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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도 남북은 다른가?

"우리 여명은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구출작전, 북한 여명은 가문의 집권 목표로 국력을 소모하고 인민을 학대"

Written by. 박종길   입력 : 2011-03-18 오전 8: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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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명(黎明)’하면 먼저 여명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TV 드라마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그리고 6·25전쟁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엮어냈던 드라마는 여전히 가슴이 짠하다.

 여명의 사전적 의미는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을 말한다. 또 같은 낱말이나 뜻이 다른 여명(餘命)은 얼마 남지 아니한 쇠잔한 목숨을 의미한다.

 북한도 여명(黎明)을 즐겨 쓴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 동안 노동신문 사설과 정론에 등장한 횟수가 300여 회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토록 강조하는 여명은 3대 세습의 전조(前兆)로 강성대국을 넘어 새로운 태양으로 김정일 후계자 김정은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리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의미한다.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지난 1월 21일 4시 58분 아덴만 여명작전은 새벽의 여명으로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떠올랐다.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고속단정이 캄캄한 밤바다에 내려졌다. 드디어 아덴만 여명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납치 선원을 구출한 쾌거는 UDT/SEAL 대원들의 빈틈없는 작전수행이 만들어낸 작전으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완전무결한 아덴만 작전의 성공은 우리의 캡틴 석해균 선장이 건강하게 회복돼 조국에서 여명을 본 것이다.

 왜 남북한의 여명은 다른가. 우리의 여명은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구출작전이지만 북한의 여명은 가문의 집권을 목표로 국력을 소모하고 인민을 학대한다. 우리의 여명은 김정일 잔명정권(殘命政權)과는 정의와 그 품격이 확연히 다르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혁명의 열기가 북아프리카를 넘어 중동까지 불고 있다. 북한도 지난 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이래 최악의 식량난에 처해 있고, 전력난과 화폐개혁의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아랍권의 민주화 시위가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 민중혁명이 북한에서만 통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공포정치가 무서워 참아 온 북한 주민들이 이래 죽거나 저래 죽거나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죽음을 각오한 시민혁명을 이뤄 내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 고행의 카르텔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북한은 이집트와는 다르게 폐쇄주의적 정책과 주체사상이라는 종교로 손자 대물림에 성공할 것인가 무너질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북한 주민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통해 남한의 경제력을 알고 있으며 먹고 살기 위해 월남을 감행한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김씨 왕조 연명이 여명(黎明)으로 밝아올지, 여명(餘命)으로 생명이 멈출지는 여전히 안개 정국이 아닌가.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체제는 곧 붕괴된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에는 반드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중심으로 한 통일의 여명이 밝아 온다는 것이다.
(http://kookbang.dema.mil.kr)

박 종 길(세종대 초빙교수)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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