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건국대통령 45주기 추모식
김문수 경기도지사, 우남 이승만 박사 제45주기 추모식에서 이승만 대통령 동상건립 주장
“이 나라 곳곳에 그렇게 많은 동상을 세우면서 반만년 역사에 가장 빛나는 대한민국을 세우신 당신의 동상 하나 세우지 못했습니다. 기념관조차 없습니다. 대한민국 한복판에 위대한 선각자인 당신의 동상을 세워서 모든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놓은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이 열린 19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추모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또 “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를 세운 대통령을 국민들이 모르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의 무관심과 망각을 지적하고, “대한민국은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위대한 나라가 됐지만,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 하고 끝까지 방해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장 실패한 나라가 됐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건국 아버지로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사)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강영훈) 주관으로 열린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은 김문수 경기도지사,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 독립운동관련단체장 및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종교의식, 고인의 말씀(육성녹음), 경기도지사의 추도사에 이어 분향 및 이인수 박사의 유족인사 등으로 진행됐다.
|
이날 기념식장에서는 해방 전인 1942년 6월13일 이승만 박사가 워싱턴에서 ‘미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2천 3백만 조선 동포들에게 전한 자유의 소식 육성녹음 테이프가 공개됐다.
테이프에는 이승만 박사가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필리핀 침략, 이에 대한 미국의 보복 결심,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광복군의 활동상, 독립군의 왜적 타파의지와 미국·중국과의 연맹, 임시정부 승인에 대한 기대 등의 소식을 전하며, 다른 동포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널리 전파하고 독립을 위해 분투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 등이 녹음돼 있다.
우남 이승만 박사(1875.3.26~1965.7.19)는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출생했으며, 1896년 서울에서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를 조직, 주간신문 협성회보를 발간하고 주필이 되어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전개했다. 협성회보가 정부의 탄압으로 폐간되자 일간지인 매일신문을 발행하고 주필로 활동했다.
1898년 독립협회가 해산되자, 박사는 “광무황제는 연령이 높으시니 황태자에게 자리를 내 주셔야 한다”라는 전단을 배포했는데, 이로 인해 징역 7년형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 때 그의 정치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독립정신」을 저술했다.
「독립정신」에서 국제간의 외교와 외국인과의 친선의 필요성, 낡은 사고방식에서의 탈피, 국권 존중과 자유권을 소중히 할 것을 주장했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박사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워싱턴 대학, 하바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을 순례하면서 새로운 문물과 학문을 접한 뒤 1910년 귀국했고, 1912년 세계감리교총회 한국대표로 임명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와이에 근거를 두고 「한국·태평양」신문을 발간하고,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4월에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했다.
1940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고,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16일 귀국하여 “뭉치고 엉키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같이 하나로 뭉치자”고 역설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정부에서는 박사의 공훈을 기리어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 관련기사보기
-
오늘날 민주당이 좌익 소굴당인 것으로 보아, 419는 좌익들의 치밀한 선동에 의한 어린학생들의 난동에 불과하다. 이승만의 소위 독재는 결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이 아니고 좌익들에 대한 탄압이었다; 즉 공산 주의에 대항 해서 신생 대한민국의 연약한 자유민주주의를 정착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아야 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2010-07-20 오전 12:21: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