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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내가 아는 양건 교수

자유민주주의, 정당성의 문제, 법치주의에 투철

Written by. 류근일   입력 : 2011-03-10 오후 1: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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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인가 76년 쯤 됐을 것이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에 앉아 있는데 웬 서울대 대학원생이 찾아왔다. 때는 서슬 푸른 유신 시절, 나는 반(反)유신이란 사연으로 된 홍역을 치르고 난 직후였다. 그 학생은 얼굴이 온화하고 약간 수즙음을 타는 청년이었다.

 웨 왔느냐고 물었다. “법과대학 석사논문을 쓰는 중인데 선생님의 옛 필화사건을 포함한 논문입니다. 당사자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철이 채 들지 않은 갖 20살 풋나기 시절에 쓴 설익은 글을 가지고 웬 석사 논문 씩이나...하는 쑥스러움을 느꼈다. “1심 2심에선 사회민주주의는 무죄”라 하더니 대법원에선 5.16 직후라 그랬는지 유죄로 뒤집었습니다. 전 세계 민주국가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정권이 있는데 그게 다 유죄라면 영국 프랑스하고 국교는 왜 맺고 있나요?“

 나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곤 그는 돌아갔다. 나도 그를 잊었다. 그의 논문 지도교수가 같은 논설위원실의 비상임 위원인 서울 법대 김철수 선생이라는 것만 알아 두었을 뿐.

 그리고 긴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 낯익은 얼굴 사진이 났다. 한양대 법대교수 양건. 바로 그 때 그 학생이었다. 나는 감개무량을 느끼며 그의 글을 읽었다. 그 후로도 그는 종종 논단에 나왔다. 그의 글은 인상 그대로 톤(tone)은 온화하나 논지(論旨)는 분명한 글이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 할까. 자유민주주의, 정당성의 문제, 법치주의...에 투철한 글들이었다.

 그 후 나는 이런 자리 저런 자리에서 아주 간간이나마 그와 조우하곤 했다. 늘 조용하면서도 말해야 할 것은 회피하지 않고 슬쩍 내비치는 화법을 쓰는 양건 교수. 그는 한양대 법대 학장이 되었다. 2008년 연말에 나는 조선일보에 마지막 고별 칼럼을 쓰고 “그만 쓰겠다”고 했다. 양건 교수가 전화를 주었다. “아, 고별 칼럼을 보니 한 세대, 한 시대가 이렇게 바뀌는구나 하는, 찡하는 감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의 관심이 고마웠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그는 어떤 인연인지는 모르겠으나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임용되었다.

 얼마 후 전화가 또 왔다. “국민권익위원으로 초빙하겠습니다. 수락해 주십시오” 알고 보니 별것 아닌 것이었다. 별것 아니라서 양건 교수, 아니 국민권익위원장의 요청이라 수락했다. 몇 번 청사에 가서 안 해도 그만인 회의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후임 이재오 위원장이 오고부터 흐지부지 됐다. 그가 하루 아침에 밀려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 양건 학장이 감사원장 내정자로 국회 청문회에 선다고 한다. 은퇴 후 살 부동산인지를 사 둔 게 야당의 표적이 될 모양이다. 나는 믿고 또 믿는다. 그 문제는 모르지만 양건 내정자가 아주 좋은 사람이요 인재라는 것을. 내가 그를 안다고 해서 하는 말일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게 본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왜? 그는 좋은 사람이니까.

 청문회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다. 국회가 알어서 할 것이다. 나는 그와 한 시대를 함께 했던, 진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인연을 회상했을 따름이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cmclub)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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