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

공로명 "日의 전략적 유용성 인식해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국제학술회의 기조연설

Written by. 강치구   입력 : 2010-08-04 오후 2:37:59
공유:
twitter facebook
소셜댓글 : 0

  “앞으로의 100년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과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은 한미동맹을 더욱 가꾸어 나가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동맹에 준하는 우호협력관계에 있는 일본의 전략적 유용성을 길이 인식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인식이 한국 국민의 국민적 컨센서스로 성립될 때 한∙일간의 민족적 화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4일 오전 상공회의소(서울 중구)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 주최 ‘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반도 100년 성찰과 전망’제하 국제학술회의에서, 전 외교부장관 공로명(세종재단) 이사장은 이같이 역설했다.

 ▲ 4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국제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하는 공로명 전 외교부장관ⓒkonas.net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공로명 이사장은 “우리의 민족감정이 일본제국주의의 비도덕성을 용납할 수 없는 것과 같이 그 당시의 우리역사에 대한 가감 없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100년을 성찰했다. 주제는 ‘조선의 몰락과 정치지도력에 관한 생각’이다.

 공 이사장은 “1910년의 한일강제병합은 청천의 벽력과 같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그 이전부터 그 원인이 되는 일들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며 조선의 지배층이 시대 변화에 무감각했던 것과 양요(洋擾)를 맞는 한∙일 양국의 차이를 들면서 “외세에 둔감했고 구습에 젖어있던 우리의 선인들은 그 대가를 자주권의 실권으로 치르게 된 것”이라고 국권피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밝혔다.

 이어 공 이사장은 민족의 광복과 건국사를 살피면서 “1945년 12월 모스크바의 미∙영∙소 3국 외상회의에서 한국은 5년의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한다고 한 결정을 뒤엎고, 1947년 유엔이 한국정부 수립을 결정한 것은 이승만 박사의 남한단독정부수립론이 인화선이 된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故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업적을 언급했다. 그는 이러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대한민국수립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이승만 대통령)가 한 역할도 역할이려니와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그의 지도력은 한미동맹 관계를 수립하게 했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융성과 번영의 터전을 닦은 위업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특히, 공 이사장은 “요즘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표명되고 있어 다행스럽다”며 “외부세계에 어두워서 나라를 잃었던 한국에 있어 해방정국에 이승만 박사와 같은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가진 분이 있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학술회의는 1부에서 구대열(이화여대) 교수와 야마무로 신이치(교토대) 교수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성찰을 주제로 발표했으며, 2부에서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대한 한∙중∙러 3국의 시각에 대해 박진희(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 왕레이(中 난카이대) 교수, 체르냡스키(러시아해군함대문서보관소) 소장이 각각 발표했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소장 이훈)의 개소 2주년을 맞아, 3부에서는 ‘한반도와 미래 100년’을 주제로 해양정책과 해양경계획정에 대해 권문상(한국해양연구원) 부원장, 정진석(국민대) 교수가 발제했다.(konas)

코나스 강치구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로그인하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