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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란 무엇인가?-①

Written by. 민경국   입력 : 2011-10-24 오전 8: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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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회장 조동근)가 2011년 10월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보수의 현재와 미래'제하 심포지엄에서 민경국 강원대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임.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가치: 기존 질서의 안정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자유주의가 최고의 가치로서 추구하는 개인의 자유(재산권)인가?  시장경제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보수주의가 등장한 정치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긴다. 

  보수주의는 시대상황이 변할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제도의 변화에 대응했다. 보수주의의 등장을 촉진한 시대적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는 18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버크(E. Burke: 1729–1797)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 이념의 등장배경이다. 둘째는 19세기 산업혁명의 시기이면서 자유주의 시대에 등장한  영국의 콜리지(J. C. Coolidge)와 프랑스의 보날드(L. G. Bonald)를 중심으로 한 보수주의의 등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세기 사회주의 시대에 등장한 보수주의, 특히 커크(R. Kirk), 벨(D. Bell), 크리스톨(I. Kristol)등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등장한 보수주의이다.

  이 역사적 등장배경의 설명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질서(안정)이다.  그 안정을 기존의 질서와 동일시하고 있다.  변화는 안정을 해친다는 것이다. 


1. 프랑스 혁명과 보수주의

 보수주의는 주지하다시피, 1789년의 프랑스 혁명 시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반발의 결과였다. 프랑스 혁명의 목표는 과거로부터 전수된 모든 관행과 관습, 전통, 법 규칙, 헌법 등,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유도하는 제도들을 타파하여 사회를 새로이 구성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적 목표를 볼테르만큼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즉, “만일 당신이 훌륭한 법을 원한다면 지금의 법을 모두 불살라버리고 새것을 만들어라” 라고 말했던 것이다. “바꿔! 바꿔!”가 혁명의 화두였다. 그 현대판은 1968년 유럽의 “문화혁명”, 중국의 문화혁명이다. 

   오랫동안 확립되어 온 모든 제도들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새로이 기획하여 합리적으로  사회제도를 재구성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전통과 단절하고 새로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 이것이 인류를 질곡에서 해방시키고 번영의 길로 안내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다. 전래된 모든 것은 사장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인간들끼리의 전통적인 위계적 질서와 권위관계도 없애고 전통적인 주인-대리인 역할, 전통적인 지배자 역할도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이 지정하는 것, 이것이 혁명의 목적이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이 합리주의적 계획에 기초한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시도했다.

   버크가 프랑스혁명에 대해 비판한 핵심은 그 혁명이 기존의 사회질서, 즉 전래된 전통, 관습과 관행, 도덕적 잣대, 법질서, 생활양식 등,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안내하는 현행 사회제도에 대한 위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여주었던 것은  전래된 모든 사회제도를 구습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전부 개혁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파괴적인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한 사회를 엮어놓은 역사와 전통이 인간 사회의 안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버크가 지키고자 했던 중요한 가치는 사회질서의 안정이었다는 점이다.  혁명적 개혁은 이 같은 가치의 훼손이라고 여겼다. 재산권이나 자유라는 가치는 그 자체 가치로 여기지 않았다(Barry, 1987). 전통과 관행들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들이 자유와 재산권을 확립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질서의 안정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이 버크의 보수주의가  애덤 스미스와  흄 등의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전통의 자유주의와 다른 점이라고 본다. 이들도 당시 보수주의자들과 동맹하여 프랑스 혁명을 반대했다. 

  그러나 반대한 이유는 기존의 사회질서의 위협보다 그 혁명이 초래할 개인의 자유와 자유거래에 대한 위협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통과 관행,  도덕규칙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장경제의 생성과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중시했던 것이다. 
 


 2. 19세기 자유주의 시대와 보수주의

  사회주의가 등장하기 전, 19세기 자유주의 시대는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은 산업화의 물결로 점철되었다. 농업과 수공업 시대와는 전적으로 다른 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물론 시장이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갔다. 종전의 시대에 비하여 경제활동도 자유로웠고 세계화라는 개념이 실제 상황을 기술하기에 적합할 정도로 국제적인 무역의 자유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하여  몹시 두려워했다. 이 두려움을 표현하면서 등장한 것이 보수주의였다. 니스벳이 그의 1986년 유명한 『보수주의』에서 보여주고 있듯이(니스벳, 1986/2007: 103-104), 쿨리지(J. Coolidge),  사우디(R. Southy) 등,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상업의 발달과 산업화는 분열적이고 파괴적이고 사회를 해체한다는 이유로 시장경제의 발전을 비판했다.

  산업혁명에 대한 보수주의적 비판은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날드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은 상업, 산업, 도시화가 프랑스 혁명과 자연권적 교의만큼  파괴적이라고 주장했다. 도시생활이 개인들끼리의 사회적 유대를 파괴하고 혼인과 가족의 유대까지도 이완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토지에 기반을 둔 농업사회의 회복을 강조한다. 

  사회주의가 등장하기 전 19세기 자유주의시대에 자유주의 개혁정책과 자본주의에 대한 보수주의의 적대감은 매우 컸다. 그래서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이끌었던 버나드 쇼(B. Shaw)가 자본주의에 대한 보수주의의 비판은 사회주의자들의 비판보다 더 격렬했다고 논평했던 것이다(니스벳, 위의 책 103).

  어쨌든 보수주의의 등장요인은 상업의 발달로 인하여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위협과 사회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존의 사회질서를 보호하려는 동기였다.  개인의 자유의 확대와 시장경제의 발달은 혼란을 야기하고 인간을 원자화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결속을 해체한다는 것이다.  

  19세기 보수주의 등장배경과 관련하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적으로 덜 중시하고 그 대신에 사회질서의 안정을 더 중시한다는 점이다.  

3. 20세기 사회주의 시대와 보수주의

  미국에서 사회주의 시대의 전형은  1930대의 뉴딜과 이를 확대한 1960년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이다. 그 구체적 정책 프로그램은 “빈곤과의 전쟁” 계획, 강제적인 인종통합, 사회보험 등이었다. 이것은 전후 미국의 좌파적 이념의 최고 절정이다.  그 정책프로그램은 소수파와 빈곤층에 대한 법적 보호와 재정적 지원으로 구성된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다.  이는  급진적인 사회개혁으로서  법적 정치적 그리고 철학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런 배경에서 러셀 커크, 다니엘 벨, 어빙 크리스톨 등을 중심으로, 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보수주의가 등장했다.  영국에는 스크러튼이 활동했다. 흥미로운 것은 20세기 사회주의 시대에는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와 동맹하여  사회주의와 이념전쟁을 벌렸다는 점이다. 이는 19세기 사회주의가 등장하기 전의 자유주의시대와 전적으로 다르다. 이 시기에는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의 적이었다. 

   반 사회주의 투쟁을 위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동맹과 관련하여  우리가 인식해야 할 점은 그들의 동맹 동기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사회주의를 반대했던 이유는 후자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상대적으로 덜 걱정하는 보수주의가  사회주의 개혁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것이 기존의 사회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 같은 개혁은 사회적 혼란을 부른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철학적 바탕: 인식론과 불평등론

보수주의의 등장 배경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기존의 질서의 안정이다. 그 이념은 변화는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변화를 싫어하고 기존의 사회질서를 옹호한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현재의 상황(status quo)"을 중시하는 기질적인 성향의 이념이다.(한스 헤르만 호페, 2001/2004: 305; 슈메이커, 2010: 337).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왜 보수주의가 안정이라는 가치를 중시하여 변화보다도 “현재상황(status quo)”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보수주의의 인식론적 입장이다.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변화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사회주의 시대의 평등분배에 대한 보수주의의 반대에서 볼 수 있듯이 왜 보수주의가 평등분배를 반대하는가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불평등론이다. 인간은 자연적으로나 후천적으로 불평등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현재상황을 평등의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은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수주의의 이 두 가지 철학적 기초를 설명할 것이다.


1. 인간이성의 한계와 보수주의

 흥미로운 문제는 보수주의가 제도의 장래 변화보다는 제도의 현재 상황을 중시하는 이유이다. 이는 인간이성에 대한 비관주의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는 제도의 변동이 자생적이든 인위적이든 그 변화가 장차 초래할 다양한 형태의 결과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한다. 보수주의가 낯선 것,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이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수락하기보다는 현재가 나쁘다고 해도 이를 참고 견디는 것이 더 좋다는 태도”(Buchanan, 2003: 2)이다.

인간이성에 대한 비관주의에서 보수주의를 이끌어낸 중요한 인물은 버크이다. 그의 보
수주의 인식론적 기초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Barry, 1987: 93).
-보수주의는 지나치고 조잡한 합리주의를 부정한다.
-보수주의는 개별이성 대신에 수 세대를 거처 형성된 집단적 경험과 지혜의 우월 성을 신봉한다.
-그 우월성을 구현한 것이 전통이나 관행, 관습 등, 전래된 사회제도로 기술될 수 있는 현재상황이고, 그래서 이를 중시한다.

 요컨대 보수주의는 경험과 전통을 중시하는 이념이다. 그 이념은 이 같은 인식론적 입장에서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다. 왜냐하면 이 혁명은 인간이성에 대한 무제한의 신뢰를 부여했던 데카르트, 홉스 등의 “구성주의적 합리주의”(Hayek, 1973: 14)를 전제했기 때문이다.

▲ <그림-1>: 이념 3각형


 보수주의는 자연권적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로크의 전통과 노직(R. Nozick) 그리고 라스바드(M. Rothbard)의 "권리이론적 자유주의"도 반대한다. 이들도 역시 합리주의를 전제한 이념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합리적, 철학적 논리적이며(호페, 2001/2004: 329) 순수한 개인주의적 추상적 권리개념을 반대한다. 보수주의는 자연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를 제일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저서『보수주의의 의미』로 유명한 영국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스크러튼이 입증한다(Scruton, .1981)

 1953년 저서 『보수주의 정신』으로 유명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커크(R. Kirk)도 매우 흥미롭다. 커크는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에 대한 해석에 로크의 자연권이론을 도입했던 하르츠 (Hartz, 1955)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로크의 자연권이론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커크는 미국의 정치적 전통에 버크의 보수주의를 도입했다.

 그리고 벤담(J. Bentham)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인 철학”으로서 공리주의도 보수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 공리주의는 모든 제도와 정책을 사회적 행복 (사회적 후생함수)의 합리적인 테스트에 예속시키기 때문이다. 급진적 철학으로서 공리주의와 권리이론적 자유주의는 위에 있는 <그림-1>의 이념삼각형 에서 볼 수 있듯이 <합리주의적 자유주의>에 해당된다.

 이 같은 인식론에 근거하여 보수주의가 비판하는 것은 오하라가 말하듯이(O'Hara, 2011: 32), ‘사회공학적 사고(social engineering thinking)’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개혁이다. 20세기 사회주의 시대에 자유주의자 하이에크가 “과학주의(scientism)”라고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 같은 사회공학적 사고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Hayek, 1979).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수주의의 인식론적 비관주의는 일관되게 관철되지 못했다. 뒤에 가서 설명하겠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지적으로 현명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이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엘리트주의를 전제하여 보수주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경험과 전통을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등이 확립했고 하이에크, 뷰캐넌 등이 계승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의 ‘진화론적 자유주의’이다(<그림-1> 참조).

 개인의 자유와 제한된 정부, 그리고 법의 지배를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도 개별 인간의 이성에 대한 불신과 집단적 경험과 지혜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일치한다. 버크(E. Burke)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프랑스 혁명을 비판했던 것도 이 같은 인식론적 관점을 공유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더구나 흥미롭게도 스코틀랜드의 자유주의자들이 성장한 제도에 대한 경외감을 증진하고, 특히 언어, 법, 도덕, 관습 등을 통해 자유사회를 이해하는데 버크, 터커(J. Tucker) 등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의 공헌도 매우 컸다(Hayek, 1960/1997 II: 318),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이 성장된 제도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해서 다윈(Ch. Darwin)이전에 이미 진화론적 접근법을 개발했던 것도 보수주의가 보여준 성장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이에크가 말하는 “다윈이전의 다윈주의자들(darwinists before Darwin)”, 즉 문화적 진화이론가들(Hayek, 1973: 22-23)을 탄생시킨 것이 영국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였다.

 그러나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동일한 합리주의를 전제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보수주의는 반(反) 합리주의를 전제한다. 이에 반하여 고전적 자유주의는 이성을 조심스럽게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를 전제한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사회를 계획할 수는 없지만 배우고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그리고 “자유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정도로 인간은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제도를 역사적으로 전수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존중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에게 존재하는 것을 보유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자유로운 진화와 변화를 방해하는 법적 제도나 정책이 있다면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입장이다.

 자유주의자들도 지식의 한계와 구조적 무지를 인정한다는 점에 대해서 그리고 변화의 결과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보수주의와 일치하지만 이 후자는 기존의 제도들에 대해 찬양한다는 의미에서 과거 회고적(backward looking doctrine)이다. 이는 현재 있는 것(being)을 지키는(conserve) 이념이다. 아직 없는 것을 지킨다는 것은 언어의 남용이다.

 자유주의는 기존의 사회제도를 보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동하도록 허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만약 변화를 방해하는 정책이나 법적 요인들이 있다면 이를 제거한다. 자유주의는 변화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이라는 의미에서 미래 전망적(forward looking doctrine)이다(하이에크, 1960/1997: 317, 336).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보수주의는 이 같은 입장을 변화와 진화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변화를 몰고 오는 자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뒤에 가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 두려움은 시장경제에 대한 보수주의의 비관적 태도에서 드러난다.


2. 인간의 불평등과 보수주의

 보수주의의 두 번째 전제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인간에 대한 해석과 이해이다. 보수주의는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는 타고날 때부터 우열(優劣)이 있다고 주장한다(Agre, 2004). 그래서 사회는 사회적 신분에 있어서나 경제적 지위에 있어서 위계질서가 핵심이고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보수주의는 이 같은 사회적 위계질서를 지지하고 보존하려고 한다. 기존의 불평등을 평등이나 그 밖의 다른 상황으로 전환하는 개혁을 전적으로 반대한다. 그 같은 전환은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위협이요 그 전환의 결과는 혼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불평등에 기인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주의의 특징이다.(Barry, 1987: 90; 슈메이커, 2010: 324). 서열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공공의 문제에서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명된 지도자들”(슈메이커, 2010: 325)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이다.

 보수주의의 이 같은 엘리트주의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구현되었다. 첫째로 일종의 귀족주의(aristocracy)이다. 보수주의는 탁월하고 우월한 자들이 전통적으로 전수받은 도덕적 기준 및 가치,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들은 그들이 독점해야 하고 특혜적 조치를 통해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생각을 반영한 것이 전통적 보수주의가 지향했던 귀족주의이다. 탁월하고 우월한 자들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귀족가문이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점차 변동하여 오늘날에는 귀족주의 대신에 능력주의(meritocracy)의 이상(理想)을 수용했다. 이는 계급이나 가문출신과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능력이나 도덕적 품성이 높은 공로(merit)가 가장 큰 사람이 사회의 서열구조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두 번째 종류의 엘리트주의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능력주의는 경제에서 승리하는 자는 지적 능력은 물론이요 성실·근면·절약·신용 등의 덕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민경국, 2007: 203-204, 215). 이것이 오늘날 보수주의의 분배정의이다. 이 같은 시각에서 보수주의는 사회정의와 같은 평등분배를 반대한다.

 보수주의는 자유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자유주의자들도 인간본성의 끝없는 다양성, 즉 개인능력과 잠재력의 폭 넓은 차이가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Hayek, 1960/1996 I: 151).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인간들을 우열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 같은 분류를 위한 객관적인 도덕적 잣대나 분류기준을 찾아낼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잣대나 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자유주의자들은 그런 능력을 가진 엘리트를 상정하는 것조차 반대한다(Buchanan, 2005: 7-8).

 귀족주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보수주의는 서열상 우월한 사람들의 가치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특권이나 특혜를 부여한다. 그러나 자유사회에서는 보호받을 특권이란 존재할 수 없다. 특권부여는 법의 지배원칙의 치명적인 위반이다. 설사 엘리트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법적 조건하에서 자유경쟁을 통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스스로 지키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이 자유주의 원칙이다.


3. 능력주의와 보수주의

 보수주의의 분배원칙은 능력이나 공로의 차이에 따라 재산이나 지위의 차이가 나야 한다는 능력주의 원칙이다. 능력주의는 얼마나 노력했는가, 성실했는가와 같이 행동의 도덕적 성격에 따라 개인들에게 소득을 분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공로원칙“이라고 부르는 보수주의의 분배원칙은 개인들의 소득이 그들의 행동에 대한 타인들의 도덕적 판단에 좌우되게 만드는 원칙이다.

 그러나 그 분배원칙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민경국, 2007: 206-209). 인식론적 이유에서 자유주의는 그 같은 분배원칙을 부정한다. 뷰캐넌이 자신의 논문 “왜 나도 보수주의가 아닌가?”에서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처럼(Buchanan, 2005: 7), 인간들의 우열을 분류할 잣대를 알 수 없는 것과 똑같이 공로를 측정할 도덕적 잣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개인의 지위와 소득을 정하는 그 같은 분배원칙은 투입 지향적 원칙이다. 어떤 일을 해내는데 따르는 투입(노동, 능력, 재주, 성실성 등)이 개인의 소득수준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투입 지향적 분배원칙이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는 매우 애매한 분배적 결론에 도달한다. 개인의 행동결과로서 그 성과가 타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해도 그 성과를 위해 성실하고 근면했다면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 성과가 나쁘다고 해도 노력과 성실성이 가상하다면 상응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애매한 결론에 달한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능력주의의 분배정의는 국가의 규제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노력이나 능력 또는 공로와 관련이 없는 소득형성에 국가가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른바 ‘불로소득’의 문제가 그 한 예이다. 능력주의를 강조하면 재산상속의 정당성이 의문시될 수 있다. 그러나 상속을 반대한다면 이는 보수주의가 중시하는 가족의 가치와도 충돌한다.

 자유주의에서 경제적 성공과 지위는 개인의 행동의 도덕적 성격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의 성과나 능력이 시장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에 달려있다. 시장경제의 소득결정은 투입이 아니라 결과 지향적이다.

 물론 경제적 성공을 위해, 수요자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공급하기 위해서 능력과 노력, 성실성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 같은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 못난 사람도 운이 있으면 경제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물론, 운에 의한 경제적 성공도 시장의 수요자들에게 유익한 가치를 제공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경제적 상황에 의해서도 개인의 경제적 성공이 좌우된다. 성공을 위해서는 시장상황도 우호적이어야 한다.

 에베레스트 등정의 성공이 노력과 능력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등반가가 회피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운이나 상황에도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제에서 개인의 소득 결정은 노력, 능력 성실성 이외에도 운이나 상황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그래서 자유사회에서는 부자나 권세가는 우쭐대거나 거드름 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나 시장상황에 의해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자유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겸손해야 할 이유다

 성공과 실패가 능력이나 도덕적 공로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실패한 자는 무능력자로 또는 성실하지 못한 게으름뱅이로 낙인찍기 때문이다. 실패를 운 때문이라거나 재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등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실패해도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이 자유사회이다. 그리고 타인들이 실패한 사람들에게 ‘너는 능력은 있는데 운이 나빴어!’ 라든가 ‘열심히 했지만 너에게 시장상황이 우호적이지 못했어!’ 라는 말로 위로할 여지가 있다(민경국, 2007: 211-212).

 그렇다고 소득결정이 완전히 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다. 허무주의가 팽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사회는 엄격한 능력주의 사회도 아니고 완전히 운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도 아니다. 그 중간에 위치한 사회가 자유사회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할 수 있으며 때로는 재능이 있고 때로는 어리석은 사람 등,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사회이다.

 자유주의에서 정의는 개인의 소득 결정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인간행동과 결부되어 있다. 그 정의 개념에서는 정의로운 행동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정의롭지 않은 행동이냐를 묻는다. 예를 들면 폭력, 사기, 기만, 횡령 등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행동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정의의 규칙은 이 같은 행동을 막는데 초점을 맞춘 행동규칙이다. 절차적 규칙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이 같은 규칙을 지키면서 열려진 기회를 포착하여 재산을 모으고 지위를 차지한다.

 공로원칙을 준거로 한다면 자본주의의 분배에 깊이 개입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도덕적 행동과는 관계없이 유리한 환경이나 운 때문에 재산이 증가한 경우, 이런 요인에 의한 재산획득은 제한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4. 보수주의와 노블리스 오블리지

 결론부터 말하면 보수주의 사회는 귀족주의든 능력주의든, 엘리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래서 그 같은 사회는 엘리트의 자만심과 거드름을 부추기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엘리트의 우쭐댐을 잠재우기 위해서 생겨난 개념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이다. 현대적 표현이 부자의 사회적 책임이다. 아니면 우월한 자, 지배자, 주인 등의 온정주의의 표현이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 oblige)이다

 보수주의의 특징은 노블리스 오블리지이다. 이는 큰 권리와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 더 큰 의무와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슈메이커, 2010: 655). 이는 귀족사회의 유물이지만 오늘날에도 지배계층에게 특권을 부여하고 이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가 많다. 이 전통에 따라서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현대 보수주의자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론이 그것이다.

 오늘날 노블리스 오블리지를 요구할 수 있는가? 그것은 최소한 암묵적으로 특권과 같은 것의 존재를, 그리고 위계질서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자유사회에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어떤 특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불리스’는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개인들의 재산과 지위는 제주와 능력, 위험선택, 운과 시장상황 등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동일한 사람이나 그 자손이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사회의 위계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 부자가 가난해지고 가난 한 자가 부자가 되는 세상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지는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다면 부자의 ‘사회적 책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사회에서는 부의 축적은 특권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장의 수요자들에게 가치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한 대가이다. 이미 상응한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의무나 책임이 없다. 그래서 자유사회는 우리가 노블리스 오블리지를 요구할 조건이 없다. 보호받을 특권도 없고 분배적 위계도 유동적이고 부의 축적은 이에 해당되는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는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 또는 노블리스 오블리지 요구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자유사회에서는 부자나 권세가는 우쭐대거나 거드름 필 하등의 근거가 없다. 개인의 성공 가운데 상당부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나 시장상황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유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겸손해야 할 이유다.<계 속>(konas)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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