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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도발과 금문도 평화

Written by. 유영옥   입력 : 2010-12-09 오전 8: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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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29일부터 12월 3일까지 필자를 포함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안보국제위원회 전문가 4명이 대만의 대북시와 금문도를 방문해 양국의 통일과 안보관련 세미나 및 관계자들과의 면담를 가졌다. 대만의 금문도는 우리나라의 연평도와 비슷한 지리적 여건과 역사를 지닌 섬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양안관계 및 남북관계 비교’를 주제로 한 세미나와 금문도의 평화 정착은 최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우리에게 대북관계와 관련, 새로운 시각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해 줬다.

과거 대만의 금문도는 우리나라의 연평도보다 더욱 긴장감이 감돌던 지역이다. 1958년 6~7월에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육·해·공군 합동훈련 실시에 대항해 대만이 전군에 전쟁 상태를 선포했고, 8월 중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돼 8월 23일 금문도에 2시간 동안 무려 4만2000발의 포탄이 떨어져 3만6000명이 사망한 불행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금문도가 요새화된 탓에 손에 넣지 못해 지속적인 대치국면을 이어갔고, 대만 편에 있던 미국은 핵폭탄 투하를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극비문서가 존재할 정도로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다.

금문도의 이러한 불안정 상황은 1979년까지 지속되다가 현재에 이르러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금문도는 중국과의 민간교류 활성화를 통해 과거의 무기들이 모두 제거되고 완전히 평화가 정착된 상태다.

그렇다면 무엇이 양안관계를 이렇게 급진전하도록 만들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를 포함한 독일, 예멘과 같은 나라들이 하나의 나라라는 관념을 갖고 통일을 지향하는 두 개의 분단국가인 것에 비해,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중국은 대만 문제에 관해 무력적으로 분리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나 1979년 이후 중국은 방법을 바꿔 평화적 해법도 더해 양안문제를 풀어가고자 하는 전환을 시도했고, 그것이 오늘날 결실을 보게 됐다. 반면 대만은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립을 주장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오다가 2008년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됐다.

현재 양안관계는 경제적·문화적 교류의 확대로 점차 통일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변화해 가고 있다. 이미 엄청나게 벌어진 국력의 차이로 인해 대만이 중심이 된 흡수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불무, 불통, 불독’이라는 3불 정책을 지지한다. 즉 무력행사는 반대하고, 통일도 독립도 하지 않는 현재 상태 유지를 바란다는 것이다.

대만의 3불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그 바탕 위에 이뤄진 경제적·문화적 교류와 같은 중국과 대만 간의 실용적 관계 정립은 결국 대만의 금문도 요새화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 양안관계의 교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http://kookbang.dema.mil.kr/

유영옥(경기대학교 국제대학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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