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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현장을 보존해 평화마을로 지정해 국민안보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Written by. 박종명   입력 : 2010-12-21 오전 8: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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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 비행기들이 진주만에 있는 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한다. 미군 비행기 188대가 격추당하고, 함선 12대가 침몰, 2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패배이자 치욕이었다. 이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외쳤다. “진주만을 잊지 말자.” 그리고 즉각 제2차 세계대전 참여를 선포하고 일본을 패망시킨다.

전쟁이 끝난 지 65년이 지난 지금도 “진주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진주만에는 당시의 참상을 담은 박물관이 서 있다. 일본의 폭격으로 바닷속에 가라앉은 아리조나 호는 해상추모관이 되어 그날의 진주만을 후세들에게 알려준다.

이스라엘의 사관생도들은 항상 마사다 요새에서 임관식을 갖는다. 적의 침략에 대항해 싸우다 최후의 일인까지 자결하면서 결코 적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안보의 성지다. 다수의 이스라엘 국민들은 통곡의 벽을 찾는다. 거기에서 손톱으로 통곡의 벽을 긁으며 통곡한다. 로마에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국민이 참혹하게 죽어 갔던 그 역사를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아니,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함이다.

1970년대 일본 동경대학의 야스다 강당이 좌파 학생들의 시위로 불에 타 버렸다. 학교 측은 이 강당을 20여 년 동안 불탄 채로 보존했다. 후세들에게 역사의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1996년 연세대학교의 강당이 한총련의 시위로 불에 탄 적이 있다. 동의대 중앙도서관에서도 7명의 경찰이 불에 타 죽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그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은 오직 과거의 한 부분일 뿐, 오늘을 살며 그 일을 기억하고 현실에 반추해 보는 국민들이 몇 명이나 될까?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필자는 이런 제안을 했다. 무너진 성수대교를 그대로 보존하자. 그리하여 전국 유수의 건설사들이 여기에 와서 기공식을 갖게 하자. 제2의 성수대교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자.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지금은 복구돼 수많은 차들이 오고 간다. 그날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수대교 부근에 세워진 위령비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조차 않는다.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굴욕의 예를 치른 삼전도비는 발길조차 뜸하다. 북한의 남침야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서울 근교의 제3땅굴은 입장료를 내고 통제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이런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냉혹한 교훈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현장을 보존해 국민안보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은 참으로 잘된 일이다. 또 민간인 거주지역을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평화마을로 지정해 북한이 또다시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기회에 연평도 피격시설은 가능한 한 통일 이후까지 보존해야 한다. 후손들에게 북한의 만행을 똑똑히 보여 주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통일 대한민국이 있었음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한다. 다만 통행증·입장료 등 다양한 불편거리로 인해 보고 싶고, 가고 싶은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konas) 

박종명(재향군인회 안보부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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