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란과 남한 좌익'
② 남한 좌익이 없었으면 6·25동란은 일어나지 않았다..김일성 “유사시 남좌익 인민봉기” 소련 설득
6ㆍ25는 김일성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지만 남한 내 좌익을 처음부터 철저히 고려하고 일으킨 전쟁이었다.
김일성은 북한 수립 직후부터 국토완정론을 구상하고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소련의 스탈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1949년 3월, 김일성은 소련으로 가서 스탈린에게 전쟁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우리는 남측 내의 강력한 유격대운동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친미정권을 경멸하는 남쪽 주민들도 분명 우리를 도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1949년 8월 12일 김일성과 박헌영이 북한 주재 스티코프 소련대사를 설득할 때도 “공격이 개시되면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인민봉기가 남반부에서 분출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스티코프 대사는 스탈린에게 정보보고서를 올렸다. “남한 내에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은 1948년 기준으로 90만 명의 당원이 24만 명으로 감소됐으나 좌익단체들은 여전히 특정 활동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 … 최근 우리 측에서 분석한 ‘인민군(북한군)’의 군사력은 남조선 군을 초전에 격멸하고 남조선 지역을 점령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본다. 따라서 … 우리는 남조선에서 활동 중인 빨치산 대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처럼 스티코프 소련대사조차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남한 좌익들과 합세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했던 흐루쇼프 회고록에도 김일성이 모스크바 스탈린을 찾아와 남한 좌익들이 있으므로 전쟁을 일으키기만 하면 속전속결로 승리할 수 있다며 전쟁 개시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6ㆍ25동란은 남한 좌익이 있음으로 계획된 것이고, 남한 좌익이 없었으면 미군의 참전을 우려한 스탈린의 승낙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으면 6ㆍ25동란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은 남침 3일만인 6월 28일 서울을 점령했다. 당시 내각수상이던 김일성은 ‘우리 조국 수도 서울 해방에 제하여’라는 축하연설을 발표하면서 남한 내 좌익세력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전체 조선인에게는 전쟁을 조속한 시일 내에 승리로 종결시키기 위해 모든 역량을 다하는 인민군에 적극 협조할 것과 미해방지역 인민은 빨치산 활동을 전개해 후방을 교란하고 도처에서 인민폭동을 일으켜 군수물자 수송을 못하도록 방해할 것과 해방된 서울시민들은 민주질서를 속히 수립하며 수도의 복구건설 사업에 착수하며 반동에 의해 해산됐던 자기의 정권기관인 인민위원회들을 급히 복구해 인민군대를 적극 원조해야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김일성과 박헌영의 기대와는 달리 남한 내 무장 빨치산 활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주 4ㆍ3사건(1948년 4월), 여순반란사건(1948년 10월) 등을 겪으면서 좌익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한 정부가 국가보안법 제정(1948년 12월), 좌익 전향사업(1949년), 남로당 붕괴(1949년~1950년), 군내부 좌익 숙군(1949년) 등 좌익 척결사업을 강력히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좌익들이 조직적인 동조반란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좌익세력이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남한 내 좌익세력들이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당시 남한 내에 엄청난 규모의 좌익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은 미국 CIA 보고서(1949년 2월 21일)에서도 나타나 있다. “전체 인구 2000만 명 가운데 공산당에 가입해 당원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이 못 된다. 그러나 이 수치는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을 나타내는 지표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반공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경찰 활동에 대항하는 자가 60만 명이 넘는다.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소규모 정치ㆍ사회ㆍ문화 조직들까지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10%를 넘을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산당 노선을 따르는 조직 이외에도 더 많은 한국인이 특정ㆍ지역적 이슈에 있어 공산주의자들의 선전과 리더십의 영향을 받고 있다.”
숨어 있던 남한 좌익들은 북한군이 자기 지역을 점령하는 즉시 나타나 북한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이들을 도와 인민위원회(행정기관), 치안대, 각종 사회단체(민주청년동맹·여성동맹·농민동맹 등)들에 참여해 북한통치에 앞장선 것이다.(출처:국방일보)
<현대사상연구회 ‘6·25동란과 남한 좌익’ 집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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