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정치변동과 그 파급 효과
서정민 교수, '새로운 중동의 정치 및 경제 질서'를 중심으로
[요 약]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붕괴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또 다른 중동의 독재 정권이 막을 내렸다. '아랍의 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바레인이 한 때 반정부 시위로 홍역을 앓았다. 시리아와 예멘 정권도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알제리, 모로코, 요르단 등 일부 국가에서도 시위가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아랍 국가들에서도 개혁요구가 점차 고조되고 있다. 중동의 정치변동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중동의 정치변동은 지역 내 정치와 경제의 틀을 대폭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음 세 가지 성격 때문이다. 첫째 아랍인의 남성 중심 가부장적 권위주의 인식체계를 바꾸고 있고, 둘째, 이슬람이 아닌 세속적 시민혁명 혹은 정권교체이며, 셋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뉴미디어를 수단으로 하는 디지털 혁명이다.
따라서 이번 중동의 정치변동은 포괄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권위주의체제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자 혹은 집권 세력이 국가의 정치와 경제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그동안 아랍 정치의식의 바탕에 깔린 범아랍민족주의(Pan-Arab Nationalism)와 범이슬람주의(Pan-Islamism)가 약화하고 개별 국가 민족주의(Nation-State Nationalism)가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아랍이 친서방 혹은 반서방으로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친자유주의 그리고 반자유주의로 나뉘게 될 것이다. 국가별로 상이한 변화가 발생하면서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이란의 영향력이 부상할 것이다.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권이 등장한 이후 형성되고 있는 시아파 블록(Bloc)의 확산을 막아주던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역할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강력한 아랍권 독재정권의 붕괴와 위기는 분명 이란의 지역 내 패권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동의 정치변동으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대중동 전략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소위 '밀실정치’를 통해 이권을 유지하고 확대하여 왔던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성격을 가진 이번 정치변동으로 향후 중동 국가에서는 '다원화 현상’이 등장할 것이다. 의회, 시민사회 등 견제세력이 등장하면서 의사결정과정이 보다 투명해 질 것이다.
중동의 정치변동은 최근 아랍의 정치변동은 경제의 틀도 대폭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대부분 아랍의 경제는 권위적인 국가주도형 개발 모델이었다. 최고 지도자 및 집권 세력이 국가의 부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무리한 개발을 주도해 왔다. 투명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판단과 이익에 근거한 국가경제 운용이 그동안 경쟁력 있는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해왔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권들이 붕괴하면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랍경제도 결국 보다 서방의 시장자본주의체제로 나아갈 것이다.
국가 경제의 틀이 바뀌는 것과 더불어 아랍인의 투자마인드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아랍인들은 역사적으로 제조업보다는 현금회전에 빠른 상업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높은 실업률로 인한 청년층의 불만이 가장 심각한 불안 요소라는 점에서, 향후 들어설 새로운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조업 육성이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아랍권은 앞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석유 중심의 기존 산업구조를 탈피해 제조업 육성을 포함 산업다각화에 전력할 것이다.
이번 중동의 정치변동은 빠른 속도는 아니겠지만 분명히 중장기적으로 왕정 산유국들에까지 확산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정치변동은 아랍의 다양화 그리고 다원화라는 큰 틀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나라마다 민주화 및 자유화 정도가 다른 현재보다는 더욱 큰 다양성을 가진 중동이 부상할 것이다. 국가별 동반자적 관계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불어 다원화한 중동의 정치 및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섬세한 진출이 필요하다. 과거의 최고 정책결정권자와의 접촉방식에서 각국의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키는 홍보 및 진출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한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석유 수입, 상품 및 플랜트 수주 등에 집중해 온 한국과 서방 기업의 진출 방안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단순한 상품수출 혹은 플랜트 수주의 틀에서 벗어나 조인트벤처를 통한 제조업 분야 진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로비와 인맥에 의존한 수주방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플랜트 수주 방안도 수립해야 한다. 보다 동반자적 협력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새로운 중장기 진출 전략이 마련된다면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http://www.cfe.org)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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