교에게 얻어놓은 수류탄을 던지며 북상을 저지했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패잔병들로 구성된 공비들이 양민 학살 등 갖은 만행과 약탈을 일삼으며 북으로 도주하다 맞붙게 된 것"이라며 "사방에서 총성이 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등 밤새도록 아비규환의 처절한 광경이 펼쳐졌었다."라고 회상했다.

   특히 퇴각하는 인민군과 빨치산 추격에 나선 이씨가 대둔산 빨치산 대장인 이원종을 생포할 찰나 이원종이 지니고 있던 수류탄으로 자결하면서, 이후 대둔산 빨치산은 지리멸렬하게 된다.

   이 전투의 공적을 인정받아 이씨는 전투 당일인 16일 오후 경사로 특별승진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전투에서는 향토방위대원 6명이 전사했고, 이씨도 적군이 쏜 총을 맞아 3개의 손가락을 잃었다.

  
◇"공적 찾아주오"..경찰인사기록카드 소실 = 목숨을 걸고 총탄을 맞으며 조국을 지켜낸 이씨에게도 한 가지 아쉽고 서운한 점이 있다.

   80여명의 적을 토벌한 공로로 전투 당일 특진까지 했는데, 경찰기관의 인사기록이 불에 타면서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것.

   이씨의 경찰공무원인사기록에는 두계지구 전투 공적과 현장에서 경사로 특별 승진한 중요 기록 등이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이씨는 참전 용사 등록 및 국가유공자 등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씨는 지난 2008년 8월 충남지방경찰청 등에 두계지구 전투에 참가했거나 당시 동료 경찰관, 현지 주민 등 10여명의 진술을 첨부해 '경찰공무원 인사기록카드 정정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기록을 바꿔줄 수 없다는 회신만을 보내왔다.

   1995년 6월 두계지구 전투가 벌어졌던 계룡시 금암동 수변공원에 이씨의 공적을 기리는 전공비가 지역민들에 의해 세워졌음에도, 이씨가 몸담았던 경찰조직에서는 인사기록카드가 불에 타 없어졌다는 이유를 들어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세운 공적이 인사기록상의 하자, 그것도 당국의 기록보관 소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억울할 뿐이지. 돈도 필요 없어. 정당하게 국가로부터 내 공적을 인정받고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거지. 내가 얼마나 더 살겠어."

◇"젊은 세대 안보의식 우려돼..애국심 키워야" = "참혹하고 처절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보지 못한 요즘 젊은 세대의 안보의식이 자꾸 걱정돼. 만약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지금도 앞장설 것 같아."
이씨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희생한 이름 모를 '전쟁영웅'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이씨는 포화 속에 사라져 간 영웅들을 기리고자 지난 1997년 6월 두계지구 전투에 함께 참가했다가 전사한 향토방위대원 6명의 유골을 수습, 국립현충원에 안장시켜 주기도 했다.

   또 주민들이 세워준 자신의 공적비 옆에 추모비를 세워주고, 매년 현충일마다 자비를 들여 위령제를 지내는 등 지나간 역사 속에 '두계지구 전투' 같은 치열한 격전이 있었음을 널리 알려 애국애족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이씨는 "참혹한 전쟁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라며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고통 그 자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연합)

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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