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안중근 의사 사형 후 기생파티
재판관계자에 250원∼10원 보상금 지급..보훈처 발굴, 안 의사 유해 매장지 여전히 미궁
일제는 1910년 3월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직후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형을 가할 것을 미리 결정하고 나서 재판을 통해 드디어 사형언도를 내렸는데, 관동도독부는 이 안중근 사건에 공로가 있는 마나베(眞鍋) 재판장 150원, 미조부치 검찰관 250원(圓), 소노키(園木) 통역 200원, 기시다(岸田) 서기 80원, 와타나베(渡邊) 서기, 武內 서기 80원(이상 법원)을 비롯해 구리하라(栗原) 전옥 150원, 나카무라(中村) 간수부장 80원, 아오키(靑木) 간수부장 50원, 다나카(田中) 간수 이하 6명 10원~45원(이상 감옥) 과 경찰 관계자 등‘재판관계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사형이 집행되고 유해를 비밀리에 처리한 뒤에는 법원장 집에서 재판 관계자에게 축하와 위로 연회를 열었던 사실도 확인되었다. 안중근 의사를 교수형(絞首刑)에 처하고 매장을 끝낸 데 대해 재판에 관계했던 일본인 관리들은 마치 국경절을 맞은 듯 기뻐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1주년을 앞둔 25일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안 의사 유해발굴 추진상황 보고에서 사료를 통해 밝혀졌다.
보훈처가 발굴한 사료는 안 의사 순국 3일 후 발행된 1910년 3월29일자 '만주일일신문'과 '만주신보' 등이다.
이 신문 기사에 따르면“3월 26일 안중근의 매장이 끝났다는 보고가 있은 지 얼마 후 5시에 안중근 재판의 최고책임자인 뤼순고등법원장 히라이시 요시토의 관사에서 안중근 사건 관계자 위로만찬회라는 이름으로 축하연을 개최했다"며 이 축하연에 모임 사람이 내빈으로 관동도독부 사토 경시총장을 비롯한 5명과 언론인 6명, 그리고 주최측을 포함해 20명이 참석했다고 밝히고 있다.
기사는 이어 "오후 5시에 집합하여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응접실에서 바둑을 두다가 6시가 넘어 악기 연주를 듣고 갈채를 보내었다"며 이어 "주최자 히라이시 법원장의 인사말과 내빈을 대표한 사또 경시총장의 답사가 있은 뒤 '파성'과 '미광'의 두 고급 요정에서 불러 온 미인들이 술잔치를 벌이고, 끝에는 각자 득의의 숨은 재주를 뽐내는 등 매우 성황에 이르렀고 10시가 넘어 산회(散會)하였다"고 적고 있다.
한편 보훈처는 "사형수의 유해 문제에 있어서는 유족이 요청하면 돌려주는 것이 당시 법에 비추어 당연하고도 적법한 절차였음에도,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는 그 유해를 유족에게 교부하기를 거부하고 그들 마음대로 처리한 후 만찬 축하연까지 가졌다는 이러한 사실로 추측하건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당일은 정해진 장소에 묻혔다 하더라도 그 후 어떠한 조작이 가해졌는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고 밝혔다.
이어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사형집행과 매장 후 저녁 상황에 관한 이 보도 기사는, 그 직전의 안 의사의 유해 매장에 관한 진실을 알려 줄 기록물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더욱 굳게 한다"고 했다.
또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중국·러시아에 안 의사의 유해발굴 협조와 유해매장 처리 관련 자료의 적극 조사 요청과 관련해 "관련 자료를 찾았으나 기 공개된 자료 외에 추가적인 자료를 찾지 못했고, 계속 조사를 해 나가겠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일본측의 답변은 종전에 비해 다소 진전된 것이긴 하지만, 그 결과가 없는 만큼 앞으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로 진정성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훈처는 지난 4월28일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추진단'을 발족해 미·일·중·러시아에서 안 의사 관련 사료를 발굴해 유해매장 지역을 찾고 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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