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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식민지지배 손해·고통 사죄" 표명

간 나오토 총리, "식민지 지배 한국인 뜻 반(反)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시사..강제 징용자나 위안부 등 보상 언급 없어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0-08-10 오전 11: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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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10일 오전 내각회의를 거쳐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간 총리는 이 담화에서 "정확히 100년 전의 8월, 일한(한일)병합조약이 체결돼 이후 36년에 걸쳐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며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간 총리는 또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쉽게 잊지 못한다"며 "일본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는데 솔직히 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간 총리는 “향후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 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실시해 온 이른바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금후에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간 총리는 이어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제징용자나 위안부 등 보상과 관련된 과거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일지를 살펴보면, 1984년9월 전두환 대통령 방일시 쇼와(昭和) 일왕이 환영 궁중 만찬에서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며 '유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시에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는 뜻을 한국측에 전달했고, 1993년11월6일 호소카와 모리히토 총리는 한국 경주에서 열린 한일수뇌회담에서 "식민지 지배에 의해 조선반도(한반도)의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것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반성하고 깊이 사과하고 싶다"고 표명한 바 있다.

이어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총리는 "머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 대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마음으로부터의 사죄(おわび)의 기분을 표명하고 싶다"는 담화를 발표했지만, 식민지 병합 과정의 강제성 등을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98년 10월8일에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한일 파트너십 선언(한일공동선언)에서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おわび)한다”고 밝혔다.

2005년 8월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전후 60년 총리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통해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나타내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리는 마음을 표명합니다"라는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인용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영유권 주장, 강제징용과 위안부문제 부인, 조선인이 한일합병을 원해 자발적으로 이뤄졌으며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해괴한 망언은 우리를 분노케 했으며, 일본이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진실로 반성하는지 그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해 왔다.

또한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병합의 강제성이 없었다는 점과 지난 1965년 한일기본 조약을 근거로 강제 징용자나 위안부 등이 줄곧 요구해 온 보상에는 정부 차원에서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편, 현재 일본 궁내청(宮內廳·왕실 담당 행정기관)이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혼사, 장례, 잔치 등 주요 의식과 행사 준비과정 등을 상세히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로, 1922년에 반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시민단체인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는 현재 궁내청에 81종 167책이 보관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교도통신이 궁내청을 인용해 보도한 책의 숫자는 80종 163책으로 차이가 있다.

조선왕실의궤 외에도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한반도 관련 도서는 조선총독부가 기증한 84종 282책, 제실도서(帝室圖書) 가운데 유교 경전과 의학·군사 서적 38종 375책, 역대 국왕이 교양을 쌓기 위해 받던 강의인 '경연(經筵)'에 사용된 서적 3종 17책 등이 있다.

일본 정부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담화를 발표한 것은 과거 역사문제에 대해 양보하는 대신 향후 100년을 응시하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화하고 북한의 납치, 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다음은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내용 전문임.

“금년은 한일관계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ㆍ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 보는 것에 솔직하게 임하고자 생각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 또다시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 향후 100년을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 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실시해 온, 이른바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봉환 지원 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금후에도 성실히 실시해 갈 것입니다.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되어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반환하고자 합니다.

일본과 한국은 2,000년에 걸친 활발한 문화 교류 및 인적 왕래를 통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훌륭한 문화와 전통을 깊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양국의 교류는 매우 중층적이며 광범위하고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양국 국민이 서로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우정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양국의 경제관계 및 인적교류의 규모는 국교정상화 이래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고, 서로 절차탁마하면서 그 결합은 극히 공고해졌습니다.

한일 양국은 이제 금번 21세기에 있어서 민주주의 및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하며 긴밀한 이웃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는 양국관계에 그치지 않고, 장래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염두에 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세계경제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핵군축 및 기후변화, 빈곤 및 평화구축 등과 같은 지구규모의 과제까지,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폭넓게 협력하여 지도력을 발휘하는 파트너 관계입니다.

저는 이러한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유대가 보다 깊고, 더 확고해지는 것을 강하게 희구함과 동시에, 양국간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결의를 표명합니다”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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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녹   

    한일관계에 있어서 해결 해야할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본의 총리가 사죄하는 것으로 끝내버리면 안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아니,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때까지 쉽게 수용해서는 안된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0-08-10 오후 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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