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1] 우리, 그 따뜻한 이름
"어머니, 성인이 된 저에게 국가가 준 첫 의무예요"
이 글은 지난해 12월 병무청이 해외거주 영주권 병사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수기집「대한사람 대한으로 2012」에 실린 군생활 수기입니다. <코나스>는 병무청의 협조로 40편 장병의 수기를 순차적으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차라리 2년 동안 미국으로 연수를 가보는 것이 어떠니?”
“아니에요. 어머니, 성인이 된 저에게 국가가 준 첫 의무예요. 피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넌 미국 시민권이 있잖니.”
“전 미국시민권을 가진 한국인이지, 한국시민권을 가진 미국인이 아니잖아요.”
“..........”
그렇게 말했다. 10년 이상의 세월을 떨어져 지낸 부모님 앞에서 나는 항상 모범답안의 응집체 같은 모습으로 일관해야 했다.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모습이었다.
14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시작된 유학생활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그것이 단순한 ‘버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4대 독자인 내게 거는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가식의 모습으로라도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일종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가족의 관심과 인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한 것이기에 내가 아닌 타인의 모습과 말로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어떤 반목이나 저항심은 커녕 내심 가식의 표면적 완전함을 추구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유일한 변명이라면 최소한 그렇게 내뱉은 타인의 모범답안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일종의 사후(事後)보완 작업을 되풀이 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굳이 인내와 감내를 구분하여 쓴 것은, 그간 군대에서 느낀 깨달음이나 자아의 숙성에 대한 스스로의 고백이기에, 좀 더 적나라한 표현을 통해 본래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위 인내라고 하면 ‘주체적’이나 ‘숭고한 희생’같은 영웅적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했듯 군복무에 대한 처음의 마음가짐은 도리 없는 ‘버티기’에 불과하였기에 그런 성공의 미담에나 어울릴 법한 명사를 인용하여 미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타인의 모습으로 괜찮은 척 부모님을 안심시켜 왔지만 타인의 모습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타인일 뿐 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기에 부모님에게는 자랑스럽고 늠름한 아들의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던 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합한 10년의 한국생활이 전부인 내가, 과연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버텨 낼 수 있을까?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 온 그네들에게도 쉽지 않다는 군복무를 과연 내가 잘 해 낼 수 있을까? 이러한 걱정은 내 안에서 점차 켜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고민은 시간 앞에 승복하게 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말미암아 고민은 해소가 아닌 종결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군 생활이었다. 내유외강의 정신으로 무장된 가식덩어리의 군 생활이 평탄할 리 없었다. 그들에게 난 ‘미국시민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입대를 감행한 아름다운 대한의 청년’의 이미지였다. 온갖 생소한 용어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규율과 원칙은 당연히 염증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럴수록 더욱 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아름다운 대한의 청년’식 미소와 의연함으로 그들을 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속에서부터 곪을 대로 곪아 버린 것을 언제까지나 생기 가득한 가식으로 감출 수는 없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해결이 아닌 회피와 외면, 방치로 일관해 온 문제점들은 결국 여기 저기에서 농익은 상처에 생긴 고름이 되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한국문화에 대한 정서적 혼란, 보직에 대한 이해부족, 각종 실수와 사고로 인해 나는 점차 의기소침해져 갔고 더 이상 가식적인 모습을 지속해 나아갈 정신적 여유조차 남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있던 내가, 스스로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혀 힘들고 지쳤다는 것을 더 이상 감추지 못하였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 난 거짓말이 들통 나 버린 한 무기력한 소년의 수치심과 창피함 그리고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더 이상 나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대한의 청년’도 무엇도 아니었다. 단지 ‘적응 못하는 자존심만 센 놈’으로 여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난 10년 넘게 날 숨겨주던 보호막이 벗겨졌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렇게 나의 군 생활은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작은 일에도 자격지심을 앞세우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습관처럼 이유와 핑계를 찾는 못난 모습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워지는 나의 모습에 순간순간 ‘내가 군대에 왜 왔을까?’라는 끝없는 후회가 밀려 올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하루가 지나갔다. 의기소침해진 나의 모습을 보고 간혹 들려오는 ‘괜찮니’라는 물음에 난 이미 남루해져 버린 자격지심의 끝자락을 놓지 못한 채로 ‘아무 일 없다’라고만 대답했다. 흡사 바람과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로 내기했던 이솝우화의 한 장면처럼, 힘겨운 상황이 되자 나는 더욱 더 그 남루한 천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병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만약 그가 똑같이 걱정스러운 표정과 진지한 말투로 “많이 힘드냐?”라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면 나는 또 불편한 마음에 그 남루한 천 조각으로 나를 가리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가 나에게 내민 것은 불편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냥 같이 차나 한잔 마시자’라고 했고, 말 그대로 정말 같이 차를 한 잔 마셨다. 단지 그가 자신의 차를 다 마시고도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한참이나 내 옆에 있어 주었던 것이나, 잔을 비우고 일어나면서 진심이 담긴 어조로 ‘커피 좋아하는구나 다음에도 같이 마시자’라는 식의 적절한 배려가 더해졌을 뿐이었다.
그 후 나는 서서히 커피가 아닌 내가 ‘단지’라고 치부했던 그의 따뜻한 태도에 매료 되어갔다. 일과 중에도 조금 한가하다 싶으면 득달같이 그에게로 찾아가서 ‘차 한 잔’을 청했고, 그 역시 특별히 바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바쁠 때에도 항상 10분 혹은 30분의 말미를 두고서 어느새 양손에 커피를 든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는 외로움에 많이 지쳐 있었기에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때처럼 그의 따스한 위로가 필요했던 어느 날,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그가 문득 생각난다는 듯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네가 참 부럽다. 너는 사회 경험이 많아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하고, 가정환경도 풍족하잖아” 순간 난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선임이지만 배려심이 깊고 은은한 여유가 있어 동경하고 존경했던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나야말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순간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스스로의 모자람에 대해 그에게 토로했다. 아니 그것은 토로를 넘어선 고해에 가까웠다. 당신 같은 사람이 나를 부러워하면 안 된다고, 난 당신에 비해 넓은 아량도, 배려심도, 남을 품을 수 있는 그릇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한참을 그렇게 한 여름 날의 굵은 장맛비처럼 그를 향해 나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을 쏟아냈다.
서서히 느껴지는 정체모를 후련함, 순간 종전과는 다른 충격을 받았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내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스스로의 부족을 인정하다 못해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멈춰지지 않았고, 지칠 줄 모르는 나의 ‘고해’는 어느 덧 하소연이 되어갔다. ‘사실 많이 힘들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어렵다’등의 말들을 토해내면서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수치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의 ‘고해’는 이미 했던 이야기에 대한 몇 차례의 의미없는 반복과 후련함만을 남기고 그렇게 잠잠해져 갔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났다. 내 마음에 조심스러운 평온이 찾아왔다. 그 평온은 감히 장맛비 뒤에 피어나는 무지개 띈 초원의 싱그러움과 상쾌함에 비견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진심어린 조언과 격려에 나는 그동안 퇴색해가던 희망의 빛이 다시금 깜빡이는 것을 느꼈다. 10년 넘게 나를 옥죄어 오던 부질없는 자만심의 굴레가 깨진 것이다.
진정한 자기애란 자만심에 사로잡혀 무기력한 감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켜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인내라는 것은 맹목적 버티기가 아닌 현실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한 일종의 이유 있는 기다림이다. 필요하다면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줄도 아는 것이 진정 용기이며 현명한 지혜인 것이다.
그렇게 나의 안일함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그동안 나를 응원해 주었던 전우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외국에 살아 못 먹어봤을 거라며 호두과자를 선물해 준 먹보 강 상병, 혹 군대용어가 서투르진 않을까 행정반 전달사항이 있을 땐 꼭 나를 찾아와 재차 이야기 해주던 정 일병 등 모두가 나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그 날 이후, 난 요즘도 당시 깨달았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
이제 나에게 군대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내가 아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법, 개인이 아닌 단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진정한 인내력 그리고 전우와 함께 만드는 소중한 추억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라는 이름의 공동체가 갖는 에너지와 잠재력 덕분인 것 같다.
아무리 부족한 자신이지만 그런 나를, 아니 우리 서로를 끝까지 믿고 지지해 준 507육군항공대대의 전우들, 그들의 격려와 배려에 힘입어 군에 입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았다.
군복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지키는 일이며, 나아가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안위와 존속을 갈망하는 염원의 실천인 것이다. 내 손으로 지키고 싶은 나의 공동체, 우리는 이 공동체를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라고 부른다.(konas)
이경수(상병) 21항공단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