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뭐, 북한 대통령이 죽었다고?"
김정일이 죽었단다. 김정일이. 우리를,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그렇게 골병들게 만들었던 김정일이.
사람이 강한 충격에 직면하면 잠시 어안이 벙벙해지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하고많은 대소사에 접하게 되고 그럴 때면 간혹 정신 줄을 놔 무의식의 세계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지만, 비록 그럴 상황은 아니라 해도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었다.
2011년 12월28일 장례식 주역이 된 김정일의 급사(急死)소식이었다. '악의 축'의 주인공, 37년간 북한을 철권통치하며 400만 주민을 굶겨죽게 한 장본인. 자신은 고대광실 요새화 된 초호화궁전에서 4명의 처를 번 갈며, 기쁨조까지 둬 진시황이나 당 현종, 연산군 보다 더한 환락과 쾌락에 젖어들면서 북한 6개 지역에 거대한 감옥을 건설해 놓은 채 20만 선량한 죄인(?)을 참혹한 들짐승으로 만들어버린 그 어떤 말로도 표현키 어려운 희대의 독재자다.
김정일은 생전 북한 전역을 선군정치, 병영국가로 화(化)해 놓고 생각나는 대로 병정놀이를 즐기며, 우주보다도 더 크다는 인간의 생명을 하루살이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며 압살(壓殺)을 가해온 지구촌 대표적 광폭(狂暴)한 살인병기였다.
급성 심근경색에 뇌졸중을 앓고 있는 김정일이었고, 그의 정신상황을 보더라도 그리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는 게 하나의 정설이었다. 오래 전부터 김정일과 교분을 나눴던 국내외 인사들을 접촉하고, 세계 의학 관련 자료를 통해 김정일의 정신세계를 분석한 백상찬 박사도 그가 결코 멀지 않았음을 얼마 전에도 전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도 지난해 북한 김정일에 대해 향후 5년 내에 수명이 다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하지만 한 탈북 인사의 표현처럼 "그래도 한 3, 4년은 살지 않겠는가" 했는데, 돌연 사망한 것을 보면서 "세상 그 어떤 독재자나, 권력자도 영원할 수 없으며 부귀영화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아직 그의 사망원인이 북한이 주장한 액면 그대로 12월17일 오전 8시30분 현지지도 차 열차를 타고 가다 사망한 것인지, 열차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죽었거나, 아니면 또 다른 별장이나 아방궁에서 죽었던 37년이란 장구한 세월 동안 2,400만 북한 주민을 죽음의 길인 '고난의 행군'으로 내몰아 옭아맸던 희대의 독재자도 이제 그 아비 곁에서 미라가 될 순간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 날, 그러니까 지난 19일 월요일 정오. 한동안 못했던 운동을 시작하고자 모처럼 중식시간을 이용해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켠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던 한 운동 객이 "아니, 저게 뭐야! 언니 언니 이리 와봐요..." 하는 것이다.
그러자 "뭐, 북한 대통령이 죽었다고?" 다른 한쪽에선 "김정일이 죽었데요. 괜찮을까요? 이러다 또 전쟁 나는 건 아닐까요" 걱정스런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던 동작을 멈추고 TV 앞으로 몰려들었다. 나 또한 부리나케 TV 앞으로 달려갔다. 저마다 굳어진 얼굴들이 긴장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떠올라 우리 안보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이 죽었단다. 김정일이. 우리를, 대한민국 사회를 그렇게 찢겨 놓으며 골병들게 만들었던 김정일이.
YTN이 이미 예고했던 북한의 조선중앙TV의 특별방송을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다.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던 검은 상복 차림의 리춘희 아나운서가 예의 두툼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흐느끼는 억양을 통해 김정일 사망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 100(2011년)년 12월17일 8시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위인이 지닐 수 있는 품격과 자질을 최상의 높이에서 완벽하게 체현하시고 심오한 사상리론과 비범한 령도로 혁명과 건설을 백전백승의 한길로 이끌어 오신 걸출한 사상리론가, 희세의 정치원로이시고 불세출의 선군령장이시며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 <중략>......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와 정력적인 사상리론 활동으로 어버이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영생불멸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전면적으로 심화 발전시키시고....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존함과 불멸의 혁명생애와 업적이 주체조선의 무궁한 력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을 뿌리도록 하시였다."<이하 생략>
세상에 어찌 이보다 더한 칭송곡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이 날 조선중앙통신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특별방송을 전했다.
현장에서 3분여 정도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뉴스를 접하다 곧바로 회사로 뛰었다. 사무실은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으로 모두가 식당에 있을 시간이었다. 관련 뉴스를 검색하면서 몇 건의 기사를 마무리해 편집을 마치고 나니 시간은 1시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구내 식당에 내려가 늦게 식은 점심을 들어야 했다.
폭압 정권의 대명사. 희대의 권력자, 도살자(屠殺者) 김정일.
37년 동안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기간에는 400만 주민을 아사(餓死)케 하고, 90년대 후반에만 3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정든 고향을 등진 채 죽음도 불사한 탈북을 하게 하고, 지난해만도 북 주민 3명 중 1명꼴인 840만 명을 영양부족상태로 만들면서도 남쪽을 향해서는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이어 1983년 10월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테러를 자행 전두환 전 대통령 수행원 17명의 사망자와 14명의 중경상을 입게 했다.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KAL 858기를 폭발시켜 탑승객 115명 전원을 사망케 했으며, 1996년 9월엔 강릉 잠수함과 무장공비 25명을 침투시켜 우리사회 혼란을 유도했다. 1999년 1차 연평해전과 2002년 6월29일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날 다시 우리 해군 함정에 기습포격을 자행했으며 2006년 10월9과 2009년 5월25일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에 핵 공포를 다시 불러 일으켰다.
지난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이 쏜 총격에 살해당하고 급기야 지난해 3월26일에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 46명의 장병을 수장시켰으며, 11월23일 연평도를 포격 도발해 민간인을 포함한 4명을 죽게 했다. 어찌 그의 수많은 범죄행각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그 중죄인이 이승에서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제 갓 29살된 셋째 아들에게 세습으로 왕권을 물려받게 한 채.
그런 김정일에게 우리사회 일부세력과 단체들이 자유로운 조문을 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나중에 한몫을 해보겠다는 행동에선지, 철부지 유아적 소행에선지 한 23살 서울대학생은 학내에 분향소를 차리겠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했다. "위대한 인물" "매우 지적인 정치인"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해학적인 지도자"라며, 그를 추종하던 정치인과 종교인, 학자, 대중연예인들이 한목소리로 불을 지피고 "위대하신 수령 령도자" 장례식과 추모대회 준비에 광분할 북한 당국은 이를 또 역이용해 남남갈등을 조장하고자 혈안이 되고있다. 보수 애국진영 인사들에게는 그야말로 복장 터지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왜 많은 시민들이 긴장하고, "또 전쟁 나는 건 아닐까요?"하며 염려의 목소리를 냈겠는가?
정부는 다각도의 시나리오와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군 또한 만일의 위기사태에 대비해 북한 내 급변상황을 시나리오별로 상정한‘개념계획 5029’를 중심으로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유념해서 준비해야할 일은 앞으로의 대북관계, 세습 김정은 체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응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일 게다. 김일성을 닮게 하고 그 아비 김정일보다 더한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는 전 김정일 전속 요리사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도 철저히 진단해야 할 것이다.
전면적인 도발도, 부분적인 국지전도, 중국식 개혁개방 가능성도, 점진적인 남북대화 관계 등도 점검해야 할 것이며, 중국을 위시한 주변국가와의 협력과 관계설정도 잘 다져야할 대목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숙원이자 원대한 목표인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통일을 위한 행보도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야할 것이다.
김정일 사망으로 아직은 침잠 상태에서 관망하듯 하지만,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종북세력의 발본색원(拔本塞源)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며,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음 해 나가는데 있어 기필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이 시대의 과업임도 잊어서는 안 될 줄 안다.
'위기는 기회다'는 말처럼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해 촌각(寸刻)을 아껴 자유대한민국 통일로 만들어 기아와 공포, 추위와 생명위협에 떨고 있는 우리동포, 북한주민을 구원해야 할 것이다.(konas)
이현오 (코나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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