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각] '지진대피 훈련'... 이래도?
"남이 당한 재난재해를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동일한 유형의 화(禍)를 당한다는 사실"
지난 4월28일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이 주최한 조찬 강연회에 일본 중의원 네명이 참석했다. 4월24일부터 5월1일까지 이 포럼과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인권운동가이자 수잔 솔티 회장이 대표인 디펜스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일본측 대표로 참석했다가 김현욱 이사장의 초청으로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그 날 김 이사장의 소개로 잠시 마이크를 잡은 오쿠무라 덴조 중의원은 지난 3월11일 일본동북부에서 발생한 진도 9.0 사상 최악의 지진해일 피해로 전 날(4.27)현재 사망자 14,000명, 실종 13,000명 등 27,000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 동료인 기타가미 게이오 의원도 단상에 올라 지진해일 피해에 대해 한국 정부와 NGO 단체 등 전 세계가 하나된 마음으로 지원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자연재해 앞에 일본이 재평가를 받는 것을 하나의 운명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며 숙연한 마음을 전해 포럼에 참석한 많은 인사들이 일본 국민이 겪고 있을 물적, 심적 고통에 의식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는 또 우리나라도 가면 갈수록 지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전 지진대피훈련이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소방방재청이 밝힌 것처럼 11시 정각이 되자 이전 민방공 공습경보음의 5초 상승, 3초 하강 반복과는 달리 재난위험 경보음은 민방공 경보음보다 고음으로 2초 상승, 2초 하강을 반복하며 3분간 계속 울려댔다. 라디오 방송도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지진대피 훈련에는 예년과는 다르게 전국의 모든 학교가 훈련에 동참하고 소방차량, 긴급구호차량, 앰뷸런스 등 비상차량을 제외하고 일반차량은 갓길에 정차토록 했다.
또 동해안 울산, 강원, 경북, 제주 등 4개 시·도 해안가 16개 시·군·구에서는 주민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직접 대피로를 따라 지정된 대피소로 대피케 하고 경북 울진 원전에서는 방사능누출을 가정해 8km 외곽으로 지역주민을 실제 소개(疏開)하는 훈련까지 시행했다.
이 날 훈련이 시작되기 1시간 전 기자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훈련에 따른 행동지침을 알리는 사전 예고방송이 있었다. "오늘 훈련은 지진 대피훈련으로 실제 상황이 발생 시에는 건물 밖으로 피해 인근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으로 가야 하지만 오늘은 책상 밑으로 몸을 피하라"는 내용이었다.
11시 정각. 요란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움직임은 미미했다. 사내 방송을 통해 미리 알려 준대로 행동에 나서는 직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자 또한 멀뚱한 상태로 일을 보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직접 해보자"하면서 책상 아래로 몸을 은신했다. 좁은 지역에서 약 1분 여간 허리를 웅크리고 불편한 상태로 쪼그려 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재난재해 대비 훈련에 임한다는 생각에 나름의 위안과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11시 10분경, 사무실 유리창을 통해 밖을 살펴봤다. 뚝섬 지하철 4거리에 모든 차량은 올스톱 상태였다. 붉은 색 신호등이 점등된 가운데 민방위 요원들이 인원과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사이로 시민들도 서 있는 게 보인다. 하지만 잠시 뒤 멈춰선 차량 사이에서 택배 오토바이 한 대가 슬슬 나오더니 쏜살같이 방향전환을 하면서 툭 뛰쳐나간다. 그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서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눈치를 살피며 도로를 건너자 그 옆 사람도 슬그머니 움직인다. 그러자 반대방향에서도 한 두 사람이 쭈삣 거리며 건너는가 싶더니 이제는 너도나도 덩달아 건너기 시작한다. 황색 수기를 들고 통제하던 통제원도 그냥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량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차량이 멈춰 서 있는데 뚝섬 역에서 중랑천 방향의 우회전으로 향하는 샛길로 승용차 한 대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이내 속력을 내고 달려나간다. 그 뒤를 이어 또 한 대가 움직이는 게 곧장 눈에 들어온다. "아, 저것은 아닌데"하는 뇌까림이 절로 인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많은 나라 중 하나이다. 그만큼 지진대비 훈련 또한 어릴 때부터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난 3월 지진해일에 맞닥뜨려서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우리는 경외 어린 시선으로 지켜본 것 아닌가.
아직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 해도 한반도에서도 연간 43회의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2004년 인도네시아,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은 8만7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2010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무려 30만 명이 사망했다. 올해 들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우리 유학생과 교민을 포함해 수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규모 지진의 인명피해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남이 당한 재난재해를 보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동일한 유형의 화(禍)를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체득해 왔다. 유치원에서 고교에 이르기까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도 대상으로 한 이번 지진대피 훈련을 그런 교훈으로 승화시켜야 할 줄 안다. 결코 우습게 보거나 장난기 어린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불안감을 전제하거나 심화시켜서도 안 되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더 진지하고 위험예지훈련에 솔선하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계제다.
"사망자 14,000명, 실종 13,000명 등 27,000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한 오쿠무라 덴조 중의원의 말이 결코 남의 나라, 먼 피안(彼岸)의 세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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