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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실이다-'김정일리아'

목숨 건 탈북자들의 처절한 증언, 영화 ‘김정일리아’ 시사회에 다녀오다

Written by. 최경선   입력 : 2011-06-10 오전 9: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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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11월 9일. 한 사내아이의 울음이 14호관리소 안에서 터져 나왔다. 태어나 맨 처음 본 것은 죄수복을 입은 엄마. 말을 떼자마자 이 곳이 ‘수용소’라는 것을 알았다. 슬픔이나 분노, 즐거움과 사랑이란 단어는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눈 뜨면 일하고 때리면 맞아야 했다. 이 곳이 어디인지, 바깥 세상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22년동안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그 곳. 사람들은 그 곳을 정치범수용소라고 부른다.(탈북자 신동혁 저서 「세상 밖으로 나오다」중에서)

 탈북자 12명이 기아와 폭행, 수용소생활, 자유로의 갈망을 이유로 고난의 과정을 거쳐 북한을 탈출한 이야기를 그린 ‘김정일리아’ 다큐멘터리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에 다녀왔다.

 ▲ 북한 인권실상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한 탈북자들의 처절한 증언! 영화 '김정일리아' 포스터ⓒkonas.net

 사실 시사회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수용소 출신자들의 증언을 모은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고, 이는 마치 메아리가 되돌아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허공을 향해 목청껏 외치는 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는 2002년 일본에서 개최된 국제인권회의에 참석해 우연히 탈북자 강철환(현 조선일보 기자)의 북한 실사에 관한 증언을 듣고 이에 충격을 받은 브로드웨이 여성 극작가 출신 N.C. 하이킨 감독이 북한 인권문제에 자신이 그토록 무지했음을 깨닫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를 알려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3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내놓은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국제영화제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2010년에는 인권영화제로 정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체코 프라하의 원월드 영화제에서 ‘올해의 직품’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세계적인 영화제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이후 유럽연합, 워싱턴 정가, 루마니아 의회, 프랑스 국제인권회의 등에서 상영돼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의 실상과 북한으로의 송환을 두려워하며 중국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탈북자들의 두려움 등을 소상히 담고 있다.

 ▲ 북한정의연대 대표 정베드로 목사ⓒkonas.net

 평일 오후인 탓으로 다른 상영관은 한산했지만 꽤 많은 인원이 시사회장을 채웠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탈북자로서 북한정의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정베드로 목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와 강토를 보호하고 희생하신 호국전사자와 작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자”고 제안해 시사회에 참가한 관객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이어 그는 해외에서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법이 제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발의된 북한인권법조차 제정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76분간(영화상영 시간)의 시간을 통해 북한의 참상을 보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얼 해야 될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영화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행복해 하는 북한 주민들의 다양한 포스터로 시작된다. 북한 정권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는 1992년부터 2006년까지 탈북한 12명의 인터뷰를 주내용으로 하고 중간중간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위해 북한 주민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과 거대한 병영국가, 공포정치로 일관된 북한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북한 무용소 출신의 김 할머니-그녀의 절친한 벗이 김정일의 정부가 되자 권력자의 사생활을 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 4자녀를 모두 잃고 남편은 35년째 생사도 모른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절규했다. “김정일을 국제전범재판에 회부하고 싶다”고, “공포정치 자체가 범죄”라고, “고난을 겪는 북한 주민을 살려야 한다”고.

 강철환- 9살에 이유도 모른채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등 3대가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10년간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14시간을 거꾸로 매달려 매를 맞았고 쥐까지 잡아 먹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북한의 수용소 실상을 최초로 공개한 사람이다.

 신동혁-그는 수용소 14호에서 출생했다. 부모가 왜 수용소에 갇혔는지도 몰랐다. ’96년 11월 29일 엄마와 형이 공개처형 당할 때 그 현장을 목격해야 했다. 언제 맞을지 몰라 항상 공포감에 떨어야 했고 손가락을 절단당하는 고문을 당했다. 벌목 나갔다가 철조망에 걸려 감전사한 동료를 밟고 수용소를 탈출했다.

 김철웅-피아니스트로 소련에 유학을 갔다가 북한의 음악은 장르에 제약이 많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리처드 클라이더만의 곡을 연주했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됐다. 14시간동안 매를 받으면서도 피아노 치는 손가락이 다치지 않도록 손가락을 겨드랑이에 끼고 매를 맞았다.

 이신-북한의 가수 출신. 고픈 배를 감싸안고 ‘저 많은 벼를 어디에 다 쓸까?라는 노래를 부르며 배 부른 척, 이쁜 척, 얼굴에는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다.

 변옥선-아픈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오빠가 업어서 중국으로 데려왔지만 정작 오빠는 공개처형당하고 언니와도 헤어졌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지만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박명호- 북한군인으로 20년을 넘게 복무했다. 아버지도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배를 타고 가족과 함께 320km를 항해해 한국에 도착했다. 북한 경비정의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배의 철제부분을 이불로 감싼채.

 이 외에도 중국으로 탈출한 이후 인신매매단에 팔려 5년간 지옥같은 생활을 겼어야 했던 이, 북한군 대좌 출신, 가명으로 등장한 대학생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대학생은 “김정일이 죽으면 북한에 혼란이 오겠지만 그 혼란이 지금의 북한 체제보다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탈북자를 구조하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중국에서 4년간 복역한 최영훈 씨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미래가 불안한 상태다. 

 ‘김정일리아’는 ‘김정일꽃’을 의미한다. 이 꽃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평화, 지혜다. 영화 시작전 느꼈던 답답함과 공허함은 영화가 끝날 즈음 충격을 넘어서 분노로 치닫는다. 이 엄청난 숙제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길은 있기 마련인 법. 먼저 6월에 있을 임시국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이 통과되기를 기대해 본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후 인터뷰 당시 N.C. 하이킨 감독은 자신이 만든 ‘김정일리아’를 본 한국인 관객으로부터 비판적인 질문공세를 받고 북한 인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김정일리아’의 주제로 “북한 수용소를 탈출한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수만 명의 북한 사람들이 노동 교화라는 명분 아래 강제수용소에서 고문과 기아, 질병 등에 시달리며 중노동을 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탈북자가 2만명을 넘어섰다. 우리가 그들을 진정한 동료로, 한민족으로 여기고 있는지 재고하며, 파괴와 감각을 앞세우는 흥행위주의 영화보다 이 영화 한편 보기를 권장한다.(konas)

코나스 최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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