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6] 분단 조국의 복판에서
군 생활은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최일선에서 지킬 수 있는 축복의 시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공부하시던 아버지로 인해 1990년, 나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혈통을 따라 대한민국 국적도 가지게 되어 자연스레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공부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2001년부터 2년간 아버지의 안식년을 맞아 다시 LA의 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니면서 나는 내가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식하고 지낸 적이 거의 없었다. 미국에 나갈 때 미국 여권을 가지고 ‘내국인’ 줄에 서서 비자없이 빠르게 들어갈 수 있을 때가 내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유일한 상황일 정도였다.
그러던 고3의 어느 날, 이중국적의 대한민국 남자들은 18세가 되면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여 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국적 선택 문제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군 입대였다. 한국 국적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군대를 자진해서 가겠다는 의미이고, 미국 국적을 선택한다는 것은 군대를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 문득 중학교 시절, 아버지를 따라 나선 중국 여행에서 두만강 끝자락의 북한 중국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방천에 갔을 때 직접 목격했던 열강속에 둘러싸인 분단된 우리 한반도의 안타까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군 입대를 결정하였다.
2011년 4월, 나는 공군에 입대했다. 6주간의 기본군사훈련과 3주간의 특기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내 재능을 살려 영어 어학병으로 현재 제82항공정비창에서 통역과 번역을 주 임무로 근무하고 있다.
군에 입대한 이후, 내 소개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하면서 나에게 군대에 왜 왔냐며 군대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군대에 온 것이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려고 원정출산, 불법체류 등을 일삼고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영주권 취득이나 고의로 신체를 망가뜨리는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도 실망스러웠다.
입대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군대에 와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였음을 느낀다. 아직 군대에 온 지 5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하고,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지도 몰랐던 많은 감정들을 깨닫게 되었다.
끝없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자랑스러운 조국에 대한 자부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 전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깊숙이 들끓었던 애국심, 그 동안 나를 위해 온갖 수고로움을 다하신 부모님에 대한 뜨거운 눈물, 고된 훈련을 함께 받으며 어느새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진 동기들에게 느꼈던 전우애..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된 내 자신에게 놀라며 이제는 어느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한반도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쓸 지언정 나는 우리나라가 내 젊음을 바쳐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조국, 자랑스럽고 고마운 조국이라는 자긍심을 가진다.
오래 전 두만강 너머 중국에서 바라보았던 분단 조국의 한복판에 내가 서 있다는 것에 벅찬 감동과 역사적 책임감을 느끼며 내 자리에서 맡은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한걸음 더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확신한다.
군 생활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조국을 위해서 공식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소중한 시간이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최일선에서 지킬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이중국적자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친구들이 자원하여 군에 입대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군복무 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konas)
김동진(이병) 제82항공정비창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