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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장병, 6·25전사자 유해발굴 동참

다부동전투 지역서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 들으며 한·미동맹 다져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1-04-14 오전 11: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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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칠곡의 작오산과 유학산 일대에서 실시되고 있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에 백안의 미군들이 동참해 굳건한 한․미동맹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있다.

 지난 13일부터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과 육군 50사단 장병들이 유해를 발굴하고 있는 현장에 왜관에 있는 미 501여단 소속 장병들 20여명이 자원해서 참여한 것이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장병들이 한국군의 전사자 유해발굴에 동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한․미 양국 장병들이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현장인 경북 칠곡 작오산에서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다 산화한 선배 전사자의 유해발굴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국방부 사진제공)ⓒkonas.net

 이곳은 6·25전쟁 당시 미 1기병사단과 국군 1사단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파죽지세와도 같은 북한군 1, 3, 13사단 등과 맞서 고지의 주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피․아 1만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으로 이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를 다부동 전투라 한다.

 작오산전투에서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50년 8월15일 작오산에 배치된 미 1기병사단 5기병연대 2대대는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4.2인치 중박격포중대의 1개 소대(2대대 배속) 전원이 포로가 되었고, 방어 중이던 G중대는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G중대를 구출하기 위한 역습을 통해 작오산을 탈취했으나, 정상에는 널부러진 미군 시체 200여구만 참담히 남아 있었다.

 이틀 뒤 미군의 역습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휴식 중이던 미군 포로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해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전화선으로 손이 묶인 채 처형된 중박격포 소대원 46명의 시신이 골짜기에서 발견됐으며, 대부분 신발이 없고 발에 심한 상처가 있는 상태였다. 북한군이 자신들이 신기 위해 포로들의 신발을 벗기고 밤낮으로 정상과 계곡을 맨발로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행히 양쪽다리와 한쪽 팔에 관통상을 입은 맨링 로이 이병과 라이언 이병 등 생존자 6명이 사체더미 속에서 발견돼 학살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해발굴에 참가한 한․미 장병들은 발굴통제 장교의 이러한 설명에 숙연해 했으며, 간간히 나오는 당시 M1 소총 탄피를 들고 선배들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에 대해 대화하는 등 시종 진지하게 발굴에 임했다.

한국에 10년째 근무하고 있으면서 이번 발굴에 미군 선임자로 참가한 부대대장 리스 소령(40세, 유타주 출신)은 “60년 전 이곳에서 자유수호를 위해 숨져간 수많은 한․미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직접 느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으며, 내년에는 더 많은 부대원들이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전쟁 당시 조종사로 참전한 외할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와 병행해 강원도 양구에서도 지난 11일부터 6월말까지 미 JPAC(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사령부) 소속 발굴팀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육군 2사단 장병들의 지원하에 '51년 추락한 F-4U(일명 콜세어) 전투기의 조종사 유해를 찾기 위한 한․미 합동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월 초 시작된 금년도 전사자 유해발굴은 현재 9개 지역에서 9백여 명의 장병들이 참여해 활발히 추진되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나라사랑 함양과 호국보훈의식 고취를 위한 유해발굴 참여 프로그램 일환으로 14일 칠곡 유학산 발굴현장에서는 계명대 사학과 학생 40여명이 유해발굴 체험을 실시할 예정이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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