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았습니다. 평안남도 영유 시골의 한 국민 학교에 부임하여 일어로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그 해에 해방을 맞아 평양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일본이 잘못된 나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독립운동이니 항일투쟁이니 하는 일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운동이나 투쟁의 일선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암울한 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가 일본의 패망을 목격하였습니다.
북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그 등에 업혀 김일성이라는 30대의 젊은이가 평양에 입성하는 과정, 그가 집권하고 살벌한 ‘북조선’을 만드는 과정도 지켜보았습니다. 그 때 나는 이미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정치이념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탈북을 계획, 달빛도 없는 어두운 밤에 38선을 넘었습니다.
나는 남한에서 대학 교육을 받으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일제하에 우리가 박탈당한 소중한 가치가 ‘자유’였고, 김일성 독재 하에 북한 인민이 권력에 의해 빼앗긴 것이 또한 ‘자유’임을 깨달았습니다. 미국 교육 5년은 나를 더욱 확실한 ‘자유의 투사’로 키워 주었습니다. ‘자유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미국 독립 전쟁의 슬로건이 곧 나의 삶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는 나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동시에 이를 지키기 위하여는 나의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는 일종의 확신과 사명감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대학생 시절부터 그 싸움을 시작한 셈입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 - 자유민주주의, 그 한 가지 목표를 위하여 싸우고 또 싸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군사 독재에 반대하였습니다.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도 여러 번 끌려갔고 거기서 밤을 새우고, 서빙고에 있던 보안사 대공 분실에서도 여러 밤을 잤습니다.
군사재판도 받았습니다.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 정지 15년이 언도되었지만 나는 항소를 포기하면서 15년 감옥에 살 결심이 되어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양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석방되었지만 가르치던 대학에서는 추방되어 10년 남짓, 직장이 없어 문경새재 기슭에서 은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어떤 여당이건 어떤 야당이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정당이건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진실과 결심만 확실하다면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 나는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되는 날을 위하여라면 어떤 희생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 꿈 하나 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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