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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배급제'부활은 金부자 세습화 다지기 일환"

여성탈북자 박사1호 이애란 교수, 국제외교안보포럼 초청 강연에서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11-11-17 오후 3: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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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애란 교수 ⓒkonas.net
 북한이 최근 들어 그동안 끊겼던 '배급제'를 부활하려 하는 것은 김정일-김정은으로의 3대세습을 공고히 다지기 위한 방편이라며, 때문에 이 '배급제'가 다시 부활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 그 쌀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게 돌아가기보다는 당 간부 등 핵심계층 위주의 배를 불리게 되고, 그러면 다시 힘을 얻은 이들에 의해 주민들에게 위해(危害)가 가해져 결과적으로 당 간부들만 이롭게 되기 때문에 쌀 지원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탈북자인 이애란 경인여대 교수가 주장했다.

 덧붙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세청이 없는, 세금 없는 북한이 지난 2002년 7.1 경제조치를 단행해 세금을 물게 했지만 배급제가 원만하지 못함으로 국가경제는 마비되었어도, 주민들은 그래도 살 수 있게 된 것이 장마당을 통한 시장에서의 영향 때문이라고 장마당이 실제 주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요한 터전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김일성 생일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 완성의 해를 부르짖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자, 이제는 강성대국으로의 진입을 기도하면서 무역성을 비롯해 관련 기관원들이 중국 등 해외에서 쌀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확보된 쌀로 '배급제'를 추진해 김정은의 세습을 완결하려는 의미라는 것이다.

 지난 1997년 8월 북한을 탈출해 국내로 입국,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탈북 여성 박사 1호이기도 한 경인여자대학교 이애란(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 교수는 평양에서 부유하게 살던 그가 1970년대 북한 당국이 시행한 가족 재조사 사업에서 가족의 과거 이력이 밝혀져 함경남도 지역이던 양강도로 강제 이주돼 탈북 전까지 북에서 겪었던 고초와 더불어 북한주민들의 참상을 알리면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유의 물결, 다시 말해 고통을 겪고 살더라도 언젠가 한국에 가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북한인권법이 하루 빨리 통과되는 것이라고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북한인권법의 통과를 강력히 희망했다.

 

  이 교수는 17일 아침 서울 가락관광호텔에서 열린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박사)에서 한 강연을 통해 북한의 '배급제' 부활이 담긴 의미와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어야하는 이유 등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 날 이 교수의 강연내용에서도 드러났지만 그의 발언에 의하면 그의 북한에서의 행적은 해방 후 북한사회가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위 지주, 자본가 등 재산가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일단의 가족사를 들여다보게 했다.

 즉, 이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의 '창씨개명'에 반대해 중국 하남지방으로 가 재산을 일궜다가 다시 돌아와 지금의 평양 중심가인 창천 일대에 땅을 많이 사 자리를 잡았지만 해방 후 김일성이 집권해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땅을 다 빼앗겼다고 했다. 그러다 교인이었던 할아버지가 당국에 수배를 받아 쫒기게 되자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월남하고 할머니 또한 전쟁기간에 월남하게 됐다고 했다.

 하여 부친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헤어지는 이산가족으로 있었지만 부친이 자신의 가족사 등을 세탁해 평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하지만 1967년부터 시작된 한 가족당 7명이 증인하는 가족재조사 사업에서 과거의 이력이 밝혀져 '성분불량자'로 몰려 하루아침에 양강도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때 그의 나이 11살 때였다.

 지금도 보통 겨울 영하 30℃에서 40℃에다 많을 때는 허리높이까지 눈이 내린다는, 땅이 워낙 척박해 감자 외에는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양강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수갑산 지역 간동리로 추방돼 요덕수용소 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고, "미국에서 거주하는 할머니에 의해 1997년 8월, 장마당에서 산 쥐약을 품속에 넣고 발각될 경우 바로 먹고 죽겠다는 각오로 4개월 된 아들을 품고 북한을 떠날 때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이 박사의 목소리가 잠시 젖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당시는 북한 김정일 정권이 금방 망할 줄 알았다"고 했다. 또 "북한을 떠나면 '민족반역자니 인간쓰레기니 하는 소리를 듣게 되고, 어느 곳이든 헤게모니가 있기에 차라리 할머니가 보내주는 돈으로 발효공학을 전공했고 해서 이곳(북한)에서 술 공장을 인수해 주인이 되려고 했다"고 탈북을 앞에 두고 인간적 고뇌와 숱한 고민을 했음을 내비쳤다.

 이 박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우리사회의 체제 부정세력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5천년 역사에 이런 위대한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나라'라고 하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 (대한민국은) 북한에 비해 천국과 지옥의 차이임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긍지를 갖지 못하는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과 허탈감을 갖는다"며 "북한의 현장을 본 사람으로써 이를 알려 주고 깨우침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몸으로 체험한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북한인권법과 관련해, "자기의 민주주의만 좋고 북의 민주주의에 반대하면 이게 말이 되는가"면서 "'왜 반대하는가' 하고 물어 보니 인권법을 만들어도 김정일이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그런다고 답변하더라"며 "그렇다면 형법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논리가 되지 않는 논리를 가지고 북한인권을 대한다. 너무 우습지 않는가?"고 비유했다.

 결국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에게 용기와 안정적 기반을 준다는 데 중요함이 있다고 했다. 남한에 북한 주민을 위한 인권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무지에서 깨어나고 스스로를 지켜준다는 보호장치가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배급제'와 관련해 "일사불란한 체제를 위해서는 배급제가 핵심이다. 이게 잘 안되면 절대 3대세습도 안 된다. 김정은은 명분이 약하다"며 관련된 이유를 설명했다.

북에 있던 당시 고 황장엽 선생의 남한으로의 망명 사실을 전해 들었다는 그는 황장엽 선생이 망명 후 즉각 이 사실이 북한 주민사이에 입과 입을 통해 전해졌다며 "고위층도 도망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북한 사회에 엄청 큰 타격을 주었다"고 말해 북한이 아무리 주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해도 결국은 알려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도 했다.

 '탈북여성 1호 박사', '용기 있는 국제 여성’등으로 일컬어지는 이애란(47)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학과 교수. 2009년 북한 이탈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지난해 미국 국무부로부터‘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받기도 했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장으로 북한 음식문화를 알리는데도 앞장서고 있다.(konas)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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