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수기14]후회 없는 선택
해외영주권자로서 군대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봉사한 시간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부터였던가.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군대에 가야할 나이가 됐을 때부터 군대에 가야 할 지 안 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해왔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지낸 시간이 많아 내 나이 스무 살 때 한국에서 보낸 햇수는 5년 밖에 안된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나 또한 군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군대를 간다면 단지 의무이기 때문에 또는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영주권을 따고 안가기로 결심했다.
2006년 스물세 살 때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영주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일부러 신체를 훼손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오랜 해외생활의 결과로 당당하게 영주권을 땄으니 떳떳하게 군대를 안가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변에 친구들과 지인들도 이제 군대 안가도 됐다며 축하를 해 주었다. 그 당시 나 또한 기뻤고, 군대에 대해 더 이상 고민 안하고 ‘호주에서 35살(당시 해외체류기준)까지 일하다가 나중에 한국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병역의무를 외면했다.
영주권을 딴 후에는 호주에서 국제대기업에 취직해 부족함 없이 생활 했다. 야간에는 대학원도 다녔다. 주말에는 테니스나 골프도 치면서 여과생활을 즐기며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나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들이 군대 갔다 오는 동안 나는 비교적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영주권도 있고 직장도 자리가 잡혀 호주에서의 생활이 안정이 되어가고 있었던 만큼 더 이상 군대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실 가끔씩 밤잠을 설칠 정도로 ‘그래도 군대에 가야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생길 때가 있었다. 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병역의무를 회피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해외에서 더 오래 살았기에 영주권을 받고 해외에서 살면 군대를 안가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려고 해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병역기피자처럼 양심에 가책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사실 군대가 가기 싫은 이유는 2년 가까이 되는 시간도 아까웠지만, 호된 훈련, 병영생활에 대한 두려움 등 여러 가지 힘든 생활여건 때문인데, 생각해보니 군대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듣긴 해도 그래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 갔다 오는 곳인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9년 10월 12일, 군대에 가기엔 조금 늦은 스물여섯 살 때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고국으로 돌아와 입대를 했다. 남들 다 하는 것 피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로 논산 육군훈련소로 향했다.
훈련병 때를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겪어본 적이 없는 힘든 생활이었다. 생활관에 여러 명이 모여 좁은 매트리스위에서 전우들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자야하고, 나에겐 꼭두새벽인 6시에 기상해서 점호를 받아야 했고, 걸을 때도 평소 습관대로 못 걷고 군인답게 씩씩하게 걸어야 하고, 밥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반찬을 퍼 먹어야 하고, 삶의 모든 게 통제된 곳은 입대 전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했던 훈련병 시절도 어느새 금방 끝나버리고 자대에 배치 돼 이등병 생활이 시작됐다. 훈련소에 있을 때는 자대에 가면 PX도 맘대로 가고 전화도 하고 편할 거라는 생각에 들떴는데 자대에는 훈련소에 없는 인물이 등장하니 바로 선임들이었다.
선임이라 해도 다들 이십대 초반, 사회에서 만났으면 한참 어린 동생들이라 생각하고 만만하게 봤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꼬우면 일찍 오라는 말이 있듯이 군대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군번 순인데 초반에 친근하게 접근하려던 내 작전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건방지다는 이미지로 낙인 찍혀 한동안 고생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군 생활이 익숙해지고 선임들과도 친해지면서 군 생활이 점점 편해져 즐겁게 지낼 수가 있었다. 군대에서 만난 전우들은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사회에서 만났던 친구들 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맺을 수가 있었다.
군대에서 정말 다양한 일을 겪었고,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 할 수 없듯이 나도 군대에 가서야 많은 걸 깨우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를 겪어본 후에야 진정한 대한민국 남자가 된 느낌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군복무중일 당시 천안함과 연평도사건이라는 북한의 도발을 직접 군대에서 경험하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강한 군대의 필요성, 그리고 전쟁 없이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징병제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60만 대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이 2년간 잠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 남성 누구에게나 부여되는 병역의무를 외면하고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면 결국 공정성이 떨어지고 불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2년간 해외영주권자로서 군대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봉사한 시간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미국의 어느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 보다 안 해 본 것에 대한 후회가 더 오래 간다고 한다.
일생에 한번 가는 군대, 만약 그때 내가 안가기로 했었다면 남은 평생 후회했을 것이지만, 갔다 온 지금은 정말 군대 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 뿐이다.(konas)
노영호(예비역) 2011년 8월 전역
- 관련기사보기
-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