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평화'는 전쟁에의 초대장
자유와 함께하는 참된 평화는 그것을 지킬 의지와 용기가 있는 자만이 향유할 수 있다
인류가 평화를 유지해 온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억제의 개념이다.
적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면 이익보다는 손실이 훨씬 더 클 것임을 인식시켜 감히 도발을 못 하게 하는 평화유지 방법이다.
여기에는 빌붙고 달래거나 위협을 회피해서 평화를 유지한다는 인식은 없다. 회피하고 도망하면 뒤따라와 뒷덜미를 물어뜯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을 각오하고라도 단호히 맞서야 지켜지는 것이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제에 성공한 국가들은 통상 철저한 응징과 보복을 원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는 6·25 이후 지금까지 1·21사태, 아웅산 폭파 등 전쟁이라도 선포해야 할 수많은 북한의 도발이 있어 왔지만 제대로 응징이나 보복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2007년 한국청소년연구소는 국가 유사시 참전하겠다는 청소년이 일본과 중국은 40%가 넘었는데 한국은 10.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이런 측면이 북한이 우리를 ‘아무 때나 마음 내키는 대로 뺨 한대 올려붙여도 괜찮을 만만한 상대’로 깔보고 함부로 도발을 하게 만든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천안함 사태를 두고도 남북 긴장을 겁내 적당히 넘어가자는 사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북한의 도발임이 확인됐는데도 저들이 오히려 ‘서울 불바다’ 운운하며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으니 한반도의 긴장이 좀 더 높아질 것임은 당연하다.
도대체 군함이 폭침(爆沈)된 마당에 긴장을 우려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지만, 지금은 크게 보면 남과 북 간에 일종의 기싸움이 진행 중인 때다. 만약 여기에 겁내 화해를 구걸하려 들면 한국은 또다시 북한에 코가 꿰이고 말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교만을 키우고 또 키워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커녕 머지않은 장래에 정말로 전면 전쟁이 불가피하거나 자유 대한의 미래를 잃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사회는 물론 심지어 우리 장병들 사이에도 ‘비겁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는 식의 무책임한 주장에 동조하거나 심지어 ‘전쟁에 투입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큰 문제다.
물론 오늘 동북아 안보 환경을 비춰 보면 전면 전쟁은 북한이 오히려 더 겁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46명의 전우가 희생됐는데도 우리 사회나 장병들이 ‘비겁한 평화’나 찾고 도발에 대한 분노 대신 슬픔과 공포뿐이라면 북한이 무엇이 두려워 다양한 추가도발을 자제하려 하겠는가?
분명히 말하지만 ‘비겁한 평화’란 이 세상에 없다. 단순히 없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의 초대장’이나 같은 법이다. 그래서 자유와 함께하는 참된 평화는 그것을 지킬 의지와 용기가 있는 자만이 향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혹 다소의 희생이 따를지 몰라도 오늘의 작은 희생을 두려워하면 내일 더 참혹하고 큰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지혜롭고 용기 있는 자의 것이 돼 온 것이다.
1938년 뮌헨회담에서의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국가적 비겁성이 불과 1년여 만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문을 열어 줬듯이 용기가 필요할 때 비겁한 것은 때로 더할 수 없는 죄악일 수 있는 것이다.(konas)
김희상(예.육군중장/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United Nations Plaza Tel: 1-212-963-865Fax: 1-212-963-924 ngobranch@un.or quadreports 빨갱이새끼들 단체 긴급 입수 나라사랑 애국단체 라이트 회원 모두 좌파새끼들 처벌을 위해 행동 합시다. 이명박 대통령님과 함께 좌파조센징 목따기 합시다. </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
2010-06-17 오후 4:5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