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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지령 받은 혐의 한충목의 화려한 활동

密入北 한상렬 등과 통일연대 이끌어

Written by. 김성욱   입력 : 2010-07-02 오전 1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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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과 국가정보원은 중국 등지에서 북한 관계자들과 만나 「맥아더 동상 철거 투쟁」 「주한미군 철수 투쟁」 등에 대한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로 한충목 공동대표, 최영옥 자주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정대연 前 집행위원장 등 한국진보연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선양(瀋陽) 등지에서 2~3차례 북한 통일전선부 관계자들을 만나 『맥아더 동상 철거 투쟁을 진행하라』 『주한미군 철수 투쟁을 가열 차게 진행하라』는 등의 지시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를 받고 있는 한충목氏 등은 親北反美(친북반미) 성향(소위 NL계) 좌파단체 實務責任者(실무책임자)로 왕성하게 활동해 온 인물들이다.
 
 <전국연합·통일연대·6.15남측委·겨레하나·여중생범대위·국보법폐지국민연대 집행위원장, 진보연대 공동대표>
 
 대표적으로 한충목氏는 ▲南北연방제를 공개적으로 주장해 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집행위원장, ▲2005년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파괴를 기도했던 「통일연대」집행위원장을 맡았었다. 통일연대는 密入北(밀입북)한 한상렬 목사가 이끌었던 단체이다.
 
 韓씨는 ▲전국연합-통일연대-민중연대를 계승한 「한국진보연대(진보연대)」가 2007년 출범하자 운영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진보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 진보연대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 촛불집회를 주도한 단체로 지목됐었다.
 
 韓씨는 ▲2002년 3월20일「한총련 합법적 활동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2001년 2월12일「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창립 당시 고문을 맡아, 한총련과 한청 등 利敵團體(이적단체) 활동에도 관여해왔다.
 
 이밖에도 韓씨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 북측, 해외위원회 중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중국과 북한을 오가며 소위 남북교류에 앞장서왔다.
 
 또 김일성대학 등 對北지원에 앞장서 온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상임집행위원장도 맡았었다.
 
 그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공동운영위원장, ▲「미군장갑차여중생故신효순,심미선殺人사건범국민대책위(여중생범대위)」공동집행위원장,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공동대표 등을 맡아 각종 좌파성향 집회의 司會(사회)도 도맡다시피 해왔다. 2002년 11월29일 이른바 「국가보안법 장례위원회」 준비위원도 맡았었다.
 
 韓씨는 국보법 위반 등의 혐의로 4차례 구속된 바 있다. 인터넷 민중의 소리 2006년 2월16일자 기사는 『한충목 통일연대 집행위원장이 구속된 것은 총 4번』이라며 『그 중 세 번이 4~5개월 구속 후 집행유예로 나왔고, 나머지 한 번은 92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결성과 범민족대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3년형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고 소개했다.
 
 한충목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면 아래와 같다.
 
 <연방제통일 주장하는 전국연합 실무 책임자>
 
 韓씨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실무를 책임져 온 전국연합은 1991년 설립 이래 2007년 진보연대로 소위 발전적 解消(해소)될 때까지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국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反美집회를 주도해온 단체이다. 이 단체 자료집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전국연합은 약 800 차례의 집회·시위, 기자회견 등 행사를 치렀다고 나온다. 800여 차례면 최소 하루 2~3건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 된다.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보람원수련원에서 가진 소위「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고 결의했다. 聯邦制(연방제)실현을 다짐한 이날 결의는 「9월테제」 또는 「군자산의 약속」으로도 불린다. 당시 자료집에서 「연방통일조국 건설」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연방통일조국 건설은 △북한의 社會主義(사회주의) 혁명역량과 미국의 제국주의 세력의 대결에서 社會主義 혁명역량이 승리하고, 남한 내 民族民主(민족민주)전선역량이 親美(친미)예속세력의 대결에서 민족민주전선역량이 승리한 뒤, △남한 내 民族民主 전선역량의 反帝(반제)투쟁이 북한의 社會主義 혁명역량이 승리의 기선을 잡은 反帝(반제)전선에 加勢(가세)·結集(결집)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6·15공동선언 이후 정세는 「조국통일의 大사변기」로 규정할 수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이 실현되고 향후 10년을 전후하여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연방통일조국」을 완성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열린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현이 되면 駐韓美軍(주한미군)철수 등 反美자주화가 비약적으로 촉진되고, 南側(남측)지배세력이 급속히 약화되는 가운데 民族民主운동세력의 주도아래 諸(제)민주역량을 결집하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함으로써 「연방통일조국의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소위 조국통일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자주적 민주정부수립」→ 「연방통일조국의 완성」으로 진행되며, 이는 북한의 社會主義(사회주의) 혁명역량에 加勢(가세)·結集(결집)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이란 주장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역량에 가세하고 결집하는 형태의 통일은 무엇일까?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
 
 <맥아더동상 파괴 기도 단체 집행위원장>
 
 韓씨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통일연대 역시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韓美동맹 파기·615선언 실천』을 주장하며 전국연합과 同一(동일)한 노선을 걸어온 조직이다.
 
 左派회의체인 전국연합이 頭腦(두뇌)라면 통일연대는 민중연대와 함께 좌파진영의 양 날개(兩翼) 역할을 해왔다. 통일연대는 전국연합, 민중연대와 함께 反美운동을 벌여왔는데, 2005년 9월11일 인천맥아더동상 파괴폭동 당시 『맥아더는 학살의 원흉, 戰爭(전쟁)미치광이』라며 일련의 미군철수 성명을 발표했다.
 
 통일연대는 북한정권을 맹목적으로 비호해왔다. 예컨대 통일연대는 2006년 3월21일 유럽의회 제출 의견서를 통해 『국제사회는 인류의 인권향상을 희망한다면 우선적으로 美國의 반인권 행태를 저지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렇게 북한정권을 옹호했다.
 
 『미국의 對北적대정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도 북은 자체적인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유엔의 각종 인권 규약을 비준하고 국제사회와 평등한 인권대화의 폭을 확대하고자 노력해왔다...이러한 北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8-9년 전 식량난이 발생하던 시기에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검증되지 않은 증언을 앞세워 국제적 반북여론을 조장, 북을 고립시키고 대북적대정책의 명분을 축적하려하고 있다.』
 
 통일연대는 2005년 2월14일부터 16일까지 서강대에서 「제6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이하 국제회의)가 열리자, 가두선전까지 벌이며 소위 『북한인권회의의 「害惡(해악)」』을 알리는 선전에 나섰다.
 
 당시 통일연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국제회의의 서울 개최는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反인권적이고 反통일적인 국제회의가 될 것이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韓씨는 같은 달 14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제6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에 반대하는 80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았다.
 
 韓씨는 이틀 뒤인 16일 서울 美대사관 부근 정보통신부 앞에서 당시 국제회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도 참석, 『미국이 재정지원을 하면서 국제회의를 배후조종하는 등 對北(대북)압살모략책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효과적으로 폭로하고 여러 단체들과 연대함으로서 북한인권법안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을 얻어낸 큰 성과를 낳았다』고 말했다(출처 : 통일뉴스).
 
 통일연대의 사무처장인 민경우氏는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두 차례나 실형을 받았던 인물이다.
 
 閔씨는 1997년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가 199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다. 그는 5년 뒤인 2003년 다시 간첩 혐의로 구속돼 징역3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지만, 형기의 3분의 1을 채울 무렵인 2005년 8월15일 刑집행면제 특별사면과 함께 복권을 받았다.
 
 閔씨는 2003년 당시 『북한 공작원 박용으로부터 활동지시 및 활동자금을 받으며 국가기밀을 탐지·수집·전달하고 국가보안법철폐, 주한미군철수, 조국통일3대헌장,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북한식연방제통일방안의 실천투쟁을 전개해왔으며, 통일연대 결성 등을 북한에 지속적으로 보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충목氏는 2004년 8월24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경우 처장 사건은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공안세력이 6.15 공동선언에 타격을 주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며 『구형 10년도 인정할 수 없지만 만약 실형을 선고한다면 이는 6.15 공동선언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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