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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병사 수기9] 일석삼조(一石三鳥)

체력적으로도 휠씬 건강해져 있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보면서 군대에 오면서 일석이조도 아닌 일석삼조 이상의 결과를 거두었다

Written by. 박종빈   입력 : 2012-01-23 오전 9: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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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군복무는 나에게 한참 먼 미래의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지만, 또한 나와 매우 가까운 이야기고 사건이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는 전투경찰로서 유난히 데모가 많았던 80년대 힘들게 군복무를 하셨다. 그럼에도 가끔씩 가족 친지들이 모여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고생스러웠다는 말씀보다는 재밌고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더 많이 이야기하곤 하셨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 막 휴가를 나온 사촌 형들이 군 생활에 대한 얘기를 풀어 놓을라치면 어른들은 서로의 군 생활을 경쟁하듯 이야기하느라 열을 올렸다. 때문에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유명 가수가 병역기피 혐의로 한국에 입국을 거부당하는 뉴스를 보면서 왜 저 사람은 남들 다 가는 군대를 비겁하게 회피하려고 하는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군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신검을 받기도 훨씬 전인 중학교 3학년 때에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 간 미국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쉽지 않은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내 미국이라는 나라에 잘 적응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미 명문대학에도 합격했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원하던 대학에 가는 것도 좋았는데, 부모님께서 열심히 노력하신 대가로 이민자들에게는 상당히 취득하기 어려운 미국 영주권 자격도 취득했다. 미국 영주권을 전 가족이 취득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투표권 같은 몇몇 권리를 제외하고는 미국사람들과 같은 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5년이라는 기간을 별 문제없이 지내면 미국사람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영주권의 혜택 중에는 한국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병역의무 연기라는 것도 있었다. 한국의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가지 않으려는 군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군대생활을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안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큰 유혹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2학년이 지나고도 유학생 동기들이 많이 지원하는 카투사는 한 번도 지원하지 않았다. 나는 군대를 안가고 미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크게 간과했던 사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5년 넘게 살아서 영어로 소통도 원활하고 스스로가 한국인 보다는 점점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어머니가 해주는 김치찌개를 바비큐보다 더 좋아하고 수업시간에는 영어로 발표해도 밖에서는 제일 친한 친구들하고는 한국말로 대화를 하고 팝송보다는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을 더 좋아하는 변함없는 한국청년이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한국에 살려면 자꾸 피하려고만 했던 군복무를 해야 된다는 현실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졸업까지는 1년도 남지 않은 대학교 3학년 때,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군대를 가지 말고 미국에서 살자는 생각이 굳어졌고 그렇게 3학년은 끝나갔다.

 그러던 중에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방학동안 개인적으로 큰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일하는 기간 동안 머물 수 있는 장소까지 제공받아서 별 망설임 없이 한국에 왔다. 7년 만에 온 한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7년이라는 어떻게 보면 짧은 기간 안에 한국의 도시들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고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내가 이런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들 힘들다는 군대를 갈 정도의 필요성 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특히 LA의 교민들 사이에서 살았던 나는 나같이 영주권을 가진 사람은 물론 한국 국적인 유학생도 군복무를 피하려고 미국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방학 동안만으로 하고 다시 미국에 돌아가려고 결정했었다.

 귀국 이틀 전에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촌 형과 마지막 술자리를 하면서 군복무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누구한테나 힘들다는 전방 GOP를 경험한 예비역 병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힘드니까 오지 말라고 할 줄 알았고, 나 자신도 그런 말을 들어서 깨끗이 군복무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 있기를 내심 바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들었던 답변은 자기 자신은 군 생활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내가 갈 수만 있다면 꼭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살지 않아 상당히 개인주의적이 된 나 자신에게 쉽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자극이 될 것이고, 단체생활과 훈련을 통해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주요 요지였다. 솔직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왜 고쳐야 할 대상인지 이해는 안 갔지만 나에게 가장 믿음직스런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상당히 혼란스러워 졌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나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군대를 가야한다고 얘기를 들으니, 남들도 가는 곳 나라고 못 갈 것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모님한테 군대를 가겠다고 통보하고 그 후에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미국변호사와 영주권유지에 관한 자문도 구하고, 휴학계도 내고, 비행기 표도 사고, 마지막으로 영주권병사 신청을 병무청을 통해서 했다. 신체검사를 한 후 2주일 만에 군 입대를 하는 빠른 진행이었지만, 한번 결심을 내린 후 후회를 하지 않는 성격상 큰 걱정은 없었다.

 그렇지만 맨 처음부터 군 입대에 대한 후회를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맨 처음 입소대대에서 처음 불침번 근무를 할 때 시간도 너무 느리게 가고 부모님도 보고 싶고 낯선 환경이 빨리 적응이 되지도 않았다. 사회에서 불규칙하게 생활하고 잦은 음주 등 안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규칙적인 생활, 구보, 행군, 훈련 등 모든 것이 쉽지만은 않았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발휘했어야 됐다. 하지만 훈련소 생활을 통해 사회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힘든 행군이나 훈련을 전우들과 같이 함으로써 조직은 개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배웠다.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개인의 건강이나 일과 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힘든 훈련소 생활 속에서도 솔선수범하면서 분대원을 이끌고 도와주는 소대장 훈련병 및 분대장 훈련병들을 보면서, 자기중심적이 아닌 이타적인 마음씨와 솔선수범형의 리더십이 조직 안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인생에서 다시는 하지 못할 훈련소 경험을 한 뒤 자대에 배치되었다. 자대에서는 인사과에 배치되어 인사업무를 맡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앞으로도 수리적인 계산을 하는 사업을 하려는 내가 경리 같은 부서가 아닌 간부쪽전우(?)병들의 인사적인 업무를 한다는 게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의문도 들었다. 인사적인 업무는 평생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자대에 온 후 9개월 동안 내가 인사과에서 배운 것은 많았다.

 자대에 처음 왔을 때는 한글프로그램이나 파워포인트 등 기초적인 프로그램도 잘 사용하지 못해서 간부들과 선임들한테 때론 꾸중도 들었지만, 나중에는 일 잘한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문서작성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회에서 잘 못 알고 있는 편견 중에 하나가 군대에 가면 머리가 굳어지고 군인들의 행정업무실력이 일반인보다 많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군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결재문서나 회의자료를 작성해야 되고, 그렇게 단련된 문서들은 사회에 있었을 때 봤던 것 보다 더욱더 정확하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문서작성 같은 행정업무를 제외하고도, 나보다 더 계급이 높은 간부, 선임들 및 더 계급이 낮은 후임들과 같이 일하면서 계급사회에서 업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배울 수 있었고, 외국에 오래 살아서 생긴 잘못된 혹은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들을 피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일과 시간외 자율시간에도 부대에서 자기 발전의 시간을 보장해 주어서 많은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사회에서는 사람들과의 약속들이나 컴퓨터 등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막사 안 연등시간에는 방해하는 요소가 없고 나보다 더 노력하는 선임들한테 자극받아서,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짧은 기간 안에 유명한 금융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고, 사회에서는 읽지 못한 책들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군대가서 머리가 굳기는커녕, 사회에 있었을 때보다 더 공부한 자신을 보고, 보람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군 복무로 인해 가장 많이 얻은 것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경험이다. 처음으로 총기를 수여받았을 때에는 내 자신이 이제 스스로 이 나라를 위기상황에서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러웠다. 처음에는 사격을 못해서 재사격 지시까지 받았지만, 나중에 자대에서 사격 잘한다고 대대장님의 칭찬을 들었을 때에는 시험 100점을 받았을 때보다 최고의 자부심을 느꼈었다.

 행군할 때, 태어나 처음으로 발에 물집도 생겼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특별한 경험이었었다. 영하의 날씨에 경계 근무를 서면서 전방에서 나보다 더 추운 날씨에 나라를 지키는 전우들한테 존경심도 가지게 되었고 따뜻한 지역에서 살았던 나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날씨에 있었던 것인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틀에만 박힌 생활은 나의 시야를 가리고,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복무는 내가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했고, 전역 후에도 하지 못한 경험을 나에게 해주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다가 육군 현역으로서 남들과 같이 군복무를 했다는 것은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휠씬 건강해져 있고 정신적으로도 훨씬 더 성숙해진 나 자신을 보면서 군대에 오면서 일석이조도 아닌 일석삼조 이상의 결과를 거두었다고 확신한다.

 앞으로 남은 1년의 군 생활동안 이 나라에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스스로가 자랑스럽다.(konas)

박종빈(일병) 국군체육부대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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