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강탈을 시작한 서울 곽노현 교육감
금전비리보다 더 저질의 보복비리로 사학을 강탈하려는 서울 교육감..표적감사 2달 해도 비리자료가 없자 다시 1개월 표적감사
동아일보 기사(2010.12.17)에 “비리 고발해 해직된 양천고 교사가 교육의원 돼 재단 비리 척결” “양천고 소속 교사였던 김형태 씨가 급식 운영 파행, 허위 동창회비 징수 등 비리를 고발한 2008년부터 감사를 받고 수사까지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은 김 씨가 서울시교육의원으로 당선된 뒤 양천고에 대한 특별감사를 시작했다”고 보도 했다.
양천고등학교 이사장 정금순은 나이 80 이 다된 고령의 독거노인이다. 6.25 때 17세에 단신 월남해서 식모살이에서 길거리 행상, 빵집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를 먹은 때도 많았다. 눈물 젖은 밥을 먹으며 외톨이 인생을 일로 시름을 잊고 버텨 냈다. 외롭고 고통스런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만 했다. 남들이 가는 휴가 한번 가본 일이 없이 오직 1년 12달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22살에 서울에 올라와 49살까지 끼니도 잊고 살면서 억척스럽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건물과 집 그리고 땅을 사서 저축을 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나의 뼈저린 삶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남들보다 10배 더 피땀으로 노력한 결과 많은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저축이 늘어나자 그 돈을 어디에 쓸까 궁리 끝에 내가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육영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양천고등학교를 창립했다. 이상은 정금순 이사장의 호소문의 일부 내용이다.
김형태 양천고 전교조분회장은 이사장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임시이사를 파견하게 만들 목적으로 이사장을 협박하면서 언론과 교육청에 계속 “아니면 말고”식 투서 고발을 일삼아 학교에 엄청난 피해를 주어 파면되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2010년12월16일 양천고등학교가 비리의 온상이라며 이사 8명을 행임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한다고 발표 했다. 양천고등학교에서 문제교사로 파면된 김형태 교사가 서울시 교육위원에 당선되면서 같은 코드인 서울시교육감을 동원해 양천고등학교를 표적감사를 했다.
2007년 김형태가 양천고 전교조 분회장이 되면서 전교조의 힘과 각종언론매체 노조의 인맥을 이용해 인터넷과 신문 방송에 양천고가 부정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보도하가 계속되었다. 김형태의 “아니면 말고식” 제보를 학교에 확인 없이 언론이 보도하자 서울시 교육청의 감사가 이어졌다. 감사결과 사실무근이 드러나면 또 다른 비리를 언론에 제보하여 학교에 교육청 감사가 계속되었다. 서울교육청은 전교조지부에서 내려 보낸 전교조교사 입회하에 2개월 동안 감사를 했다. 심지어 영장 없이 이사장실을 봉인여 출입을 금하고 금고까지 뒤졌으나 큰문제가 없고 2가지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검찰에 고발하여 지금 재판 중에 있다.
그런데 2010년 곽노현 교육감이 부임하면서 1개월이 넘는 표적감사를 하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사항까지 모드 사실로 인정하여 관선이사를 파견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5년 전에 완공한 건물의 천정까지 뜯어내어 비리를 캐내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임시이사를 파견할 증거자료가 나올 때까지 감사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계속 감사가 이어지자 학부모들이 학생들 교육을 방해하는 감사 거두라고 감사관들에게 항의하여 끝이 났다. 현재 2건의 재판중인 것을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는데도 김형태 교육위원을 파면한 학교에 대한 보복으로 학교에 관선이사를 파견하겠다는 것이다. 좌익정권시절 전교조 사학 강탈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파면된 김형태교사가 1년간 교문앞 1인시위를 해도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이사회를 믿고 교육을 열심히 하여 양천구에서는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학교선택제가 시작되면서 우수학생들이 몰려드는 모범적인 사학이다. 교육청이 잘하는 학교에 격려는 고사하고 비리 학교로 매도하면서 파면당한 전교조분회장 한풀이나 해주려 하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원치 않는 관선이사를 파견해 학교를 전교조에게 장악시키려 하는 서울교육감의 직권남용이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김형태 교육위원은 누구인가
양천고등학교 전교조 분회장을 지낸 김형태 현 교육위원은 양천고등학교 재지직시에 아이들을 광우병촛불시위에 참여하도록 선동했다. 김형태 교육위원은 점심시간에 담임도 모르게 학생들에게 촛불시위를 독려하는 유인물을 돌렸다. 한 번 읽어보라고 교탁에 놓고 간 유인물의 제목은 “이명박 out”이라고 되어 있었고 내용은 “경쟁 없는 교육 실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대운하 강행 반대” “물, 전기, 가스 민영화 반대”라고 되어 있다. 학생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할 내용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켜 촛불시위에 내몰아 이명박 정부 타도를 외치게 만들었다. 또 김형태는 아이들에게 “잠좀 자자” , “철회 공교육포기선언”, “시험은 이제 그만”,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등 4종류의 빼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달고 다니도록 했다. 또 자기가 만든 시집을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문예반 학생들에게 학교장 허락도 없이 5000원에 판매를 했다.
학교장 허가도 없이 장학기금 모금을 하는가하면 교감이 작성 해 놓은 비공개 서류인 교사 근무평정자료를 교감 컴퓨터에서 빼내 복사에서 직원회의 시간에 교사들에게 돌리려다 적발 되었다. 그 일로 교감과 싸움이 벌어져 고소사건으로 번지자 교감이 사표를 냈다. 또 급식시간 학생 지도를 거부 했고 학생들 시험감독을 소홀하게 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이 항의를 받기도 했다.
김형태는 이사장이 학교 돈을 횡령했다는 허위서류를 작성해 돌리는가하면 이사장 무덤에는 침도 뱉지 않는 다는 막말을 했다. 모든 고등학교가 다 실시하고 있는 0교시 자율학습을 교육청에 고발하여 중지시키는가하면 전교조 지회장을 대동 하고 와서 학교장에게 학생들 긴 머리 단속을 즉시 중지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계속 양천고등학교를 비리집단으로 교육청에 고발하고 언론에 보도하여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 학교를 비리집단으로 언론에 수십차례 허위사실을 제공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면학분위기를 흔들어놓았다.
학생과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파면 결정을 내렸다. 징계위원회에서 김형태는 징계 위원들에게 내가 지금 민주 투사인데 나를 파면시키면 민주열사가 된다며 징계위원장은 전교조 고발 1호라면서 협박을 했다.
교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했으나 재심위원회에서도 해임처분이 내려지자 양천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1년 가까이 1인시위를 하여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를 흔들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동조해주기를 구했다. 그러나 학교에 너무 많은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외면을 했다.
학교에서 문제교사로 파면된 김형태는 학교사정을 잘 모르는 양천구 지역구민들에게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의 투명한 운영을 위해 교육자의 양심으로 보복성징계를 당했습니다”라는 거짓말 홍보자료를 만들어 지역구민을 속였고 각종 언론매체에 보도되었던 자료들을 이용하여 비리사학과 싸운 정의투사로 왜곡하여 주민들을 속여 교육위원에 당선되었다.
학교에서 파면당할 정도면 교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학교가 아무리 보복을 하고 싶어도 잘하는 교사를 파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김형태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보복감사와 보복임시이사 파견하는 서울 교육감은 보복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금전비리보다 더 질이 나쁜 비리가 보복비리다. 보복비리는 부메랑이 되어 교육감에 돌아갈 것이다.
서울교육청 감사관실의 보도자료에 대한 해명
첫째, 언론보도에서 양천고의 비리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계속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김형태가 “아니면 말고” 식 허위사실을 전교조 지부에 제공하면 전교조 지부에서는 전교조의 힘과 노조의 인맥을 이용해 방송 신문 인터넷 언론에 학교의 확인 없이 발표했다. 언론에 발표 된 내용이 감사와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 허위로 판명되어 김형태가 징계를 받은 것이다.
둘째, 이사들이 서로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이사회를 허위 운영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8명의 이사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한 것이 이사회 부실 운영이고 일 년에 3-4회 열리는 이사회에서 언제 무슨 안건을 토의했는지 기억하지 못한 것이 허위운영이라는 감사관실의 궤변은 임시이사를 파견하기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서울시 교육청은 2개월 동안 전교조 입회하에 감사한 사실에 대하여
전교조가 서울교육청 상급관청도 아닌데 전교조 입회시켜 놓고 감사한 것은 위법행위다. 학교의 비리를 전교조에 고발하기 위해 감사한 서울교육청은 전교조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3-4개월 감사하여 검찰에 고발한 내용이 대부분 무죄로 기각되었다.
시설공사 업체에서 5184만 원의 금품을 받고 법인이 내야 할 세금, 시설공사비, 변호사 선임료 등 1억3684만 원을 학교회계에서 사용한 것 등에 대하여는 회계 착오로 일어난 사항에 대하여는 변제를 했으며 금품수수에 대하여는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형태가 2003년에 퇴임한 강모교사 퇴직금을 동창회 기금에서 주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교육청감사에서 무고 임이 들어났고 동창회비는 모든 학교에서 다 거두어 동창회에서 이용하는 데 이것이 임시이사 파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다섯째, 학교 급식실을 위탁 운영하는 것으로 가장해 8억8000만 원에 가까운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내용에 대하여
이사장이 학교급식을 운영한 기간 동안 학생들에게서 받는 1인당 1일 급식비 2400원에서 8억원을 회령하려면 600원자리 밥을 먹이고 1800원씩 횡령해어야야 8억이 된다. 급식은 학생 학부모와 직접관련이 있기 때문에 급식의 질이 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양천고에서는 급식문제가 전혀 없었고 90% 이상의 학생들이 학교급식을 받았다. 교육청이 검찰에 고발해서 수사 중인데 8억을 횡령했다고 이사장을 매도하는 것은 감사권 남용이다.
여섯째, 이사장실 봉인 감사에 대하여
이사장이 비리의 몸통이라는 주장에 서울교육청 감사팀이 이사장 실을 봉인하고 전교조 입회하에 금고까지 감사한 것은 직권 남용이다. 감사결과 아무런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직권남용에 대한 사죄가 없었다.
일곱째, 시설공사 관련해 방수공사 3400만 원, 천정공사 약 300만 원을 이유없이 과다지출하였으며, 영어교실 인테리어공사와 행정실 및 교장실 보수공사에도 약 9400만 원의 과다지출 의혹에 대하여
이사장은 모든 시설을 최고급으로 건축하여 아이들 공부하는 데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공사를 했기 때문에 일반 공사에 비해 더 많은 시설비를 투자 했다. 누구나 양천고에 와보면 시설비거 많이 들어간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여덟째, 한 가지 잘못으로 2번 처벌을 하는 것은 법의 원리에 어긋난다.
전 교육감 때 문제되어 이미 다 법적조치를 받은 사안들을 다시 거론하며 임시이사파견을 하겠다는 것은 같은 죄로 두 번 벌을 받으라는 것이다. 법의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된다.
결론 : 학생 학부모 교사가 혼연일체가 되어 명문사학으로 지역사회의 신망이 두터워 학교 선택제에서 우수학생들이 몰려들 정도로 선망의 대상인 학교다. 그런데 전교조 분회장 김형태를 파면했다는 이유로 표적감사와 보복위한 임시이사 파견을 하려하고 있다.
표적감사 결과 임시이사 파견할 만한 비리가 발견되지 않자 과거에 사무착오로 잘못 집행되어 변제했거나 법원에서 무죄판결 받은 내용과 공사비 과다 지출해서 횡령 했을 거라는 추측과 검찰에서 조사하는 내용을 판결이 난 것처럼 오도하여 비리사학으로 매도 한 것은 금전비리보다 더 나쁜 보복비리로 사학을 강탈하려는 것이다.
아래는 양천고등학교 정금순 이사장의 호소문임. (konas)
이계성(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공동 대표/자유대한 지키기 운동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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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순 이사장의 호소문
출생과 성장
양천고 이사장 정금순은 1933년 3월 16일 함경남도 흥남시 작도리 20번지에서 가난한 빈농의 8남매중 6째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생활했습니다. 저는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워 부모님께 학교에 보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여자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일이나 잘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본인이 늘 배가고파하자 배나 골치 말라고 제가 11살 때 부자 집에 보내어 일을 거들게 했습니다. 13살 때 해방이 되면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 6.25가 일어날 때까지 부모님 밑에서 일을 배우며 가난 속에 살았습니다.
남의집살이를 하면서도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저녁에는 야학에 다니며 글을 깨우쳤습니다. 저녁에 부모님 몰래 학교 다니는 오빠들 책을 가지고 야학에 가다 부모님께 발견되어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늘 여자는 글은 배우지 않아도 되니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일이나 잘 배우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야학에 다닐 때 선생님이 총명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서 호롱불 밑에서 공부를 하려면 부모님은 호롱불 기름이 아까워 공부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가난한 집 자녀들에 공부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 학교를 설립한 것입니다.
6.25 후에 고난의 생활
제가 17세 때 1950년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1951년 흥남에 진주했던 미군과 국군들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시작 했습니다. 그 때 제 친구는 중국으로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중국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웃 집 아주머니가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그 아주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내려왔습니다. 아주머니를 따라 집을 나설 때 어머니가 소판 돈 500원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500원은 큰돈이었는데 한국에 오니 이북 돈이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북에서 넘어 올 때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파도가 휘몰아치는 동해바다에 작은 똑딱선 타고 풍랑과 싸우며 사투 끝에 구사일생으로 묵호항에 도착했습니다. 묵호항에 도착해 살길이 막막해 밥을 얻어먹기 위해 무슨 일든 마다않고 하면서 2년을 버텼습니다. 18세에 월남에서 20세까지 묵호에서 살다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에 내려가 생활하다가 21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서의 아픔과 고통의 생활
1954년의 서울은 6.25로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습니다. 식모살이에서 길거리 행상 빵집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하루 세끼 중 한 끼를 먹은 때도 많았고 두 끼만 먹은 때도 많았습니다. 눈물 젖은 밥을 먹으며 외톨이 인생을 일로 시름을 잊고 버텨 냈습니다. 외롭고 고통스런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일만 했습니다. 남들이 가는 휴가 한번 가본 일이 없이 오직 1년 12달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22살에 서울에 올라와 49살까지 끼니도 잊고 살면서 억척스럽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건물과 집 그리고 땅을 사서 저축을 해 갔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저의 뼈저린 삶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남들보다 10배 더 피땀으로 노력한 결과 많은 저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축이 늘어나자 그 돈을 어디에 쓸까 궁리 끝에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육영사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명신고등학교 창립
저는 가난이 한이 되어 농사지으려고 현 양천고등학교 전신 명신전수학교 주위에 논과 밭을 구입 했습니다. 진술인이 못 배운 것이 평생 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이 조금 저축이 되자 가난한 학생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학교를 하나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제가 사놓은 농토 주위에 명신전수학교가 있어 1982년에 이 학교를 인수했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모은 건물 집 토지를 모두 팔고 통장에 돈 3억 5000만원을 털어 학교 건물을 지었습니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에 공사현장에서 손수 지휘감독하면서 1984년 20개 교실을 증축하여 특수지 명신고등학교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86년에는 다시 20개 교실을 증축하였습니다. 장화를 신지 않고는 학교를 다닐 수 없던 그런 학교 주위를 아름답게 공원으로 조성하여 공원 같은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학교를 설립한 후 성적이 부진하여 진학을 못한 학생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명신고등학교에 주로 진학해 왔습니다. 선생님들과 열과 성의를 다하여 지도한 결과 많은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1982년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1992년까지 3932명의 훌륭한 인재를 길러 냈습니다.
돈을 버는데 쏟은 열정을 학교를 짓고 공원 같은 학교를 만드는데 쏟았습니다. 새벽부터 밤 깊은 줄 모르고 나무심고 꽃도 심고며 손이 닳도록 학교를 아름답게 꾸며갔습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저의 혼을 담아 가꾸었습니다. 아이들을 잘 길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보수 없는 학교 머슴살이를 30년째 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학교를 공원화 하였고 우수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양천고등학교 설립
특수지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성적이 부진하고 가난한 집 자녀들을 훌륭한 인재로 길러낸 공로가 인정되어 1992년 교육청으로부터 정식 인문학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을 교육청에서 배정을 하면서 학교 명칭도 양천고등학교로 개명을 했습니다.
양천고등학교는 저의 인생이며 자식이며 가정입니다. 저는 단신월남해서 먹고 살기위해 뛰어다니다보니 가정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배운 것이 없다보니 몸으로 뛰면서 오직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했습니다. 돈을 모은 뒤에는 제가 못 배운 한을 풀기위해 가난하고 못 배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자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학교를 설립한 후에 학교는 저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오직 좋은 학교 만들기에 내 인생을 걸었습니다. 풀 한포기 나무한그루에도 진술인의 사랑과 정성을 담아 교정을 가꾸는데 저의 마지막 남은여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손발이 다 닳도록 노력하여 교정에 내 혼을 담아 아름다운 교정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사랑과 정성과 땀과 눈물로 양천고등학교를 아이들의 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양천동산에서 꿈과 희망을 키운 인재들이 나라의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양천동산의 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서울에서도 가장 착하고 공부 잘하고 문제 학생이 없는 학교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저의 꿈과 소망이 청소년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이 없습니다. 양천고 학생과 선생님들이 가족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저를 쫓아내려는 전교조 교사들
저에게 양천고등학교는 인생의 전부이고 삶 그자체입니다. 저의 꿈은 양천고등학교를 세계 최고의 명문사학을 만들어 훌륭한 인재들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교조가 등장하면서 제 꿈을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자식도 없는 힘없는 독거노인이란 걸 알고 전교조분회장(김형태)이 사사건건 저을 모함하여 쫓아내려 하였습니다. 나무한그루 꽃 한포기 심어도 제가 돈을 떼먹기 위해 한다고 인터넷에 글을 띄우는가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정부패가 심한 학교라고 저를 매도했습니다. 심지어는 저에게 이사장 죽으면 묘에 침도 안 뱉겠다는 측근교사가 있다며 힐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교조분회장(김형태)은 제가 도둑질 해먹기 위해 수위실도 짓고 정원도 가꾼 다고 매도했습니다. 학교의 모든 시설은 제가 돈 떼먹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학생들을 선동했습니다.
전교조분회장(김현태)은 진술인의 부정부패가 도를 넘었다는 거짓말을 인터넷과 언론에 흘리면서 교육청에 수차례 감사를 요구해서 2008년에만 3차례 감사를 받았고 2009년에는 2개월 감사를 받았으며 2010년에도 1개월이 넘는 감사를 받았습니다. 가족이 없는 제가 누구를 줄려고 부정을 저지르겠습니까. 제 재산은 거의대부분 학교에 기부되었고 나머지 돈 모두 털어 7억7000천 만 원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가난한 학생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부정축재자로 몰아 쫓아내고 임시이사를 파견한다는 것은 저를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들 해외 연수며 학생들 장학금 우수교사 포상 등 제 재산을 학생과 교사들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교조분회장은 저를 도둑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전교조분회장은 행정실 서류를 빼내서 부정부패 공개한다고 저를 협박하고, 학생들에게 저를 도둑으로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전교조 분회장(김형태)이 비공개서류인 교원근무평가 자료를 빼내 직원회에 돌리고 교감과 싸움을 해서 교감이 사표를 내고 교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또 광우병촛불시위 때 아이들에게 이명박 out”이라고 되어 있는 유인물을 학생들에게 돌리고 “잠좀 자자” , “철회 공교육포기선언”, “시험은 이제 그만”,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등 4종류의 빼지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달고 다니도록 지도하였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자기 시집을 강매하기도 했습니다. 도저히 교사로서 자질이 부족하여 징계를 하려고 하자 저에게 협상을 제의 했습니다. 징계를 철회 해주면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협상을 거부하자 교원노조 서울시지부를 통해 진술인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정금순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습니다. 나이 들고 자녀가 없으니 전교조가 학교를 강탈하겠다고 온갖 중상모략을 하고 있습니다. 단신 월남하여 피땀으로 이룬 재산을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내가 가난하여 못 배운 한을 가난한 청소년 교육 통해 보상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전교조가 한과 고통과 눈물어린 제 삶의 전부인 학교에서 저를 도둑으로 몰아 쫓아내려 합니다.
저는 가정도 자식도 없고 오직 양천고등학교가 제 자식이고 가정이고 삶 그 자체 입니다. 그런데 제가 무엇 때문에 비리를 저지르겠습니까? 제가 못 배운 탓에 교비를 전용해서 다른 경비로 쓴 것이지 제가 착복한 일은 없습니다. 교육청감사 결과 전용경비는 모두 원상복구 시켰거나 변제 했습니다. 제가 80이 다 되었으니 남은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모든 재산은 양천고등학교에 환원시키고 죽은 뒤에는 학교는 사회에 환원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저의 부덕한 소치로 교육청에 누를 낀 것 사죄드리며 잘못으로 지적된 사항들은 곧바로 시정조치하고 앞으로는 투명한 학교운영을 하겠습니다.
학부모 학생 교사가 원치 않는 임시이사를 파견하여 학교를 혼란으로 몰고 가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형태 말대로 학교가 부정비리의 온상이었다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지역사회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자식도 형제도 없는 독거노인 저를 교육감이 보호해 주지 않으면 보호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교육감님의 냉철하신 판단으로 제가 더 이상 범죄자로 취급 받지 않고 얼마 남지 않은 남은여생 양천고 교육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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