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소감①] "결국 승리는 가장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간다"
1950. 6.25로 떠나는 행군 타임머신 여행
|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재향군인회는 전국에서 선발된 125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포항까지 460km를 종단하는 제3회 '대학생 전적지 국토대장정'을 지난 6월 25일부터 11박 12일간의 대장정을 성공리에 끝마친 바 있다. 이에 코나스는 체험수기 공모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된 9편(우수 1편, 장려 8편)을 엄선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대학생들은 어느 곳에서도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6.25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전적지에서 또한 참전용사들의 경험담에서 피부로 느끼고 체험했다. 이 젊은 대학생의 고민과 갈증을 풀어 줄 해결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코나스는 잘못된 근.현대사 교육의 해결책을 바로 대학생들의 체험수기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독자들의 필독을 바라며......(konas 편집자 주) |
대학생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합격자 발표 날.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향군국토대장정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합격자 명단에 ‘이 정 화’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야호!”하고 큰소리로 쾌재를 외쳤다.
그 날 저녁,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니 축하한다고 하시며 기뻐하셨다. 하지만 막상 행군시작 날이 점점 가까워오자, 부모님은 내가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잘할 수 있을지 걱정 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께 내가 씩씩하고 강한 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걱정 붙들어 매시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부모님께 내 의지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대학생 때 누구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어떤 것에 대해 도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내게 온 이 행운의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국토대장정 일정 중, 우리나라 육해공군의 심장부인 계룡대 방문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불과 몇 달 전에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해 남북 긴장상태가 악화되고 있었고, 북한이 금강산 내 우리나라 부동산을 몰수하며 남한을 자극하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며, 60년 전 일어났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또 다시 발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 속에서 계룡대에 계신 군 수뇌부들은 어떠한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한 마음에 어서 빨리 6월 25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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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6.25>
드디어 기다리던 6월 25일. 대학생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 첫 번째 막이 올랐다! 벅찬 마음을 안고 올림픽체조경기장에 도착하니, 주황색 티셔츠에 커다란 검은색 배낭 하늘색 손수건 그리고 진한 풀잎 색 모자를 착용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나와 12일 동안 함께할 많은 대원들의 보니,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에 기분이 잔뜩 부풀어졌다. 체조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6·25참전유공자, UN군 참전용사, 군복을 입은 수많은 대한민국 군인과 미군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6·25전쟁 60주년 연설을 하신 후, UN군 및 국군 참전용사 대표들에게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셨다. 6·25전쟁 기념식 진행자께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은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과 공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자, 가슴 한곁에서 왠지 모를 울컥한 마음이 밀려왔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낯선 이국땅의 황폐한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며 처참히 죽어갔을 UN군 참전용사들을 생각하니, 우리 국군장병들의 희생만 생각했던 나의 이기적인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부터라도 그분들의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6.25 국토대장정 출정식이 끝난 후,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참전용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그곳에서 첫 참배를 하며, 국토대장정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12일 동안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점심으로 맛있는 도시락을 먹은 후, 경기도 수원에 있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로 이동했다. 이곳은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한 관계자 분이 여기에 있는 울퉁불퉁한 바닥은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전투지형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며, 그 위 조명박스에는 전사자의 288개의 사진이 삽입되어 있다고 하셨다.
프랑스에서 관리한다는 프랑스군 참전 기념비는 시설관리가 잘되지 않아 허름하기는 했지만 삐그덕 삐그덕 거리는 나무 바닥소리를 들으니, 60년 전에 전사한 프랑스군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찾아와 주어서 반갑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대원들 모두 묵념을 한 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설레임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첫 행군을 시작하였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내 두 눈으로 내 두 발로 직접 경험하고 있다는 것에 신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초행길의 기쁨은 사라져가고 점점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지쳐갔다.
5시간을 이렇게 걷자, 오늘의 도착지인 수원 공군10전투비행단에 도착했다. 비행단에서는 맛있는 저녁과 야식을 주셨고 깨끗한 목욕탕도 제공해주었다. 공군비행단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오늘 받은 피로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들었지만, 앞으로 남은 11일의 여정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져왔다. 푹신푹신한 이불 대신 빳빳한 침낭속의 잠자리는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첫 행군의 피곤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들었던 국토대장정의 첫 날 밤이었다.
<둘째 날-6.26>
수원 공군10전투비행단에서의 아침 식사 메뉴는 군대리아였다. 말로만 듣던 군대 햄버거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우유도 제공되었는데,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250ml 우유라서 신기했다. 행복하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전쟁이 발발했을 때 사용되었던 퇴역한 전투기들의 전시물을 보러갔다. 전투기 탑승공간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이 전투기가 실제로 하늘을 난다고 생각하니 전투기들이 더 멋있어 보였다. 전투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기 때문인지 대원들은 전투기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다음, 우리는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UN군초전기념비를 방문했다. 한국전쟁 때 유엔군이 북한군과 벌인 첫 전투를 기념하고, 이때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라고 했다.
사실 오산의 죽미령에서 일어난 이 전투는 패배한 전투였다. 유엔군이 북한군을 과소평가하여 북한군보다 유엔군사상자가 더 많았으며 경제적 손실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유엔군이 최초로 참가하여 북한국과 처음으로 접전하였던 사실에 의의를 두고 이 기념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념비 바로 옆에는 당시 치열한 격전상황을 본뜬 동상도 있었는데, 그 동상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동상이 들고 있는 저 무시무시한 무기에, 시뻘건 피를 흘리며 죽어갔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찹찹해졌다.
묵념으로 그 분들을 애도한 후, 40km 거리를 8시간동안 걷는 국토대장정의 본격적인 대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날, 행군을 하면서 ‘저 못가겠어요!, 조금만 쉬면 안돼요?, 차타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까 말까 수십 번도 더 고민했던 날이자, 나약한 생각들이 자꾸 내 머릿속을 괴롭혔던 날이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고 발목도 점점 부어갔다. 6kg인 짐이 어깨를 짓누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편안함을 누리려 포기하게 된다면,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고 묵묵히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송탄소방서에서 점심때 먹은 맛있는 탕수육반찬과 그름낀 다소 선선한 날씨들을 위안 삼으며 열심히 걸으니, 어느새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공군제2방공 포병여단 체육관에 도착하였다. 저녁에는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16강 월드컵경기가 있어 일행중 누군가 휴대한 휴대용 빔 프로젝트를 벽에 쏘아 옹색하게 축구경기를 보았다. 축구를 시청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두모여 다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고 교감할 수 있어 너무 좋았던 둘째 날 밤이었다.
<셋째 날-6.27>
셋째 날 아침에는 보슬보슬 비가 내려, 우의를 입고 가방을 트럭에 싣고 천안을 향해 행군하였다. 도로위에 샛노란 우의를 입은 사람들의 긴 행렬은 정말 진풍경이었다. 이날은 오랜 시간동안 행군을 하였지만, 비가 약하게 내리고 뜨거운 햇볕도 구름에 가려졌고 배낭도 매지 않아, 어제보단 걷기에 여건이 매우 좋았다.
사실 어제 행군은 너무 힘이 들어 대원들이 말을 걸면 “네”, “아니요”라는 단답형으로 대답하였다. 기운이 약해져 낙오하게 될까봐 말을 못했지만, 오늘은 대원들이랑 말도 많이 하고 장난도 치며 점점 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의 목적지인 보병50사단 동원훈련장에 도착하였다.
오늘 저녁에는 팀별로 장기자랑을 하는 날이라 하여 우리대원들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어렸을 때 최고의 인기 만화였던 포켓몬스터를 연기하기로 했다. 비록 우리 안보1팀이 상금을 받지 못했지만, 우리들끼리 포켓몬스터 만화흉내를 내며 한발자국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장기자랑이 끝난 후, 숙소로 가는 길은 약간 쌀쌀했다. 시골할머니 댁에 있는 것처럼 풀숲에서는 풀벌레 소리도 정겹게 들려왔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반짝 거리는 샛노란 별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많은 일들이 기다려졌다.
<넷째 날-6.28>
넷째 날 아침.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아침마다 하는 국군도수 체조로 활기찬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으며 오늘도 낙오하지 않고 즐거운 행군이 되기를 기도했다. 오늘도 둘째 날처럼 많이 걷는 날이라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10분의 휴식시간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가방위에 다리를 올려 체력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바닥에 눕는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한 일이였는데, 이제는 바닥을 보면 시멘트 바닥이든 자갈 바닥이든, 어느 바닥이든지 누울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50분의 행군 후 주어지는 달콤한 10분의 휴식은 어찌나 짧게 느껴지는지, “벌써 10분 지났어?”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힘들다고 10분을 더 쉬게 된다면, 오늘의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게 되니,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고 20대의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씩씩하게 앞으로 행군했다. 이날 점심은 연기군에 있는 베어트리공원 옆에서 먹고 고려대 캠퍼스로 발걸음을 향했다.
태양이 너무 뜨겁고, 목도 타고, 배낭은 무겁고, 어깨는 아프고, 발바닥과 발가락에 잡힌 물집들이 자꾸 따끔거려 고통스러웠다. 나는 10분 휴식 시간이 오기를 빌며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꾹꾹 참고 참으며 고려대 캠퍼스에 도착하니, 시원한 물과 맛있는 우유, 달콤한 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대원들에게 맛있는 간식이 큰 위안이 되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렇게 맛난 간식과 음식을 제공해주신 재향군인회 여성회 어머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여기서 받은 많은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나도 차기 대학생 국토대장정에서는 맛난 음식을 들고 멋진 도전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비타민 같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넷째 날의 최종목적지인 제203동원훈련장에 도착했다. 조치원에 있는 이 동원훈련장은 입구부터 숙소까지 들어가는데 길이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인들이 뜨거운 박수로 우리를 마중나와 주셔서 오늘의 마지막 행군을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는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달콤한 수박을 먹으니 30km행군으로 받았던 피로들이 스르륵 없어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오늘도 자기 전, 군의관에게 화상과 물집치료를 받았다. 이렇게 몸이 성한 곳이 없었지만, 내일은 또 무슨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증을 안고 잠이 들었다.
<다섯째 날-6.29>
조치원에서 계룡대까지 33km를 걷는 것이 오늘 행군의 여정이다. 내가 제일가고 싶었던 계룡대에 가는 날이라,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꾸렸다.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오늘 행군도 아픈 대원들 없이, 무사히 완주하기를 희망하며 걸었다. 이날도 태양이 이글이글거려 덥기도 덥고 땀도 많이 났지만, 작은 시냇가 옆 그늘 평상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어 그곳에서 물장난을 치는 대원들도 있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머리에 물을 적시는 대원들도 있었다.
이날 오후 행군 중에는 사진기와 카메라를 맨, 대전지역 언론관계자분들이 국토대장정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를 따라다녔다. 사진을 찍는 아저씨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카메라맨아저씨를 바라보며, 우리가 이렇게 6.25의미를 되짚어 보는 모습을 대한민국학생들이 TV나 언론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6.25전쟁의 역사와 참상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룡대로 가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오르막길에서는 왼쪽 발목에 통증이 와 오른쪽 발에 체중을 실고 절뚝거리며 올라갔고, 내리막길에서는 발가락에 난 물집들이 신발이랑 부딪칠 때마다 너무 아파 이를 꽉 물고 걸어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계룡대 여정이었지만, 몇 시간 후면 우리나라의 육군, 해군, 공군 3군의 지휘본부이자 통합기지인, 계룡대에 도착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열심히 걸었다. 저 멀리서 군악대의 빵빠레 소리가 들려왔다.
4성 장군이신 육군참모총장님까지 우리를 환영해 주기위해 직접 나오셔서 악수를 건네셨다. 저녁식사 후, 아픈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계룡대에 있는 군인병원에 갔다. 계룡대병원에서 여자의사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발목이 붓고 물집이 많이 잡혔는데 어떻게 걸었냐며, 곧 발톱도 빠질 것 같으니 집에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겁을 잔뜩 먹었지만, 우리 딸같이 안쓰럽다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그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렸다.
치료받기 전, 진짜 울지 않겠다고 속으로 수십 번 다짐했었는데... 결국, 나는 물집치료를 받고 발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았다. 발목통증 때문에 진통제 주사를 맞기로 하고 간호사 언니를 따라 갔다. 언니가 나도 간호사 하면서 힘든 일이 많아 많이 울었다며, 속 시원하게 다 울어버리고 힘내라고 응원해주셔 마음이 편안해졌다. 환자들이 너무 많아,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진찰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로 자상하게 대해주신 계룡대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언니한테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여섯째 날-6.30>
오늘 오전일정에는 계룡대 견학이 포함되어 있는 날! 우리는 3군 수뇌부들과 대통령께서 직접 모여 우리나라의 국방안보에 관해 회의를 한다는 육군본부 대회의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육군, 해군, 공군에 대한 현황보고도 받고 안보 강의도 들었다.
강의도중, 강사분께께서 주초석 사진을 보여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계룡대에 최초로 도읍을 세우려 계획하였다고 했다. 나의 조상이자, 전주이씨의 1대 조상인 이성계할아버지와 관련 있는 계룡대라는 이 장소가 나에게 더욱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왠지 어디선가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국군의 군용장비와 우리가 보유한 무기규모, 그리고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영상속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번의 기회로 우리나라 군인들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차가운 기류가 흐르는 지금, ‘60년 전에 일어난 한국전쟁이 또 일어나면 어쩌지?’하며 우리나라 안보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국방의 소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이분들의 노력과 희생 때문에, 우리가 손발 뻗고 집에서 안락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군인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보니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함으로써 한반도가 지금까지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미군에 대한 편협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사고의 전환 기회가 주어진 뜻 깊은 강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리고 있는 젊은 육해공군 장병들과 미군들에게 깊은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그 다음에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가 육군역사관인 ‘명예의 전당’에 갔다. 그곳에는 6.25뿐만 아니라 대침투작전과 베트남전 등 조국을 위해 싸우다 산화한 장병들의 이름과 각 부대별 상징 조형물과 역사자료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국립대전현충원에 갔다. 천안함 희생자 46용사들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다. 묘비를 바라보니, 그들이 침몰된 함수 안에 살아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기다렸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이번 희생자 중에는 나와 같은 진주 출생인 오빠도 있고 나와 같은 대학교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나의 주변인이라는 생각에 참배를 하면서 왠지 비통하고 서글퍼졌다. 이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천안함 젊은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국민 모두가 안보의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재향군인회 국토대장정이 이렇게 잘 진행될 수 있게 초석을 잘 다져주셨던, 고 박세직 향군회장님께도 참배를 드렸다.
고 박세직 향군회장님과 함께 3기 국토대장정을 할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고 박세직 회장님 덕분에 우리가 지금여기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도 들었다.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 계실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행군거리는 어제보단 짧아서 수월했다.
계룡대에서 맞은 주사와 약 때문인지, 다행히 발목과 발이 아프지 않았다. 보광초등학교 체육관이 오늘의 숙영지라 우리는 여기에 짐을 풀었다. 오늘 저녁에는 대원들과 여러가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게임을 하면서 소리도 지르고 큰소리로 웃고 떠들다보니, 대원들과 한 발짝 한 발짝씩 점점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곱째 날-7.1>
이날은 경상북도 상주시에 위치한 화령장지구전적비를 방문하였다. 육군제1사단과 제17연대가 화령장지구에서 북한군을 격파한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묵념을 하고 커다란 초록색 전차 맞은편에서 점심을 먹은 후, 조그마한 시골분교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6.25전쟁에 참전하셨던 6.25 유공자 회장님이 직접 우리에게 60년 전 이야기보따리를 푸셨다. 회장님께서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치열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셨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빙 둘러보니, 이렇게 평화롭고 아늑한 곳이 60년 전에는 불바다였다는 것이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신 회장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타이머신을 타고 1950년 7월17일 화령장전투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회장님께서는 상주에서 일어난 화령장 전투는 6·25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최초의 승전지이며,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전과를 낸 효과적인 전투라고 역설하셨다. 다시 타이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행군 출발지점까지 이동했다.
걸을 때마다 물집이 쓰라려 엉성하게 걸으니, 우리 팀 대원들이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힘내!”라고 걱정해주고 또 격려해주어, 심신이 지쳤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불과 6일 전만해도 어색하고 낯선 사이였는데, 행군을 하며 어느새 같이 기뻐하고 힘들어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 버렸다.
오늘의 목표지점인 김천대대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했다. 여자대원들은 군대 안에 있는 아담한 교회에 짐을 풀었다. 이날은 자기 전, 단장님께서 “건빵 먹을래?”하고 물어보셔 “네”하고 얼른 대답해서 받은 초록색 군대건빵이 기억에 제일 남는다. 군대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초록색 건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빵인 것 같다. 모두들 초록색 군대건빵을 받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일기를 쓰고 일찍 잠을 청했다.
<여덟째 날-7.2>
아침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들이 잔뜩 끼어 있었다. 가방을 추진한 후, 판초우의를 입고 우리는 낙동강 구 철교로 발걸음을 향했다. 우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동안 모자와 신발이 다 젖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모자와 신발이 젖었다고 해서 기분이 찜찜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했고 답답했던 마음들이 빗물을 따라서 깨끗이 씻어지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발걸음도 신이 났는지 빠른 걸음으로 행군을 했다. 낙동강 구 철교에 도착하여, 낙동강 구 철교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서있는 바로 이곳에서, 철교를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유엔군 주력부대 사이에 55일 동안 치열한 접전을 하였다고 한다. 다리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컴한 물이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을 쳐다보니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낙동강에 우리나라군인과 유엔군 그리고 민간인들의 붉은 핏물이 흘렀을 생각을 하니, 찹찹하고 슬픈 마음이 밀려왔다. 남하하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미군은 이 다리를 폭파시킨 후,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북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이 철교는 ‘호국의 다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만약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투에 졌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라졌을 거란 생각에 아찔함을 느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우리는 낙동강 옆에서 경북 재향군인회에서 주신 달콤한 수박을 맛있게 먹고, 낙동강 왜관지역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는 왜관지구전적기념관으로 갔다. 경상북도 칠곡군에 위치한 왜관지구전적기념관에서 묵념을 한 후, 낙동강 전투에 관한 전시물들을 보았다. 여러가지 무기와 군복들 그리고 유해발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 통일화속에 있던 발가락 뼈 유해발굴사진을 보며, 발이 잘려 극한의 고통을 느꼈을 전사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전사들의 유해사진을 볼수록 나는 그분들의 삶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허송세월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다. 내 인생이 나만의 삶이 아닌 과거 전사자들과 연결된 삶이자, 후손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삶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가진 나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우리는 오늘의 숙영지인 칠곡대대에 도착했다. 부대안에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6·25 참전용사의 유골을 발견하여 군부대 임시분향소에 안치해 놓았다고 하셨다. 그분들을 위해 애도의 묵념을 한 후, 분향소에 들어가 유해를 가까이서 보았다.
휴전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발굴되지 못하고 총탄이 몸속에 박힌 채 찬 바닥에 잠들어 계셨다고 생각하니, 후손으로써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못해 죄송한 마음 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수습되지 못한 유해가 13만에 달한다고 한다. 아직도 호국용사 유해가 대한민국 산야 어딘가에 묻혀있다.
하지만 현실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6·25의 흔적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들의 유골은 평범한 뼛조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든든한 버팀돌이었고, 버팀돌이라는 것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유해발굴에 최선을 다하여 부모형제의 품으로 돌려보내 충분한 보상과 대우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의료스탭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우리 팀 언니 발바닥을 보시고는 물집 안에 피가 고였다고 응급실로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 실장님과 언니를 따라 11시쯤 순천향대응급실 병원으로 갔다. 아픈 언니보다 내가 더 겁을 먹은 채로 응급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언니 발을 보시더니 다행히 감염은 되지 않았으니, 걷지만 않으면 된다고 행군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언니는 끝까지 완주할거라며 주장했지만, 의사선생님은 집에 돌아갈 것을 계속 권유하셨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일 아침이면 옆에서 항상 의지해 주었던 언니와 작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림자처럼 항상 같이 다녔던 언니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언니랑 이곳저곳에서 사진도 찍고 작별편지도 쓰고 아쉬운 마음에 새벽2시가 지나도록 잠들지 못했다.
<아홉째 날-7.3>
아홉째 날 아침! 기쁜 소식을 접했다. 다행이 단장님께서 언니에게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것 이다. 국토대장정을 통해 만난 사이지만 8일 만에 정이 너무 많이 들어버린 언니랑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뜻이 기뻤다.
오늘은 아침날씨가 흐려 가방을 추진했다. 오늘은 나한테 정말 행복한 아침이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으로 행군하는 길목에, 가파른 오르막길 때문에 기진맥진 해졌지만, 오히려 양손에 주먹을 불끈 쥐고 손을 앞뒤로 흔들며 씩씩하게 걸어가려 노력했다. 다부동 전투에 참여하여 산화하신 호국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부상자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건립한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도착하였다.
다부동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한 후부터 반격으로 전환할 때까지,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한 중요한 전투였다고 한다. 다부동 전투기념관을 관람하며 동족상잔의 참담함을 느꼈고, 그리고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 바랬다. 우리 조는 벤치에 앉아 , 밥이랑 반찬을 모두 섞어 국토대장정 특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밥을 먹으며 이상하게도 다부동 전투라는 단어가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근현대사 시간에 선생님께 배웠던 기억이 났다.
분명 몇 년 전에 배웠는데, 벌써 잊어버린 내가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가 깊은 전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다니... 이제부터라도 6·25의 역사에 더욱더 귀를 기우려 마음속 깊이 새기도록 노력해야겠다. 꿀맛 같은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제2작전사령부에 갔다. 군악대의 환영을 받으며 모자에 반짝이는 별을 단 군인들과 악수를 했다. 제2작전사령부에서 의장대의 공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대열을 정확하게 맞추면서 현란한 동작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연습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멋있는 퍼포먼스를 보며, 역시 어떠한 끈기와 노력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연을 보며 나도 끈기와 노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우리는 포 스타(4성)이신 사령관님으로부터 제2작전사령부를 상징한다는 동그란 코인을 수여받고 한명씩 사진 촬영도 했다. 이날은 제2작전사령부에서 칸막이도 쳐주시고 에어컨도 틀어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날이었다. 벌써 국토대장정의 아홉째 날이 끝나가고 있어, 아쉬움을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열째 날-7.4>
제 2작전사령부에서 아침을 먹고 영천지구전투 전승비로 행군을 시작했다. 영천지구 전투 전승비에 도착한 우리는 전승비 앞에서 참배를 한 후, 전승비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영천지구전투는 전쟁 초기 아군에게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켜, 전쟁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방어선이 회복할 수 있게 해준 구국(나라를 구한) 전쟁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천지구여성회분들이 우리를 위해 수박과 오이를 준비해 주셨다. 오늘도 우리 팀은 군대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맛다시 양념을 넣어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힘든 행군 후 먹은 비빔밥은 정말 최고였다.
우리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육군3사관학교로 힘차게 발걸음을 향했다. 힘이 빠질까봐 행군도중에는 “파이팅!”이라는 소리를 잘 안 질렀는데, 우리 팀장 오빠가 파이팅! 하고 큰소리치면 힘이 난다며 자꾸 해보라며 부추겼다. 그래서 “안보1팀 파이팅!”이렇게 큰소리로 외치니 신기하게도 정말 힘이 마구 쏟아졌다.
말의 위력이란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아름답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팀원인 교대생 오빠의 지휘아래 모두 다함께 동요도 부르며 걸으니, 힘들었던 행군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 새 우리는 육군3사관학교에 도착하였다. 저녁을 먹고 육군3사관학교 홍보 동영상을 보니, 사회각계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장교양성학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과 영천지구전투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 9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하며 배웠던 한국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오늘 저녁에는 팀원들에게 롤링페이퍼 쓰는 시간이 주어졌다.
팀원 한명 한명에게 정성스레 편지를 쓰며, ‘다양한 지역에서 온 우리 안보1팀 대원들을 언제 또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이순간이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가 만난 것도 특별한 인연이니,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잊지 말고 소중히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열한째 날-7.5>
오늘은 상쾌한 노래로 하루를 시작한날. 우리의 총책임자이신 단장님의 생신이셔서 3기 모두 큰 소리로 생일축하노래를 불렀다. 대원들 모두 단장님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우리의 노래에 단장님은 빙그레 미소로 답하셨다.
나는 마지막 행군이라는 시원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영천호국원으로 행군을 시작하였다. 작렬하는 뙤약볕 아래에서 행군하니 땀도 많이 나고 다리도 후들후들 거렸지만, 108명의 대원들과 단장님 부장단님 실장님 스탭들 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즐겁게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국립영천호국원에 도착하여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넋을 기렸다. 정상에서 바라본 국립묘지의 정경은 고요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묘비를 내려다보니,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돌아가신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정말 헛되지 않도록 우리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서 맛있는 피자와 점심을 먹고 또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태양은 이글이글 거리고... 물이 부족하여 입술을 바짝 바짝 마르고 목은 타들어가고 물집은 쓰리고... 마지막 행군이라 그런지 태양이 심술을 부리는 것 같았다. 야호! 저기 멀리 파란색 버스 3대가 옥산휴게소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로써 국토대장정의 행군의 막을 내려졌다. 아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파란색 버스를 타고 영화 ‘포화속으로의’ 배경이 된 포항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으로 향했다. 재향군인회 어머님분들이 달콤한 수박과 함께 마중을 나오셨다. 수박으로 목을 축인 후, 장렬이 싸우다 돌아가신 학도병들을 생각하며 엄숙하게 묵념을 하였다. 기념관 안에는 당시 학도의용군들이 사용했던 각종 무기류와 착용했던 교복, 신발을 비롯하여 일기장, 사진 자료 등 귀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기념관 안에는 ‘이곳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육군 제3사단 소속 학도의용군 71명이 포항여중에서 단독으로 전투에 참전하여 산화한 곳이며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어렸을 친구들이 펜과 책 대신 칼과 총을 선택했다는 말에 저절로 내 고개가 숙여졌다.
전쟁 속에서 두렵고 혼란스러워 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포항과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학생들의 굳은 의지력과 애국심을, 지금 세대의 학생이 꼭 물려 받아야할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기념관 위쪽에 있는 충혼탑에도 올라갔다. 충혼탑에 올라가는 수많은 계단들이 그때, 그 시절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며 만약 내가 타이머신을 타고 6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이 학생들이 했던 것처럼 의연하고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왠지 너무 무섭고 겁이 나 안절부절 하고 있을 내 모습이 자꾸 떠올려졌다. 충혼탑의 정상에 올라 포항 전경을 바라보는 순간, 어떤 광활하고 적막한 오묘한 느낌을 느꼈다. 충혼탑 맞은편의 포항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 곳에는 이우근학도병이 어머니에게 쓴, 그러나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중3인 그 어린 아이가 전쟁터에서 겪었을 두려움과 정신적 피해는 지금 우리 세대들의 풍요로운 삶과 대조되었다. 편지지를 바라다보며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게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 숙영지인 포항해병대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즐거운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캠프파이어도 하고 게임도 하며 모두들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각 팀별로 앞에 나와 장기자랑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삼매경에 빠졌다. 재미있게 놀다가 갑자기 문뜩 슬퍼졌다. 아마 내일이면 길고도 짧았던, 11박 12일의 국토대장정이 끝이 나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이라는 섭섭한 마음과 내일이면 수료증 받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마지막 날-7.6>
오늘은 12일 여정의 마지막 날!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고 아침식사로 군대리아를 먹었다. 왠지 이 군대햄버거가 내 삶에 마지막 군대리아가 될 것 같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포항을 떠나, 부산에 있는 UN기념공원으로 갔다. 버스 안에는 적막함만 흐르고 있었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피곤했던 탓인지 모두들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UN기념공원은 깨끗하고 깔끔하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알록달록 스테인드글라스가 붙혀진 추모관에 들어가, 6·25전쟁 참전유공자 할아버지께 실감나는 전쟁 상황을 들었다. 하늘에서는 총알이 마구 날아다니고 옆에서는 동료들이 죽어가고 피 흘리는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시체썩는 냄새로 악취가 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런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 속에, 물자조달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배가 무척 고픈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동료시체를 뒤져 건빵을 드셨다고 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한국전쟁 때 일어난 이야기를 해주시며 슬픔에 잠기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했다.
이렇게 직접 전쟁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이 생존해 계시는데, 6·25전쟁을 나와 동떨어진 머나먼 이야기 인줄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그분의 나이는 지금의 나와 비슷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니 투정과 어리광만 부리는 철없는 아이 같았다. 이제 나도 대한민국 대학생으로서 성숙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겪었던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미래의 나의 제자들에게 6·25전쟁에 대해 각인시켜주고 우리나라의 국력을 향상시키는데 이바지 하는,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했다.
참배지역으로 걸어가다, 안내자 선생님께서 여기는 호주병사 성을 딴 도은트 수로라고 하셨다. 도은트는 참전 용사 중 17세 최연소자로 도은트의 이름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나보다 어린나이에 멀리 호주에서 한국전쟁에 참가했다는 도은트는 무슨 사연을 가지고, 어떤 생각으로,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을까? 하고 궁금증이 일어났다. UN기념공원은 세계에 유일한 유엔군묘지라고 했다. 검은 대리석 위에는 유엔 전몰자 명단이 빼곡하게 알파벳순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돌아가신 유엔군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또 다시 놀랐다. UN기념공원의 조각과 조형물들은 하나하나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는 무명용사의 길이라는 곳이었다. 양쪽에는 11개 계단으로 구성된 수로 2개가 있고, 11개의 분수대가 수로 입구 양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또 소나무 11개가 양쪽으로 늠름하게 서있었는데, 이는 한국을 포함한 한국전쟁에 참전한 22개국을 의미한다고 한다. 숨은 그림찾기를 하듯, 공원 조형물 하나하나에는 의미가 있었다.
나중에 다시 가족과 함께 꼭 와 그 숨은 의미들을 하나하나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해군작전사령부에 있는 대조영함을 보러 갔다. 으리으리한 대조영함은 우리나라가 자체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4500톤 급 다목적 구축함으로 기관포, 유도탄, 레이더 등 근접방어무기체계를 갖춘 군함이라고 하셨다. 또한 헬리콥터 2대도 탑재가 가능하다고 했다. 평소에는 이런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거대한 대조영함 내부를 내 두 눈으로 보고 직접 탑승 할 기회가 있어 정말 영광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점심을 먹은 후, 해단식을 하기위해 해작사 강당으로 이동했다. 몇 번의 리허설 후, 해단식을 시작했다. 옆에서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회장님들이 우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하셨다. 해단식이 진행되자 국토대장정 12일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기분이 미묘했다. 단상에 올라가 회장님과 악수를 하고 11박12일 동안 6·25국토대장정 완주를 증명하는 수료증을 받았다. 단장님과 악수를 하고 걸어 나오며, 내가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팔, 다리, 얼굴이 까무잡잡해졌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을 이루어 냈다는 강한 자부심과 성취감에 휩싸여 자꾸 얼굴에 싱글벙글 미소가 번졌다.
내두발로 직접 걸은 거리 287km! 발목이 퉁퉁 붓고 발가락은 물집으로 쓰라려 낙오하려 했던 순간이 몇 번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60년 전 전쟁으로 겪은 선조들의 상처와 울음소리를 생각하니, 지금 내가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꿋꿋이 견디어 냈다. 결국 끈기 있게 부단히 노력 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음을, 나는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모자를 던지며 우리의 대장정은 막이 내렸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20대이기에, 이것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했을 이 긴 행군을 12일 동안 동고동락하며,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던 소중한 12명의 가족이 생긴 것 같아 행복했다. 안보 1팀 12명과 오늘부로 헤어지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늘을 시작으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나중에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대한민국 파이팅! 제3기 국토대장정 답사단 화이팅!(konas)
이정화(경남대학교)
6.25전쟁 60주년 기념국토대장정 장장12동안 287km! 완주하면서 무더위 속에서 발이붙고 물집생기고 얼마나 쉬고 싶었을까 우리젊은이들이 전적지순례하면서 새로운 안보관을 가질수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긴시간동안 고생많이했습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m >payday loans</a></div>
2010-08-24 오전 9:3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