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각] "공무원이:... 엄동설한 '老兵'이 화난 이유?
영하의 날씨, 눈발이 날리는 차가운 강원도 산골, 이승복 기념관 내 묘역에서 43주기 추모식에 임한 (예)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 그들의 마음 속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 해였다. 거기에 올 12월은 한반도를 자칫 광풍뇌우(狂風雷雨)가 휘몰아치는 격랑(激浪)속으로 빠뜨리게 할 수도 있는 초 메가톤급 사건이 터진 특별히 두드러진 해였기에 2011년(辛卯年)12월은 오랜 기간 잊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바로 북한주민을 악마의 소굴로 내몰았던 독재자 김정일의 급사(急死)가 있는 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마다 6월이면 온 국민이 옷깃을 여미며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서 조국을 지켜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호국영령과 6·25참전 국가유공자에 대한 추모와 감사의 뜻을 새기는 달이다. 마찬가지로 12월도 기자에게 있어서는 해마다 보통 여느 달과는 달리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는 달이다.
지난 9일 아침 출근길, 서울엔 한 두 송이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눈(雪)이라 하기엔 너무 미세한 날림이었지만 그래도 올 겨울 들어 처음 보는 눈이었다. 이에 비해 강원도 백두대간에는 이미 1주 전 내린 폭설로 푸르던 산야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은빛 설경(雪景)이 장관을 연출한 뒤였다.
12월9일, 이 날은 한 때 우리사회 '반공'(反共)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故이승복 군의 43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돌이켜보면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의해 1968년 10월말에서 11월초 울진-삼척으로 침투한 120명 무장공비가 아군의 對간첩작전으로 지리멸렬(支離滅裂)되다 일부 잔당(殘黨)들이 강원도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9일은 이승복 군의 생일이기도 한 날이다.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계방산 일대로 숨어든 공비 잔당 3, 4명이 이승복 생가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바느질과 숙제 등을 하고 있던 승복(당시9세.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장2년)군의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북한 공산당을 선전하며 겁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어린 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말을 하자 끌고 나가 단도로 입을 찢고 돌덩이로 내리 찍는 등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만행을 자행하고, 어머니(주승자), 남동생(승수), 여동생(승자)을 차례로 학살했다. 그리고 마을에 내려갔다 오던 형 학관씨에게도 무려 36군데를 난도질해 죽은 것으로 알고 거름더미에 던져 버렸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공산주의 행태를 온 국민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1960년대 후반 숱한 무장공비를 남파해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우리사회를 혼란시키고자 했던 북한집단의 전략전술의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단발마(斷末摩)적 외침은 이후 초·중·고에서 반공교육의 상징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도 '햇볕정책'을 표방하며, 북한에 굽실거리는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승복 사건의 역사적 진실은 '거짓'으로 둔갑돼, 왜곡되고 폄하된 채 이 사건 보도 기사마저 허위 날조된 조작이라는 일부 세력들의 주장에 14년 간이라는 기나긴 논쟁이 시작됐고, 마침내 2006년 11월24일 대법원 최종 확정으로 이승복 사건이 진실임으로 다시 밝혀졌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컸다. 모든 게 사라졌다. 그의 동상도, 장학재단도, 교과서 수록 내용도, 기념관 관할과 찾는 이도, 기일 추모제도....
이런 시점에서 잘못된 현상을 바로 잡고자 나선 단체가 있다. 예비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 영관장교 연합회(회장 권오강) 회원들이다. 이들은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고자 지난 1999년부터 올해로 13년째 단 한시도 멈춤 없이 추모제에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이승복 사건 역사 다시 알리기' 캠페인과 청와대를 위시한 정부와 국회 등 요로에 계속해서 사라진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11월에는『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이승복 사건 역사 다시 알리기'』자료집 1만권을 출판해 정부기관과 전국 도서관, 관련 기관, 초등학교 등에 배포해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데 진력하고 있다.
지난 9일 강원도 평창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그럼에도 이 날은 예년과는 달리 추모제가 풍성했다. 국가보훈처장의 화환(조화)과 비록 폭설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보훈처 강릉지청장의 사전 참석예정, 평창군수와 평창군 의회의장, 평창교육장과 지역 내 각 학교장 등 많은 기관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해당 면장과 지역주민도 다수 참석해 故이승복 추모제가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알렸다. 근 5년여 영관장교연합회와 동행하며 현장을 취재해온 기자의 입장에선 무척 감동 스럽고 스스로가 흐믓 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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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날 '이승복 역사 다시 알리기' 운동과 추모제 준비 등에 정성을 쏟아온 권오강 회장을 포함한 연합회 임원들은 모든 행사가 다 마무리된 후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이유는 기념관 측의 성의문제였다. 사전 준비과정에서도 기념관과 협조를 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기념관측이 무성의한 자세로 일관한데다 추모제 이후 '역사 다시 알리기 결의대회' 시에도 기념관장이 먼저 자리를 뜨는 등 소극적인 태도가 이들 노병들의 마음을 언짢게 한 것이다.
추모제가 끝난 후 회원들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서도 '이승복 역사 다시 알리기 결의대회'를 가졌다. 80세가 넘은 원로 회원들을 위시해 대부분 70대 회원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동안 방치되고 폐기된 이승복 동상이 다시 학교 교정에 세워져야 하고, 교과서에도 그와 관련된 사실이 실려 안보교육으로 이어지고, 전국의 많은 학생들의 기념관 견학 등이 이어져야 한다며 한목소리로 희구했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해당 기념관 관장은 없었다.
기념관장이 결의대회에 꼭 참석해야 하는지, 아니면 참석해선 안 될 어떤 이유가 있는지 기자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한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3대의 고속버스를 타고 온 연로한 회원들이 강원도 산간지대에서 2시간 여 추위에 떨면서도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기념관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더욱이 내 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해서는, 그 손님이 돌아갈 때까지 지극한 마음으로 대접하는 게 우리네의 예절이고 정이 아닌가. 그 날 한 회원은 기념관장 실에서 이렇게 다그쳤다. "원로 분들이 이 추운 날씨에 나서는데 기념관장이 자리를 뜨는 게 말이 되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가 매년 많은 돈을 들여가며 여기에 오나? 나라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여기 오신 분들도 나라를 위해 희생 봉사한 고급 공무원들이었다. 공무원이, 전화 받는 자세부터 잘못됐다. 기념관장과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누구로 인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는가? 집안에 손님이 오면 주인은 밥을 굶으면서도 손님을 대하는 것이 예의인데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가?"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했지만 삭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날 회원들을 더욱 허탈하게 한 것은 기념관 현관 한쪽에 놓여 있는 영관장교연합회가 1주전에 보냈다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자료집 책자 박스였다. 그 박스는 아직 풀리지 않은 채 책자는 그 안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발길을 옮기면서 필자가 바란 것은, (예)영관장교연합회 노병들의 멈추지 않는 노력으로 '이승복 사건'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시점에서 많은 분들이 한 마음으로 인식을 같이 할 때 최종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konas)
이현오 (코나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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