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각] 46 義人앞에 부끄러운 오늘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우리 아들, 동생, 친구들이 어느새 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 무력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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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22일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각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앞은 차가운 바람이 씽씽 불어대고 있었다. 며칠 전 아직은 가벼워 보인 옷차림에 봄 내음을 지피던 여심(女心)이나 길손들은 어느새 차가워진 꽃샘바람에 다시 칭칭 감은 목도리며, 오버코트 깃을 세운 채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청계 광장으로 막 들어서는 길목 초입에 한 동의 텐트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태극기와 해군기를 배경으로 말쑥한 넥타이 정장 차림과 흰색 모자에 근무복장의 언제 봐도 친숙하지만 너무나 우리들 가슴을 처연하게 했던 천안함 46명 해군 용사들이 향불과 국화 향 그윽한 사진 속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3.26 천안함 폭침 1주기를 맞아 '천안함 피격 1주기 대학생 추모위원회'가 벌이고 있는 천안함 전사자 추모 분향소 자리였다.
이 날 기자는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국가보훈처와 재향군인회가 주관한 천안함 전사자 추모 사진전을 취재하고 오는 길이었다. 알다시피 광화문은 2호선과 5호선이 환승하는 지점으로 평일에도 많은 인원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광화문광장으로 통하는 곳에 1년 전 그 날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사진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사진전의 목적은 대한민국 영해를 넘어 어뢰 공격을 감행한 북한의 만행을 다시금 재인식하고 對국민 안보의식을 고취하자는 취지였다.
사진 속 한 곳에 '자랑스러운 천안함 46용사,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는 추모의 글귀가 유난히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또 하나의 사진 판넬에는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는 내용의 추모와 교훈의 글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사진전 앞을 지나치는 행인들의 시선과 발걸음에 고정이나 멈춤은 없었다. 표정 속에는 무표정도 있지만 당당함도, 활기에 찬 표정들도 넘쳐났다. 어깨를 마주하고 걷는 연인들의 얼굴에도 행복 어린 미소가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고. 한참을 지켜봐야 겨우 몇 사람 눈길을 주거나 할 뿐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지경이었다.
그곳 취재를 마치고 청계광장을 거쳐 시청 방향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대학생들이 주최하는 추모 분향소가 마련되고 학생들이 지나치는 이들에게 "천안함 전사자들에게 분향을 부탁드립니다"며 안내와 권유를 하고 있었다. 기자도 당연히 들어서 헌화와 분향에 나섰다.
그리고 지켜봤다. 유난히 추위를 타기도 하지만 가만히 서 있어도 손등이 얼얼할 정도로 날씨는 차가웠다. 점심시간이 시작된 관계인지 일대는 주변 직장인 등 많은 이동객들로 북적였다. 학생들 또한 계속해서 분향과 헌화를 권했다. 그러나 여기 또한 광화문 역 사진 전시장과 매일반이었다.
곁눈질로 슬쩍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간다. 젊은이도, 나이든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텐트 안으로 들어서 묵념하는 사람을 지켜보기란 하 세월이었다. 1년 전 북한 잠수정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폭침 됐을 때 온 나라가 비분강개하며 분노로 치를 떨어야 했다. 전국이 추모 열기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불과 1년이 지나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 폭침 1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가? 4개월 전 연평도가 적의 포격에 맹타 당하자 국민의 공분(公憤)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가스불 위에서 펄펄 끓던 뜨거운 냄비가 잠시후면 금방 식어나가듯 그 모양새 바로다.
촌각(寸刻)을 다퉈가며 움직이는 게 현대인의 일상이고 오늘의 사회다. 오직 당장의 현안이 시급하고, 현재에 매달려 급급하기 바쁘기에 나와 관련된 일상 외에는 어떤 것도 기억하기 싫을 수도 있을 게다. 그렇다고 온 국민이 참담함에 치를 떨어야 했던 그 날의 아픈 기억을, 그것도 추모의 힘을 보태달라 한마음으로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애써 피하는 발걸음 속에서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우리 아들, 동생, 친구들이 어느새 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 무력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전사자 어머니의 "(사람들이) '천안함 사건이 몇 년 전에 일어난 거죠'하고 물을 때면 "이제 1년밖에 안됐는데 그들에게 '그 사건이 당신들에게는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니었느냐'고 묻고 싶다"고 한 말이 그렇게 기자의 가슴을 저미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가는 '자랑스러운 천안함 46용사, 대한민국은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했는데.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고 했는데 "나는 어떤가?"하고 말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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