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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잃어버린 세 번의 골든 찬스들

Written by. 이주천   입력 : 2010-12-29 오전 11: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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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8년 촛불폭력시위에서 일이 커지기 전에 초기에 시위주동자들을 검거하지 못하여 화를 키운 것이다. 결국 100일동안의 폭력시위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칩거하였다. 청와대 앞산에 올라 시청앞 공장을 빨갛게 물들인 촛불시위대를 바라보면서 양희은의 인기곡, “아침이슬”까지 불렀다고 전한다. 4월에 들어오면서 북한은 매체를 총동원하여 미국산 쇠고기=광우병 선전선동을 열심히 했다. 촛불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불법폭력시위로 확산된 배경에는 종복세력의 선전선동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흥분한 시민들이 가세했고, 유모차까지 동원되어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를 공격했다. 수십여명의 죄없는 경찰과 의경들이 모욕을 당하고 쇠파이프에 맞으면서 동네북이 된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은 진압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하기까지했다. 만약 서울과 경기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면 민간인과 경찰들의 사상자를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촛불시위가 마감되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가락시장의 경찰병원을 방문하여 부상당한 전경을 위로한 것이 그가 할 수 있었던 대책의 전부였다. 이렇게 해서 촛불시위를 주동했던 종북좌파의 소탕작전에 실해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에서는 중도실용주의의 변함없는 재천명이 있었다.

2.
2010년 3월 26일, 칠흑같이 어두운 서해안에서 천안함이 북한 어뢰의 매복 공격을 받아 불과 10분도 되지 않고 침몰하였다. 선전포고 없는 도발이었다. 그 과정에서 46명의 젊은 해군장병이 전사하였고,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사고초기부터 국방부에서는 천안함 사고가 북한소행이라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을 때조차도, 청와대는 제재조치를 전혀 발동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작년 가을부터 남북정상회담 증후군이란 몹쓸 병에 걸려 우유부단하게 주저하다가 화를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4월초에 당황한 청와대의 초등 대응책이 늦어졌다.

김태영 국방장관이 참석한 천안함 사고를 밝히는 국회청문회에서조차 “함부로 (북한의소행임을) 예단하지 말라”는 쪽지가 청와대 참모를 통해 전달되었다. 5월에 해외의 전문가들까지 불러들여서 북한소행을 밝혀내는데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그리고 잔해인양과정에서 사상자가 발행했다. 많은 국민들은 종북좌파의 선동에 넘어갔다. “설마 김정일이 그렇게 잔인한 만행을 했을 리가 있나?”천안함 사고가 북한의 소행이 밝혀지면서,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보복응징을 다짐했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담화에서 이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우리 영토에 무력 침범시 즉각 자위권 발동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천안함 사태로 우리의 중도실용주의 기조가 흔들리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분단된 국가상황에서 국가 정체성을 더욱 확립할 필요가 있다.“ 5월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중도실용주의로 국가안보를 지키겠다는 약속은 곧 공수표로 드러나게 된다. 그 뒤 가을에 한국정부는 유엔까지 가서 북한소행을 밝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처지를 알렸다. 그런데 그리고 난 뒤에 유엔에서 도발규탄 발표가 마지막으로 갑자기 “상황 끝”이 되었다. 중국의 방해로 북한이란 명칭도 넣지 못하였다. 이렇게 대통령의 5.24 보복응징 약속은 空念佛이 된 것이다.   이런 조짐은 여름에 있었다. 한여름철 갑자기 방송에서 북한에 홍수가 났다고 연달아 보도가 있었고, 이에 호응하여 성직자들이 북한돕기의 필요성에 대한 기자회견이 줄줄이 이어졌고, 다시 방송언론이 그 기자회견 내용을 대서특필하면서 북한에 홍수가 났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에 한나라당의 안상수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서 첫 일성이 “북한에 쌀을 보내야한다”고 해서 대북지원의 마지막 마침표가 찍어졌다. 나중에는 결국 쌀과 밀가루를 북으로 보냈다.

이런 뒤죽박족 현상은 보수우익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G20서울대회를 유치하는데, 김정일의 테러위협에 직면하여 그를 달래기 위한 苦肉之策이었던 것이다. 추측하건대, 안상수의 발언은 청와대와의 사전교감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국회에서 북한인권법 통과에 그토록 인색하던 민주당-민노당 야당의원들도 대북지원에는 열씨구나 좋다고 합세하면서 여야 만장일치로 대북지원이 통과되었다. 천안함 사고로 대북지원의 명분에 고심한 통일부의 대북지원 방안은 국제적십자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방식이었다.

한편 천안함 사고이후, 사퇴압력에 시달리던 김태영 국방장관은 대북제재에 착수했다. 제재의 일환으로 대북삐라 살포와 전방에 확성기를 통한 대북방송을 재개하는 것이었는데, 북한측에서 “만약 방송을 재개한다면 미사일로 포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겁에 질려 난처한 지경에 빠진 한국군 군부는 청와대와 주한미군사령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미군의 반대가 있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전방을 방문하여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북한측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전방의 대북방송 재개는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다. 노무현 정부시절, 이종석이 NSC 사무처장으로 근무를 할 때, 철거명령을 한 이후 전방에서 남북화해의 명분으로 사라졌다. 휴전선일대에서 국군의 대북방송을 듣고 탈영하는 북한군 출신들이 상당수가 되어 김정일과 북한군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이 스스로 대북심리전을 포기했으니 앓던 이가 빠진 것이다. 원래 철거노력의 시작은 김대중 정부로 거슬러 간다.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그가 보디가드나 비서관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45분정도 김정일의 리무진을 타고 순안공항에서 평양까지 가는 과정에서 김정일과의 密談에서 김정일이 한국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요구한 것 중의 하나라고 전해진다.

북한의 협박에 대한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대북확성기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사진을 걸어놓을 것, 두 번째로 만약 포격하면 평양의 김일성 동상을 폭격하겠다고 應戰했어야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아무런 추가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쌀과 밀가루 등 대북지원이 재개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3.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에 의해 대낮에 연평도 포격을 당했다. 불과 천안함 사고의 발생 8개월만의 참화다. 해병대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고, 수십명의 부상자와 1300여명의 피난민이 발생하였다. 준전시상황이 된 것이다. 6.25동란이후 북한군이 남한의 민간인들에게 정면으로 포격을 감행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당시 연평도가 포격을 당할 시에 민간인 관광객들이 근처에 있었고, 연평도 포격참사는 텔레비젼을 통해 실시간 방영되었다. 천안함 사고에서 북한의 소행임을 믿지 않았던 순진한 국민들은 이제 김정일의 만행에 분노하였다. “이럴 수가 있나?”

이 때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즉각 보복을 명하지 않았다. 5.24일의 전쟁기념관에서 행한 대국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시 수대의 F-15전투기가 공중에 떠서 북한군 포대의 폭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합참의장의 최종결정이 미루어지고 조종사 K 중령(가칭)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킨 체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폭격에 대한 청와대의 최종 재가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군 포대는 물론 차제에 서해안에 준동하는 북한 잠수함 기지를 폭격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골든 찬스를 놓친 것이다. 이 와중에서 “확전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청와대 지침서가 김태영 국방장관의 입으로부터 새어 나오면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분노에 치를 떨면서, “앞으로 또 이와 같은 도발을 한다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4.
만약 공군 조종사 ‘K중령’이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抗命), 북한포대와 북한 잠수함기지를 폭격한 후 귀환했으며, 향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는 귀환즉시 항명죄로 합참의장의 명령으로 구속되어 군법재판에 회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수언론에 의해 애국심의 표상이요 국민적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구속된 감방에는 면회를 신청하는 애국지사들의 면담요청이 쇄도할 것이고, 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항의집회와 기자회견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애국시민들의 감방지원에 힘입어 그는 추운 겨울을 차가운 감옥소에도 지내는 것이 아니라 따끈따끈한 특실에서 생활하면서 조사를 받게 되는 영광을 누릴 것이다. 간수는 존경의 표시로 그에게 경례를 부칠 것이다. 군사재판정은 그에게 명령불복종죄를 적용하여 징역 2년 에 예편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여론의 열화같은 반발에 의해 대통령은 1년뒤에 8.15광복특사로 감형을 하게 되어 풀려날 것이고,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되어 전국에 안보강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는 김정일 체제의 타도와 북한 해방을 위한 선구자로 부상할 것이다. 2012년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당하게 여의도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만약 K 중령의 명령불복종, 항명포격으로 인해 북한측에 막대한 군사적 피해를 입혔다면, 김정일에게 북한의 무모한 무력도발은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보복조치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에게 찾아온 종북좌파의 척결과 대북응징이라는 세 번에 걸친 골든 찬스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Business Politician의 단점과 한계가 명확하게 노출된 것이다. 3년이 지나면서 4대강사업과 경제자원 및 스마일외교에 골몰한 경제대통령의 안보대처 능력의 무기력함과 무능력이 여지없이 노출된 것이다.

다만 일말의 위로가 있다면 정신이 번쩍 든 이 명박 대통령이 부지런히 전방을 방문하면서 “앞으로 또 도발하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정신무장을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만 앞서면서 행동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대통령의 딱한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분노한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하나?”(konas)

이주천(국제현대사연구소장/자유연합 공동대표)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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