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각]"아니 '이밥'이 이렇게 많은데!"
며칠 전 점심시각, 취재를 마치고 회사에 도착해 바로 식당으로 들어섰다. 12시가 한참 지난 시각이라 식당 안은 한산하니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뷔페 식 식단이라 밥을 푸려고 앞에 있는 밥통의 뚜껑을 열어 보니 거의가 다 비어있고, 밑바닥으로만 얇게 깔려 있는 게 식은 밥으로 보이는 것이다.
해서 옆에 있는 밥통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소위 북한에서 말하는 '이밥'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당연히(?) 앞 밥통을 덮어놓고는 새 밥통의 밥을 식기(食器)에 퍼 담았다.
그러자 내 바로 뒤에서 줄을 서 계시던 할아버지가 먼저의 뚜껑을 열어 밥을 푸시면서 "아니 이 밥도 열 사람은 먹겠는데, 왜 이 밥은 먹지 않어? 6·25 때를 생각해야지. 북한 사람이 보면 어떻겠어"하면서 조용조용 밥을 푸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걸 숨길 수 없었다. 지난 겨울 그 춥던 날 꽁꽁 얼어붙은 한강을 바라보며 "서울도 이렇게 추운데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할 북한 주민들은 얼마나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 것인가?"며 되뇌던 기억,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어느 탈북 단체장과 얘기를 나누던 중 "지금 북한에선 가정에서도 추위로 얼어죽는 사람이 있고, 꽃제비들은 길거리에서 죽을힘을 다해 구걸을 하고 있는데..." 하는 말에 숙연해 하며 나름의 칼럼을 썼던 자신을 돌아보매 화끈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다. 내 자신 순간에 환호하고, 비감에 젖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단세포적 아메바형 소유자가 되고 만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한 순간 춥고 배고파하던 내 이웃을 돌아보던 생각은 남의 나라 먼 이야기가 되고, 다시 나만의 편익을 생각하는 이타적 자세에 묻혀 버린 것이다.
아무리 우리네 일상 태반이 타인의 삶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 중심의 사고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내 기분' '나의 느낌' '내 주장'에 함몰돼 주변의 아픔이나 고통을 도외시한다면 결코 더불어 함께 한다는 '우리'라는 개념에 합일되지 못하는 기피인물이 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날 취재는 북한군 현역 군관출신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한국에서 유입된 '드라마' 한편을 본게 드러나 좌천돼 처벌을 받게 되자 북한을 탈출, 우리사회로 넘어온 한 탈북 엘리트 초청 강연회가 있던 날 이었다.
그는 그런 말을 했다. 매년 어느 정도의 돈을 아껴 모아 아직 북한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송금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자식이 내 어머니, 내 부모님에게 쌀과 비료를 보낸다는데 보내지 말라고 할 자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북에 쌀과 비료를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그 쌀과 비료가 내 어머니에게 결코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을 북에서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넘어와 함께 살고 있어 너무도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몸이 약한 누이가 감옥 생활을 하다 병으로 숨졌다고 말하는 그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혈육의 정과 그리움이 사무치고 넘쳐났을 것이다. 다 헤진 옷을 걸치고 구걸에 나서 장마당을 떠도는 어린아이들의 모습 또한 동시 오버랩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먹고 싶다는 게 '이밥에 고깃국'이라는데. 단 한번이라도 흰쌀밥에 쇠고기국을 배터지게 배불리 먹어 보는 게 또한 소원이라는데. (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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